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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Jan 17. 2022

[미식일기] 르완다와 티라미수

더웠던 여름날, 동네 카페 마실

(2021년 여름날 썼던 글입니다)



계속해서 더운 날이 이어지고, 또 이어지고 있는 나날이다. 그냥 '아, 더워'라고 하기에는 모자란, '아으으으으! 더워 디지겄네'정도로는 얘기를 해야 얼추 그 더위의 정도가 맞아떨어지는 그런 날씨이다. 대한민국에서 어느 정도 시원한 곳이라고 부를 만한 영동 지방의 강릉에 사는 내가 이렇게 얘기를 할 정도인데, 각 지역의 분지 지역에 사는 분들은 어느 정도일지 나는 감히 '덥다'라고 얘기하기도 송구스럽겠다.



내리쬐는 태양의 붉음만큼이나 내 몸에도 아직 울긋불긋 가라앉지 않은 염증들을 가라앉힐 겸 다양한 맛을 혀 위에 잠시 올려놓을 겸 집 근처의 단골 카페로 향한다. 나는 알고 있다, 이 단골 카페에 가면 (영업시간 내에) 언제든 맛 좋은 'A Cup of Joy'를 친절하게 건네주는 남자가 있다는 것을.



사실, 꼭 핸드드립이 아니라도 마시고 싶은 커피와 디저트들이 좀 더 있지만 날씨와 몸의 건강상태가 아직은 다 성이 차지 않기 때문에.... 아니, 아주 솔직히는 그저 이 아담한 카페가 집에서 가깝기 때문에 오는, 그런 것.



이건 여담인데, 모 개그맨이 '제일 맛있는 햄버거는 집에서 가까운 집 햄버거'라고 했던 것처럼 '제일 맛있는 커피는 집 앞 커피' (물론 아닐 때도 있지만)이다. 이러한 법칙은 피자와 치킨에도 적용이 된다. 갓 튀겨낸 치킨과 갓 구워내어 치즈가 입안에서 따끈 거리는 피자가 맛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얼마 전에 식사를 대접하고 선물 받은 제철 과일을 며칠 후숙 시켜두었는데, 한입 베어 물으니 새콤달콤한 과즙이 아삭 거리는 과육과 함께 나를 즐겁게 하기에 두어 개 봉투에 담아 함께 카페로 들고 간다. 이걸로 '복숭아 2개 드릴 터이니 맛 좋은 커피 한잔 주슈'라고 물물교환을 할 생각은 없다, 그저 맛있는 것을 나만 먹기에는 좀 아까운 인간의 싱거운 오지랖 또는 동네 이웃의 어설픈 정. 그 대가로 나는 집안 방향제로 쓸 커피 찌꺼기를 당당하게 요구할 명분이 되겠지. 그렇다, 나를 보고 '계산적이군'이라고 얘기한다면, 맞다, 정답이다, 나는 그런 인간이다.



친절한 눈웃음을 짓는 카페의 그 남자에게 좋아하는 케이크 하나와 르완다를 한잔 주문한다. 만성비염 때문에 오픈 키친에서 퍼져 나오는 커피의 향을 맡을 수는 없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그 남자의 커피는 맛있다.



르완다 트리플 워시드는 그 남자의 표현 따라 말하길 '평양냉면'과 같은 맛이다. 처음 한입 먹을 때에는 무언가 맹숭맹숭한 맛에 스모키한 흙, 초콜릿 맛이 살짝 나기 시작하는데 '이게 뭐야?'라는 생각으로 홀짝홀짝 마시고 있더라면 중간중간 과일맛이 입안을 콕콕 찌르는 그런 커피라서 마시다 보니 어느덧 흰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시면 마실 수록 매력 있는 커피다.



서비스로 한잔 더 받은 커피는 서울의 모 커피회사에서 선물 받으신 블렌딩 원두라고 하시는데, 입안과 혀를 후려치는 강렬한 맛이라고 표현하겠다. 에스프레소로 내려 우유를 넣어먹으면 맛있을 것 같은, 서울의 어느 호텔에서 묵다가 조식 시간을 1시간 정도 남겨두고 일어나 급하게 내려가 우유와 설탕을 들이부어서 잠을 깨려고 마실 것 같은 그런 느낌의 커피다. 혀뿌리와 목구멍이 살짝 그을리는 것 같은 그런 느낌도 든다. 맛있는 커피냐고? 음.... 아프리칸 커피를 좋아하는 내 취향에는 맞지 않는 커피라고 하겠다. 전투적, 경쟁적으로 하루를 살아야 하는 어느 누군가가 있다면, 그에게 추천하고 싶은 커피다.



어찌 되었든, 나의 미식은 계속된다.



곧 있으면 몸이 좀 더 나아서, 그리고 날씨도 조금 더 좋아져서, 지금보다 내가 더 원하는 커피와 디저트를 즐길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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