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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Jan 18. 2022

미식으로의 초대

짧은 사담 : 나는 왜 미식가가 되었나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알려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


- 1852. 사바랭. 미식예찬 중 -



미식을 추구하기 시작한 것은 내가 친구들과 정들었던 고향을 떠나 개발된 지 얼마 안 된 중고 신도시로 이사를 하고, 새로운 인종들과 어울리지 못해 어중이떠중이 이방인 마냥 어린 학교생활을 하던 그 무렵 정도일 것이다.


아버지의 구미와 어린 자녀들의 위장을 따라가기 위해 요리와 부엌일에 대해서 많은 노력을 쏟으셨던 어머니는 안타깝게도 (적어도 내 생각에는) 지금 돌아보면 그렇게 요리를 잘하시고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셨던 분은 아니셨다. 그렇게 기억을 한다, 나는.


누구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러한 단순한 맛있는 음식을 먹고 간단하게 배부르기를 소망하는 사람들보다 조금 더 미각과 후각에 예능감을 더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미식가 혹은 식도락가라고 표현할 수 있겠는데, 나의 사랑스러운 어머니께서는 그런 사람이었다. 덕분에 나는 새로 이사 온 도시의 새로운 문물과 문화들을 도입한 많은 수의 식당들을 방문할 수 있었고 어머니를 어린 혀를 이끌고 어머니를 좇았다니며 내 안에 있는 미식 세포들을 만들어나갔다.


지금은 초창기만큼은 유명하지는 않지만 한국 내에서 일식 돈가스 프랜차이즈 중에서는 강력했던 'ㅎ' 일식 돈가스 전문점이나 지금은 마라탕과 마라샹궈에 밀려 명함을 잘 못 내놓지만 지금 생각해도 또 먹고 싶고 호화로웠던 퓨전 중국 코스요리 식당 등 지금 생각해봐도 부모님 덕분에 많은 미식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 중국과 호주에서의 유학생활을 통해 수많은 문화와 국가의 식문화들을 손과 눈과 혀로 익혔다. 한국에서는 맛보기 힘든 진짜 본토식 마파두부, 피시 앤 칩스, 아쿠리움만 한 수조를 몇 개씩 가진 거대한 식재료 픽업 마당을 가진 초대형 식당 등 부모님 덕을 많이 본 덕에 나의 혀와 미식의 기준은 그저 높아져갔다.


치기가 어린 나이 때에는 식재료를 만들어내고 음식을 조리하는 사람들의 노력들을, 그저 내 입맛이 아니라는 이유로 평가절하하거나 잘난 미식가 심사위원 놀이를 하듯 점수를 매기며 재수 없고 싹수없는 태도를 가졌었던 한 때도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나의 사랑스러운 한 여자와 집에 방문해주시는 손님들을 위하여 나의 미식을 담은 요리를 지속하고 있는 지금, 나는 나에게 식문화와 미식이 취미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고 그에 관련된 나의 과거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단순한 재료에서 맛있는 한 접시를 만들어내고, 어떠한 한 접시를 위해 노력을 쏟은 그 누군가를 위하여 나의 미식적 주관이 들어간 객관스러운 척을 하려는 의견을 전달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다. 그저 단순하게 먹기보다는 식문화나 음식의 역사 등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는 터라 그러한 지식들이 식사시간을 더 즐겁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에 대한 공부도 틈틈이 한다. 누가 시켜서, 아니면 어떠한 목적을 두고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가 이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재래시장이나 현대식 대형마트에 가서 해외,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식재료들을 보는 것이 즐겁고 그것이 나의 가슴이 뛰는 일이다. 물론 생계를 위한 본업은 따로 갖고 있지만 이러한 진지한 취미가 없다면 나의 삶은 맛이 한참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주 먼 훗날이 되겠지만 무언가 식문화에 관련된 일을 했으면 하는 마음에 이렇게 진지한 태도를 갖는 것도 있다.


지금은 요식업과 카페를 운영하거나 일하시는 분들을 보면 그저 존경스럽고 계속 좋은 사업 이어가시기를 응원할 뿐이지만, 나도 나의 미식의 길이 있는 것이기에 부러운 마음은 없다. 다른 방식으로 동행하는 것이니까.


이것은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 전해 들은 것인데,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던 나의 외할머니께서는 굉장한 미식가셨다고 한다. 어머니의 고운 피부와 얼굴을 물려받은 것처럼, 그 미식 유전자도 물려받은 것이려나.


여하튼 쉽지 않은 삶을 살아나가는 동무 여러분, 오늘도 맛있는 인생을 사시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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