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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Jan 19. 2022

'당연'해 보이지만, '당연'하지 않은

드립 커피와 티라미수를 마시며, 그리고 식당과 손님에 관한 이야기

(2021년 여름에 쓰인 글입니다)


어젯밤에는 전 세계에서 악명을 얻고 있는 열돔으로 인해서 여전히 더웠다. 뙤약볕이 이마를 찰지게 강타하는 그런 날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나한테는) 저 산에 넘어가는 해와 함께 가지 못한 습기가 길거리에 스멀스멀 남아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아끄는 그런 저녁이었다.


보름달의 그림자가 살짝만 남았는지 그리 날이 밝지도 않은 그러한 시간에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여자와 밤나들이 겸 길을 나섰다.


그녀에게는 길거리를 펄럭거리는, 맵시 고운 한복 치마가 여럿 있는데 그 모습이 부러워 나도 생활한복 하나 장만해달라고 졸라서 얻은 생활한복 셔츠와 바지를 입고 길 위의 잘난 척을 좀 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미세한 구멍들이 있는 모시로 짜인, 우리 조상의 슬기를 담은 이 천조각들은 여름에 입어도 꽤나 시원하다.


늦은 시간에 거리를 나선 이유는, 이쁜 여자의 퇴근 시간 이후에 저녁을 먹고 나오면 이 시간이기도 하고 우리가 목적지로 둔 단골 피자집에 우리가 직접 기른 허브도 좀 가져다줄 겸 그 피자집이 저녁에 가면 더 이뻐 보이는 마술을 부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친환경 비닐봉지에 담긴 허브들을 가져다주고서, 간 김에 피자집의 시그니처 메뉴인 얇은 도우에 상큼한 토마토 페이스트를 바른 피자빵을 하나 주문해서 이쁜 여자의 고사리 같은 손에 쥐어주고는 택시를 부른다. 집에 걸어갈 수도 있겠지만 이 날씨에, 그리고 그 거리를 피자를 들고 걸어가다가는 안 그래도 얇은 도우가 이 습기와 열기 때문에 더 빠르게 눅눅해져서는 집에 도달해서 피자판을 열었을 때는 이미 우리가 아는 그 피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택시에 오르니 택시기사님이 뒤를 힐끔 보시며 말문을 여신다.


'아이고, 무슨 날이길래 아가씨 때때옷을 (알록달록한 어린아이의 옷을 이르는 말) 차려입으셨나'


옷이 좋아 보인다는 칭찬에 우리는 그저 웃었다.


'옆에 있는 오빠야가 사준 건가?'


'아뇨, 제 돈으로 산거예요'


'오빠야가 사준 게 아니야? (혀를 차며) 오빠야가 돈 좀 많이 벌어서 더 사줘야겠네'


'그래도 오빠야 옷은 오빠야 돈으로 샀어요, 제가 골라주고요'


그렇게 택시기사님은 남자가 여자에게 돈을 많이 써야 한다는 골자의 이야기를 이어가시다,


'그렇게 이쁘게 입으면 조심해요, 휙 하고는 벗겨 먹을라'


대략 나와 함께 사는 여자가 많이 이쁘다고 하시는 선을 조금 넘는 농담, 그래서 나는


'하하... 이미 결혼을 해서요...'


하고는 나의 밖사람과 함께 웃었다, 기사님은 그제야 나와 함께 앉은 여자의 관계가 어떤 관계이지 제대로 아신 모양이었다.


'아이고, 내가 큰 실수를 했네. 미안합니다, 내가. 참으로 내가 얻어맞아 죽을만한 얘기를 했네, 남의 가정에 참나... 미안합니다. 남의 가정에 별 헛소리를 다 했네. 그래 보이셔서 이미 가정을 이루신 분인지도 모르고, 초면에 그냥 반말을 해버리고.... 에고고...'


나와 아내가 입은 복장이 마치, 강릉에 잠시 며칠 놀러 온 젊은 대학생 커플이었다고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하긴, 알록달록한 생활한복을 차려입은 커플인데 아이도 없고 피자 한판을 손에 쥔 데다가 약간 어두운 저녁에, 마스크도 쓰고 있으니 결혼한 남녀들처럼 보기는 쉽지 않으셨을 것이다.


'하하하, 그럴 수도 있지요 기사님. 괜찮습니다, 그렇게 보일만한데요.'


그래도 나와 아내를 원래 나이보다 굉장히 어리고 젊은 나이의 커플로 봐주신 것을 고맙게 생각하며 기사님께서 갖고 계신 관념과 편견에 의해서 발생한 실언과 실수는 가볍게 넘어가고 용서해드리기로 했다. 기사님께서는 나와 아내가 겉으로 보인 외모와 상황으로 미루어 보아 우리가 굉장히 어린 대학생 커플이 '당연하다'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세상에서 어떠한 것들을 정말로, 아침에는 해가 뜨고 밤에는 달이 빛나는 것처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연신 사과를 하시는 기사님께 조심히 가시라며 보내드린 후 나와 귀여운 여자는 우리가 굉장히 어리게 보였다며 집으로 잠시 걷는 길 내내 시시덕거렸다.


사람의 관계 사이에서, 관계가 진전되고 천천히 영글어감에 따라서, 처음에는 '당연하지'않던 것들이 점점 '당연하게'생각되어 행동으로 나오게 된다. 친한 사람들끼리는, 친구끼리는, 너와 나 사이에는, 이제는 이래도 되는 것이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 '당연함'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것도 매우.


그리고 이 '당연함'이라는 단어는 요식업계에서 사용되는 '진상'이라는 단어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일반음식점과 휴게음식점을 운영하는 사장님과 손님의 관계에서 이러한 '당연함'으로 인하여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환경 혹은 배달 플랫폼 애플리케이션을 통하여 만나는 후기와 댓글에서 말이다.


많은 사장님들은 자신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받는 손님들에 대해서 매우 친절함을 덤으로 주신다. 냉정하게 얘기하자면 이것은 CS(Customer Service)라는 고객들을 관리하고 재방문을 발생시키기 위한 목적 아래 이루어지는 것이다. 'Smile is Free'라고는 하지만 이 미소는 절대로 공짜가 아니다, 이 친절한 미소가 가득 담긴 행동과 사람과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단순한 배려와 친절은 다시 사람을 부르고 결국 업소를 유지하게 하는 간접적인 요소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정이 넘치는 동네의 캐주얼한 콘셉트 혹은 욕쟁이 어르신이 아닌 이상) 이러한 친절함을 유지한다, 그리고 최대한 손님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려고 한다... 그들이 지불한 금전적인 대가 안에서.


그리고 그렇게 손님들이 오가면서 사장님들과 개인적인 친분과 관계를 쌓아가기도 한다, 그저 단순한 사장과 손님의 관계를 벗어나 진정한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도 전에 이러한 친절함과 서비스를 '당연하다'라고 여기는 불특정 다수의 인원들 덕분에 '진상'이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흔히 말하는 '와, 선넘'는 상황들이 꽃피게 되어서 불화와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야기한다.


자신들이 서비스에 대해서 금전적으로 지불하고 그 영업장의 운영을 자신들이 유지시켜 주고 있다는 자랑스러움 혹은 자만감 덕분인지 사장님들이 가끔 얹어주시는 정에 대해서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요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명백하게 잘못되었다, '당연한'것은 '당연한'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별다른 욕심이나 계산 없이 기분 좋게, 마음 넘치게 손님에게 친절을 베풀고 잘해주시는 사장님도 계시지만 손님은 이것을 '당연하다'라고 여겨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장과 손님이기 이전에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윤리인 것이다. 법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릴 수는 없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별할 수 있는 참 '어른'이라면 양심으로 알아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양심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어진 무언가에 대해서 올바른 'Give and Take'가 이루어져야 사장님과 손님의 선한 관계와 선순환은 이루어질 수 있다. 아담 스미스의 말을 빌리자면 '보이지 않는 손'이 윤리적으로 올바르게 움직이게 될 것이다.


이전 피드에서 언급했던 택시기사님과 같은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는 '당연함'에 대해서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요식업을 운영하는 사장으로서, 그리고 그 서비스를 이용하는 손님으로서 말이다. 사장님들이 더 잘못하고 손님들이 더 잘못해서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누구이건 상관없이 인간으로서 바른 양심과 윤리를 가져야 우리의 시장은 올바르게 움직일 것이다.


최근에 여러 커뮤니티와 플랫폼에서 보이는 나쁜 사장과 나쁜 손님이 일으킨 일들은 우리 사회와 요식업 시장에 어떠한 그림자들이 도사리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는 피상적인 현상일 뿐이다, 이것들의 내부로 들어가 보면 우리 사회가 어떠한 것을 당연시하고 있는 것은 물론 결국 어떠한 양심과 윤리를 갖고 있는지 그 문제점을 적시시켜주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여러 단골가게들을 다니는 손님으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요구한 서비스나 행동이 사장님들께 기분 나쁨이나 부담을 야기하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과거의 내가 했던 잘못을 생각하며 다시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도 한다. 양심 있는 손님이 되어야겠다는 다짐.


글이 많이 길어졌다. 적어도 내가 있는 강릉에서는,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올바른 인간관계들이 작동하는 요식업과 카페의 시장이 되기를, 정말로 당연한 것은 당연해지고 당연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지 않게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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