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라이킷 21 댓글 2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김고로 Jan 23. 2022

된장찌개, 따뜻한

아버지의, 어머니의, 그리고 우리의 따뜻한 가정식 찌개

[여름에 쓰여진 글입니다]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이쁜 그 여자는 시프트로 일을 하는 나와는 다르게 하루 정도의 여름휴가가 더 남았다. 집에서의 요리는 주로 남편의 담당이지만 이렇게 시간이 있고 여유가 있는 날에는 그의 반쪽이 가끔 부엌에서 주방 일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평소에는 내가 제멋대로 끓이던 된장찌개를 오늘은 그녀가 끓인다.

특별할 것은 없는, 아니 그녀가 끓였기에 매우 특별한 전형적인 한국식 된장찌개이다. 배추, 두부, 애호박, 양파, 다진 마늘, 새우젓으로 맛을 낸다. '감자는 왜 안 넣어?'라고 물어볼 수 있겠지만 익은 감자가 찌개에서 뽐내는 포슬포슬한 식감을 내가 그리 좋아하지는 않아서 넣지 않는다, 밥에 감자를 넣어서 쫀득하고 포슬하게 먹는 것은 좋아해도 감자가 부서져서 입안에서 부스럭거리면 그거 꽤나 귀찮은 식감이라고 생각하는 모순이려나. '감자는 어디에나 잘 어울려!'라고 따지시는 감자 애호가분들에게는 심심한 사과를 드리겠다.

어렸을 적,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부부의 자녀로 자란 나는, 아침과 저녁에는 꼭 밥으로 시작해서 밥으로 끝나야 한다는 '밥심'의 소신을 강하게 가지신 아버지를 위하여 아침에는 항상 압력밥솥의 밥 짓는 소리, 재료를 다듬고 찌개를 끓이는... 졸린 와중에도 맛있는 소리를 들으면서 일어났다. 그중에서 내가 제일 자주 맡았던 소리는 어머니의 된장찌개와 매콤한 콩나물국.

사실 어머니는, 나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된장찌개보다는 김치찌개를 더 잘 끓이셨지만 나의 코는 된장찌개가 끓여지던 냄새를 더 잘 기억하고 있다. 내가 어머니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그녀도 된장찌개에 감자(그리고 고기)를 넣지 않는다는 사소한 원칙이 있었다.

나의 이 사소하고 푸근한 기억처럼 여러분에게도 아침에 된장찌개(혹은 다른 찌개류)를 끓이시던 분의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등등.... 그것이 누구시던간에 우리가 어렸을 적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그런 맛의 기억. 따뜻함. 그것은 형체 없는 기억과 마음의 유산이 되어 우리 마음에 남아 우리의 후손 혹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도 이어지는 것이다, 조금은 변화가 가미되겠지만.

내 어머니의 된장찌개 맛에 내가 오늘날 추가하게 된 것은 '육류'이다. 적어도 나의 주변에는 돼지고기를 넣어서 된장찌개를 끓이는 분은 없다, 쇠고기를 약간 넣으면 모를까. 일본에서 먹는 된장국의 종류인 '돈지루'를 우리나라 식으로 약간 변형하여 끓이는 맛인데 가성비 좋은 돼지의 뒷다리를 썰어 넣으면 고기 없이 끓이거나 쇠고기를 넣어서 끓이는 된장찌개와는 확실히 다른 구수함과 진함을 느낄 수 있다. 그 맛이 보통의 한식 된장찌개와는 다른 맛을 뽐내기 때문에, 나의 귀여운 그녀는 이 된장찌개를 매우 좋아하게 되어 몇 주 동안 연속으로 이 된장찌개를 계속 먹은 적도 있고 주변인들의 평가도 제법 괜찮다(아마 공짜로 대접을 받아서 그럴 거야).

된장과 간장의 역사는 한민족의 역사를 아주 오랫동안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신라시대의 왕실 결혼 때에 신부의 지참 품목에 메주가 포함되기도 한 것을 보면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된장을 먹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다만 식재료를 다루는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아욱과 건새우를 넣어서 먹던 조선의 된장국은 다시마와 멸치로 국물을 내어 호박, 두부, 양파 등을 넣어서 끓이는 오늘날의 된장찌개가 되었다고 한다.

천년, 천오백 년 전에도 만약 된장이나 메주가 있어서 지금과 같은 된장찌개는 아니지만 불에 쪄낸 곡류에 된장을 활용한 강된장이나 된장국을 주식으로 먹었다면 그때에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끼니를 챙겨야 할 사람, 혹은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오늘날의 우리들이 된장찌개를 끓이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은 마음으로 뜨겁고 짭짤한 된장찌개를 끓이지 않았을까.

요리방법과 사용하는 재료는 조금씩 다를 수는 있어도 요리를 하는 그 마음, 된장찌개에 담긴 마음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대와 대를 이어서 내려오는 된장찌개의 요리법만큼이나.

그렇기에, 나는, 아내는, 우리는, 오늘도 된장찌개를 끓인다. 양파, 호박, 돼지고기를 숭덩숭덩 썰어 그날, 그날, 이 음식을 대접받은 사람이 그 안에 담긴 마음을 먹고 힘을 내어 살기 쉽지 않은 이 세상 살아내기를 바라면서. 적어도 하루 일과 중에 '하, 세상 뭐 같네'라는 생각이 들 때에 '에휴, 얼른 집에 가서 찌개에 밥이나 먹고 쉬어야지'라는 마음을 먹게 되기를, 그리고 이겨내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우리들의 된장찌개는 따뜻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