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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Jan 24. 2022

밥 한 번 먹자

'한 끼 밥'의 힘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밥'과 식사자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침을 해결할 생각을 하면서 '끼니 거르지 말고'라는 말을 듣고 나와서 '오늘은 뭘 먹으면 잘 먹는 것인지' 생각을 하고 사람들과 인사를 하면서도 '밥은 먹고 다니니?'라고 말을 건네며 '나중에 밥이나 한 끼 하자'라고 하며 헤어지고 집에 들어와서도 '밥은 먹었고?'라는 말을 들으면서 하루를 마친다, 그리고 샤워하면서도 '자기 전에 맥주에 안주나 할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나만 그런가)


우리, 한국에서 살아가는 한국인과 비한국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 이러한 밥과 식사 문화에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가기 마련이다. 이것은 굳이 오늘날의 패러다임만은 아니다, 우리는 먼 옛날부터 쌀밥과 식사를 사랑하던 민족이니까. 현재 성인 남녀가 먹는 평균 3배 이상의 식사를 먹으면서도 언제나 더 나은 미식과 식사를 탐구했는데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 (키워드: 김시민, 논개, 동반자살)에서는 지금 현대인이 먹을 수 있는 식사량의 3배가 넘는 식량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 중에 식사를 많이 하시는 조상님들께서 상부에 식량이 부족하다는 상소(상소라고 하는 용어가 맞는지는 모르겠다;)를 올리셨던 기록이 남아있고 근대 조선에 들어왔던 해외 선교사들은 동방의 이 작은 나라는 돼지나 소를 자신들보다 (지금도 서양의 부위 구분은 우리나라 마장동에서 하는 특수 부위 구분보다 매우 적다) 더 세세한 특수부위로 구분해서 즐기는 미식 생활을 영위한다며 놀라워하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렇게 밥과 식사는 아무나와 할 수 없는 중요한 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 자신은 쉽게 '나중에 밥이나 한 끼 해요'라고 하지 않는다. 식사 초대도 식사 약속도 정말로 식사를 하고 싶은 사람에게만 말을 던진다. 쉽게 식사자리를 갖자는 말을 던져서 혼란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고, 내가 정말로 만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만 식사를 하고 싶으니까. 그러니 나와 식사자리를 주기적으로 가지시는 분들은 조금이나마 어깨를 으쓱하셔도 된다 (그러려나...?)


그리고 아주 조금이나마 서양의 식사시간 문화를 경험했던 나로서는 '밥 먹을 때는 조용히 먹어야지'라는 것의 정반대로 식사시간에 대화하는 것을 기본으로 배운 터라 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음식이나 그 주변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서양에서 점심식사 시간을 통해서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하고 인사평가에 반영하기도 하듯이 나도 식사를 하면서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기도 하는 것이다. 원초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마음 중 여러 가지가 은연중에 보이기 마련이다.


이런 것들을 토대로 하여 식사를 통하여 우리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인연을 만들기도, 관계를 두텁게 하기도 그리고 더 나은 미래와 인간관계를 만들어 간다. 누군가와 밥을 먹는다는 것... 이것은 인간에게 그저 원초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 이상이 있는 것이다. 친구들과 만날 때, 중요한 거래를 진행시킬 때, 인터뷰를 할 때, 무언가를 축하할 때,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할 때 등등.... 식사를 하지 않고 일을 진전시킨 적은 몇 번이나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천천히 이해가 갈 것이다 (너무나 중요해서 차만 마시는 경우도 있지만)


몇 달 전에 나는, 내가 참 좋아하고 빈번하게 들리려고 노력하지만.... 최근에는 그러지 못했던 이 카페, '쉽게' 그리고 맛있게 커피를 내리는 이 카페에서 근무했던 어느 바리스타님과 우연히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오늘 이렇게 다시 이 카페에 와서 사장님께 여쭈니 개인적인 사정으로 고향에 다시 가셨다고 하여 나와 이렇다 하게 깊은 친분을 가졌던 것은 없지만 그와 말 몇 마디 못 나누게 되어버렸다는 것이 아쉽기 그지없어 이런 글이 나오나 보다.


정기적으로 점심을 함께 하는 어느 대장님과의 식사자리에 함께 동행하셨었는데, 마침 이국적으로 태국 음식을 먹으러 갔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이 나오자 나는 식사도 잊은 채 태국 음식에 대해서 주절거리면서 떠들었고 그는 나를 현직 셰프로 오해하기도 했다 (물론 나는 그런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굳이 음식이 아니라 미식에 포함된 모든 것, 커피에 대해서도 전문가와 대화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커피에 대해서도 그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고 그도 커피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정작 피자대장님을 만나는 자리에서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님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눈 날이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원래 모임의 주최자께서는 그날의 다음에 있을 일정을 계획하는 데에 푹 빠져계셔서 그 바리스타님과 나의 대화가 길어지는 것에 대해서 불만이 없으셨달까 (...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느 누구를 만나던 공통분모가 있고 그 분모에 대해서 심도 있는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유지하고 이어나가는 힘이 된다, 그런 것을 우리는 '공감'이라고 부르고 있고.... 여하튼, 주문진의 영진에서 커피를 내리는 '곰'을 제외하면 커피 업계의 종사자와 대화를 나눌 일이 잘 없는 즐겁게 대화를 했고 그가 서울 패션 위크에 참가할 정도의 패션 감각을 갖고 있다는 정도의 사실을 나눌 정도로 우리는 팟타이와 파인애플 볶음밥을 두고 오랜 식사를 했다.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그 한 번의 식사로 그와 내가 엄청 절친한 사이가 되었거나 큰 호감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식사자리에서 나눴던 공감의 대화, 서로의 신변잡기나, 으레 사람들이 서로에게 던지는 '돈, 명예, 진로'에 대한 자강두천들의 허세 넘치는 대화 없이도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그로 인해서 그는 나에게서 마음을 샀다. '사람 어떻게 될지 모른다'라는 말을 생각한다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좋은 인연을 만들어 놓는다는 것은 참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 식사자리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오래간만에 '쉽게 커피 내리는' 카페에 오니 기대했었던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참 아쉽고 그가 그리워지려고 한다는 솔직한 얘기를 빙빙 돌려서 얘기하느라 참 많은 시간과 텍스트를 소모했지만.... 전혀 아깝지 않다. 내가 아쉬운 것은 커피에 대해서 또 다른 방향으로 얘기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하나 사라지셨다는 것이 아쉬운 것이요, 그리운 것은 그저 그 식사자리에서 쌓인 사람에 대한 호감으로 인하여 나도 모르게 그리운 것이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일까. 그가 나에게 건네주었던 커피와 미식에 대한 얘기일까, 아니면 그 식사의 맛있는 음식 때문일까. 무엇일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얘기할 수 있는 것은 '밥을 먹는 행위를 함께하는 자리', 밥을 나눌 수 있는... 그러한 따뜻한 식사자리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찰밥스러운 따끈하고 묘한 힘이 있는가 보다.


나와 거의 매일 식사를 함께 해주는 귀여운 여인, 그리고 다른 모든 분들에게 진심의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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