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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Mar 09. 2024

[미식일기] 창녕집, 부산

수영구 골목의 달고 맑은 국밥집, 아는 사람들은 찾아 묵지예


설날은 맞이하여 부산을 향해 가면서, 출발하기 전 우리의 소망은 그리 커다란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 가면 정말 맛 좋고 구수한 돼지국밥 한 그릇 먼저 하고 싶네."


"집 앞에 있던 곳이 제법 괜찮았는데, 이제는 맛이 변해서 아쉽지?"


이쁜 그녀와 나는 부산에 가면 항상 돼지국밥을 먹기 위해 들리던 어머니댁 근처의 대형 국밥집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육수의 맛이 변함을 느낀 우리는 더 이상 그곳의 국밥을 견딜 수가 없게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번에 여기저기 좀 찾아봤어."


"그래?"


"우리가 가고 싶어 하는 카페가 수영팔도시장에 있으니까 수영에 가서 국밥 먹자. 부산은 어느 동네에 가던지 괜찮은 돼지국밥이 여럿 있으니까."


입맛은 많이 다를지 몰라도 음식에 대해서는 취향이 비슷한 것이 있는 그녀와 나다, 돼지국밥에 대해서는 깔끔한 도시의 식당에서 먹는 정갈하고 딱 떨어지는 맛보다는 조금 더 예스럽고 구수하며 진득한 육수의 맛이 나는 국밥을 선호하고 있었기에 나는 수영구와 그 근처 동네의 국밥집들을 찾아보며 우리의 입맛에 맞을만한 곳을 골랐다.


그렇게 강릉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수시간 중에 몇십 분 정도는 수영구와 서면의 국밥집들을 비대면으로 돌아보며 몇 개의 후보군들을 정했고, 부산스럽지만 조용한 부산의 설날연휴 첫날의 오후에 나와 그녀는 '대지국밥을 쓰까 묵짜!'라는 일념 하나로 수영구로 향했다. 적어도 부추와 통마늘과 소면까지 함께 주는 국밥집을 원했지만 코로나19가 할퀴고 가버린 이 시대에 그런 집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기에 나는 이쁜 그녀를 데리고 '수영되지국밥'이라는 곳을 찾아서 수영구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버스정류장에 내렸다. 수영구는 센텀시티에서 수영강을 건너면 있는 제법 크고 유동인구도 많은 부산의 여러 중심가 중에 하나이지만 오늘은 연휴의 오전이라서 그런지 아직은 사람들이 많이 없었다.


"저쪽으로 가자"


지도 어플에서 봤던 식당의 위치를 보면서 걸음을 옮기는데 멀리서 보이는 식당의 낌새가 심상치가 않다.


"어라, 설마....?"


"불이 꺼져있는데?"


설날 연휴가 시작되면서 식당들도 일찌감치 '휴업'을 내걸고 쉬러 간 곳이 꽤 있었는데 내가 가고 싶어 했던 국밥집도 그중에 하나였다.


"흐음...."


하지만 나는 식도락가 김고로다, 방문하기로 계획했었던 식당들이 없어지거나, 휴업을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특이사항들을 많이 겪어봤었기에 이런 상황에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알고 있다. 나는 재빨리 스마트폰을 꺼내어 지도 어플을 연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있을 만한 식당들을 검색해 본다. 그리고 수영돼지국밥의 근처, 사람들의 인적이 조금 더 드문 골목 뒤편에 '창녕집'이라는 국밥집의 이름을 발견한다.


"저쪽으로 가보자, 여기 괜찮을 것 같아."


"그래, 가자."


김고로는 이쁜 그녀의 손을 잡고서 '창녕집'이라는 간판이 가게 앞쪽에 크게 걸려있는 식당에 도착한다. 지도 어플에는 '창녕돼지국밥'이라는 상호로 등록이 되어있지만 원래 이름은 '창녕집'인듯하다. 가정집이었던 것 같은 건물, 골목 쪽으로 길게 빠져나와 있는 입구 위에는 어른이 두 명 정도는 누울 수 있는 크기의 흰 배경의 간판에 아주 굵직하고 진지한 분위기를 띄는 검은 글씨체로 '창녕집'이라고 쓰여있고 우측에는 저녁에 누르스름한 광체를 낼 것 같은 하얗고 지붕 위의 덩굴박만큼 커다란 조명이 목을 빼고서 방문객들을 반긴다. 녹색으로 페인트칠된 벽과 골목 사이에 은색 스테인리스 문을 '끼익' 열고서 들어간다. 골목 안쪽에 있는 집으로 들어가서 아파트에 있을 법한 하얀 틀과 통유리로 된 미닫이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간다.


"겉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동네의 국밥 달인이 숨어있을 것 같은데."


"주변에는 이자카야나 고깃집 같은 술집 분위기인데 그 사이에 이렇게 국밥집이 있는 게 신기해."


문을 열고 들어서니 입구의 오른쪽에는 흰색 조리사모자와 앞치마를 두르고 탄탄한 체구를 가진 남자 사장님이 국밥에 쓰일 육수를 덥히고 고기를 썰면서 주문을 처리하고 있고 아내로 보이시는 사장님께서 우리를 맞이하신다. 입구에서부터 매장 안쪽까지 길게 뻗어있는 바깥쪽 자리들은 이미 만석이고 국밥과 수육들을 각자 시켜놓고 이미 소주까지 들이켜는 식탁들도 보인다. 수육들이 육수와 따로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이 동네분들은 여기 수육백반을 먹으러 오시는구나.'


수육백반은 돼지국밥집에서 볼 수 있는 메뉴다, 고기와 육수가 한 뚝배기에 같이 나오는 국밥에 반해서 수육을 1인분으로 썰어 따로 내어 아래에는 고체연료로 온도를 유지하고 국밥육수를 뚝배기에 담아서 밥, 반찬등과 함께 따로 내어주는 것이 수육백반이다. 돼지국밥이 발달한 경남과 부산 일대에서 볼 수 있는 메뉴인데 어떤 돼지국밥집들은 국밥보다도 이 수육백반이 더 일품인 곳도 있다.


"몇 분이세요?"


"두 명입니다, 선생님."


"안 쪽으로 들어가셔요~"


바깥의 홀에 자리가 다 찼으니 옛날에는 안방으로 쓰였을 것 같은 안쪽 자리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는다. 하얀색 페인트로 깔끔하게 벽을 마감하고 작고 기다란 세로창이 골목 안쪽과 바깥쪽으로 뚫려있다.


수육백반과 모듬국밥 중에 어느 것을 시켜야 할지 고민이었다. 살코기가 많은 수육백반이냐, 다른 돼지국밥들과는 다르게 막창과 순대를 고기와 같이 넣어주는 모둠국밥을 먹을 것이냐. 여태까지 가봤던 돼지국밥집들은 머릿고기와 부속들이 들어간 돼지국밥이 대부분인데 창녕집은 순대와 막창을 같이 넣어준다는 점이 꽤나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모듬국밥을 시키려니 바깥에서 수육백반에 소주를 기울이고 있던 손님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그래도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모듬돼지국밥 두 개 주세요!"


"네네~"


입구에서 들어올 때 사장님들끼리 대화를 하시며,


"오늘 수육이 너무 많이 나가서 큰일 났네."라고


하는 것을 들었기에 내 입장에서는 그 부분을 지나칠 수 없었다. '그만큼 맛있으니까 먹어야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들려버린 이상 미련한 배려심이 발동해 버린 것일까나. 다음번에 또 간다면 꼭 수육백반을 먹겠다는 다짐을 하며 나는 금방 나오는 모듬돼지국밥을 받아 들고 이쁜 그녀와 식사를 시작했다. 반찬으로는 당연히 국밥에 넣어 먹을 정구지(부추), 마늘, 고추와 김치와 무생채가 나오는데 무생채가 나오는 국밥집은 처음이라 호기심이 발동한다.


창녕집의 기본 반찬과 무생채


"이 무생채 맛있어."


"사각거리고, 매콤 달콤한 게 요물이네 이거."


짙은 주황색의 양념으로 손맛이 가득하게 버무려진 무생채를 먹자마자 눈이 금방 커지며 몇 번 더 집어먹는다. 아마도 국밥을 먹는 동안에 빈 그릇이 될 예정인 무생채였다. 그리고 김고로는 이쁜 그녀와 국밥에 부추를 쏟아서 넣고 통마늘도 털어 넣고 새우젓도 약간 넣어서 간을 한다. 돼지국밥에는 소금보다는 새우젓을 넣어서 간을 하는 것이 더 구수하고 진한맛을 즐길 수 있다.


"국물이 맑네. 가게 이름은 창녕집이라 밀양식을 기대했는데, 부산식으로 끓이시나 보다."


돼지국밥은 밀양과 부산이 서로 원조라고 하면서 다투는데, 서로 국밥의 방식이 다르다. 사실 돼지국밥의 원조는 함경도와 황해도에서 먹던 이북의 돼지국밥이 한국전쟁 때 피난민들에 의해서 경남 쪽에 전파된 것이라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부산과 밀양의 사람들이 원조를 두고 다툴 이유가 없다는 의견이다. 각설, 밀양식은 모든 부위와 뼈를 넣고서 끓여내어 뽀얗지만 묵직한 편이고 부산식은 살코기 위주로 끓이는데 기름을 걷어내면서 끓이는지라 맑고 깔끔한 맛이 난다고 하는데 지금 시대에 와서는 돼지국밥 식당마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육수를 끓여 대접하기에 밀양식이나 부산식으로 돼지국밥을 나누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창녕집의 모듬국밥과 머릿고기


"먹어볼까, 맑은 국물이 기대된다."


후루룩


가볍고 달콤한 고기의 맛이 진하게 혀 위에 떨어진다.


"와, 국물맛이 깔끔하고 달다. 살코기로 국물을 내셨나 보다."


"맞아, 가볍고 깔끔해."


국물이 맛있으니 국물을 다시 한번 맛본다. 이전에 내가 맛보았던 돼지국밥들은 뽀얗고 묵직한 맛, 구수한 맛의 육수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렇게 맑은 육수의 돼지국밥은 참 오랜만이었다. 육수가 혀 위에 떨어질 때 느껴지는, 살코기로부터 우러나온 기름진 단맛이 입안을 감싸 안는다. 설탕이나 감미료 등을 먹었을 때 느껴지는 그러한 직접적인 단맛이 아니다, 진하게 우러나온 갈비탕 등을 먹었을 때 느낄 수 있었던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기의 단맛이다. 뚝배기에서 함께 길러 나온 온기와 함께 질척거리지도 않고 담백하게 절제하는 고기의 달콤함이다. 지방에서 나오는 기름진 맛은 덜하지만, 돼지고기로부터 나오는 고소함이 단맛을 뒤따라오며 국물 맛을 마무리한다.


"처음부터 국물에서 고기의 달콤함이 느껴지니까 입맛이 확 끌려버리네."


"고기에서부터 나오는 은은한 단맛이 훌륭해."


국물에 마늘, 부추에 막창을 올려서 함께 먹어본다.


창녕집의 막창, 막창이 들어간 국밥은 처음이다


사각사각 으적으적


국물을 머금어 잔뜩 부드러워진 부추가 치아 사이에서 쫄깃하게 씹히며 사각거리는 통마늘과 알싸함과 매콤함으로 코를 즐겁게 하는 사이에 야들야들한 막창이 함께 들어온다. 씹을 때마다 막창의 기름진 고소함과 쫄깃한 육질이 온몸을 즐겁게 하니 계속 씹기만 하고 목으로 넘기기 싫은 식감이다, 거기에 함께 스며들어온 달콤한 육수가 국밥 속의 '달콤 짭짤'한 조화를 선사하니 심히 즐거운 식사다.


"당면순대와 살코기도 놓칠 수 없지."


순대는 육수를 머금어 뚱뚱하고 두껍게 당면이 불어났다, 달콤하고 깔끔한 육수로 가득 찬 순대인데 맛이 없을 수 없었다.


탱글탱글


일반적인 순대에 얇고 부드러운 수육도 함께 들어있는 모듬순대국밥


입안에서 쫄깃하게 씹히고 통통 튀어 다니는 당면과 순대껍질의 식감이 고소한 막창의 식감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씹을 때마다 달콤함과 순대 특유의 고소함과 식감이 입안을 간질거린다. 그에 반해 살코기는 지방이 없이 부드럽고 담백한 맛을 가졌다. 다른 부재료들이 쫄깃하고 고소한 맛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살코기처럼 약간의 쫄깃함과 담백함을 갖춤으로써 다양한 식감을 제공하는 것은 국밥 뚝배기에서 좋은 조합을 이룬다.


사각사각 서걱서걱


부추나 마늘과 같은 채소와 향신료를 씹을 때와는 다른 고기 살결이 찢어지고 부서질 때의 잘근거리는 식감과 살코기의 구수함은 쫄깃함과 고소함으로 가득한 돼지국밥에 담백함과 깔끔함을 더하는 맛이다.


창녕집의 모듬돼지국밥의 맛과 식감들을 즐기면서 김고로는 스스로 '오늘도 꽤나 괜찮은 밥집을 찾아내었군, 훌륭해.'라고 생각하면서 자화자찬의 시간을 갖는다. 우리가 안쪽 방에 앉은 이후로 주변에 앉은 어느 손님들, 대화가 들리는 것을 들으니 설날 명절을 맞아서 서울에 살던 자녀들과 오래간만에 식사를 같이 하는 가족들이었다.


"엄마, 근데 여기는 왜 창녕집이야?"


"여기 사장님들이 창녕 사람이라서 그런다. 여기 평소에도 사람들이 많은데, 오늘은 연휴라서 단골손님들이 다 앉았네."


'엄마'라고 불린 중년의 여성은 평소에도 이곳 창녕집에 자주 와서 식사를 하는 단골손님이신지 창녕집의 사장님들에 대한 얘기와 보통 이곳의 분위기가 어떤 곳이고 손님들의 수가 어떤지 김고로가 재미있어할 만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으신다. 얘기에 조금 귀를 기울이다가 나는 다시 국밥의 즐거움으로 들어간다.


육수에 익은 통마늘과 부추, 거기에 살코기나 막창을 올려서 다시 입안으로 가져간다. 달콤하고 깔끔한 육수가 혀를 먼저 달콤하게 물들이고 막창이 쫄깃하고 고소하게 기름폭포를 쏟는다, 사각거리는 식감의 통마늘과 부추가 그 사이에서 씹히며 알싸함과 향긋한 매콤함으로 다시 육수와 고기 사이의 균형을 잡아준다. 국물과 막창, 고기 등이 나의 입으로 들어가며 줄어가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면서, 먹는 것이 이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그리고 다시 생각한다, 수육백반은 무슨 맛이었을까, 다음번에는 꼭 수육백반을 먹겠어.


"그런데 여기 연휴인데도 사람들 많이 온다."


"바깥에 홀은 사람이 끊이지를 않네."


들어올 때 앉아있던 사람들이 아니라 계속해서 새로운 손님들로 자리들이 비워지고 채워지고 있었다, 물론 소주로 낮술을 하던 사람들은 그대로였지만, 주변의 식당들이 연휴를 갖는 이유인지 아니면 이곳이 원래 맛있는 식당이라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말이다.


이쁜 그녀와 김고로는 달콤한 돼지국밥이 새카만 뚝배기로 원상 복귀될 때까지 돼지국밥을 즐기고는 가게문을 나섰다, 수영팔도시장의 어느 드립커피 집에서 식후 커피 한잔을 즐길 생각에 들뜬 발걸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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