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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Jan 25. 2022

여름날의 기억, 주문진

감자를 넣은 할머니의 보리밥

[여름에 쓰인 글입니다]


이번 해와 같은 겪어보지 못했던 무더위가 찾아오면 누구에게나 으레 생각나는 음식이 있기 마련이다, 주로 시원한 음식이려니 하고 빙수나, 냉면, 시원한 맥주 등을 떠올릴 테지만 강원도에서 살아온 지 몇 년 된 나에게는 잘 삭은 가자미나 명태를 매콤 달콤한 양념에 버무려 올린 어촌 스타일의 회냉면이나 그저 동치미 육수나 고기, 과일 육수에 푹 말아먹는 막국수도 생각이 나지만..... 내가 이전부터 여름이 되기를 기다려온 메뉴는 콩국수이다.


고성에서 간부로 군생활을 하고 있을 적에 주문진의 국군 강릉병원에 올 일이 많았었는데 그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나는 운전병을 데리고 주문진 중앙시장에 맛집 탐방을 꽤나 자주 갔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과 떠들썩한 상인분들의 사이를 지나쳐 중앙시장의 먹자거리 안 쪽으로 깊게 들어가면 어느 시장에나 있을만한 방앗간이 하나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어서 입구에서부터 보인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 콩국수를 시키면 그 옆의 방앗간에서 바로 빻아져 나오는 콩가루를 듬뿍 넣고 칼국수를 말아놓은 시원하고 고소한 콩국수가 냉기를 모락모락 뿜으며 나오는 것이다. 숟가락으로 한수저를 뜨면 뼈와 고기를 듬뿍 넣고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잘 우려낸 곰탕 국물처럼 끈적거리는 콩국물의 고소함과 그 잘게 부서진 입자들이 매끈한 면과 어우러져 꽤 맛이 좋아 여름 한정인 이 메뉴를 최대한 오랫동안 먹기 위해서 한동안 중앙시장의 안 골목을 자주 들락거렸었다.


하지만 오늘은 더운 여름이라고 해서 내가 콩국수와 냉면에 관한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콩국수를 즐기던 그 골목에서 조금 더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주문진의 토박이 할머니께서 혼자 운영하시던 보리밥 집이 있었다. 10평이 겨우 될만한 작은 식당이어서 한 번에 3팀 정도 받으면 가게가 꽉 들어차는 그런 작고 작은 식당이었다.


다른 군인들 같으면 적당히 만만하고 맛있고 고기가 많은 막국수나 해장국이나 분식집이나 중화요릿집 등을 찾아서 자주 갈 텐데 디지털 전투복과 항공모함과 같은 디지털 전투화를 우르르 신고는 주문진 중앙시장 골목 안으로 걸어가 할머니 혼자 계신 좁은 식당 문으로 저벅저벅 들어가는 모습은 꽤나 흔치 않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보리밥집의 작은 규모에 대비해서 맛과 가성비가 정말로 좋은 집이었기에 점심시간이 '땡'하고 치자마자 들이닥치지 않으면 주변 상권에서 몰려드는 향토 단골손님들 덕분에 보리밥을 먹을 수가 없기에, 빠르고 더 빠르게 보리밥 집으로 '돌격 앞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할머니, 저희 왔어요!'하고 드르르륵 들어가면 '어, 왔어? 저 앉으라'하고는 매일 봐서 귀찮다는 손주들 맞이하듯이 반기시고는 아무런 말도 없이 보리밥에 넣어먹을 제철 나물들과 반찬들을 내어주셨다. 할머니 보리밥집의 제철 나물들과 반찬은 매일, 혹은 매주 바뀌었다. 봄, 여름이 나물 반찬들이 제일 풍성하고 향기로운 계절이었지만 가을, 겨울이라고 해서 보리밥에 넣어먹을 나물들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짭짤하고 보들보들하게 무쳐진 시금치,  고사리, 콩나물, 무나물 등은 고정 멤버였고 우리가 알 수 없는 이름을 가진 여러 나물들이 매주마다 바뀌어서 나왔으며 된장, 두부, 애호박, 양파 등으로 꽉 찬 할머니표 된장찌개는 반찬들의 중심에서 밥상을 호령했다. 할머니 보리밥집 특징 중의 또 하나는 보리밥에 감자를 산더미처럼 넣어주시고 거기에 또 '모자라면 얘기해, 더 줄게'라고 덕담도 얹어주시는 것이었다.


처음 배가 매우 고픈 채로 앉아서 보리밥을 보고 있노라면 '이 놈들을 모두 넣어 잡아먹겠다'라고 당찬 포부를 갖고 식사를 시작하지만 결국 이런저런 나물과 된장찌개를 넣고 비벼서 먹다 보면 '너무 배불러, 항복, 무조건 항복'이라는 선언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보리밥과 나물 연합군에 대항하기 위하여 우리는 항상 잘 비워진, 튼튼한 위장과 창자를 소총에 탄약 챙기듯이 뱃속에 잘 데려왔었다. 우리들 외에 주문진에서 많은 분들이 보리 밥상을 정복하러 오셨었는데, 시장에서 상인분들의 예금과 적금, 금융활동을 도와주시러 다니시던 새마을금고 직원분들, 주변 보건소와 동사무소에서 나오신 공무원분들까지 이 식당에서 보리밥을 먹어서 해치우려고 했으니 이것이 바로 보리밥집에서 곧잘 이루어진 '민관군 협동작전'이 아니었겠는가.


하지만 보리밥을 정복하기 위한 민관군 협동작전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는데 그 이유는 할머니께서 '모자라면 말만 해, 더 줄게'라는 이름으로 보리밥과 나물 연합군을 위한 보급작전을 성공적으로 펼치셨기 때문이었다. 식탁을 쓱 보시고는 뭔가 좀 모자라다 싶으시면 나물이 무쳐진 스테인리스 그릇을 가져오셔서는 재보급을 '툭, 툭'이루어주시니 어려운 상황, 하지만 우리는 그래도 끝까지 꾸역꾸역 숟가락을 입안으로 밀어 넣으며 빵빵한 배를 부여잡고 보리밥산 고지를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누군가는 지금 '그래서 주문진의 그 집이 어딘데?'라고 나에게 물어볼 테고 나는 그곳이 어디인지 가르쳐줄 수 있지만, 격렬했던 우리의 '보리밥 전쟁'을 수차례 치른 후 몇 년이 지난 지금, 주문진 할머니의 보리밥 식당은 그때의 그 모습을 잃어버렸다. 작년 내가 민간인 신분으로 반가운 마음에 할머님의 보리밥집을 찾았을 때에는 그 자리를 이어받으신 새 사장님이신지, 아니면 할머님의 자녀분들이신지 모르는 분들이 그곳에 계셔서 나는 식당 입구 유리에 붙은 '보리밥'이라는 메뉴를 보고도 아쉽게 발걸음을 돌렸다.


할머님이 아닌 다른 사람이더라도 예전에 내가 동지들과 함께 먹었었던 그 보리밥의 맛을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바랬던 것은 그저 보리밥 맛만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발걸음이 그 식당 안으로 쉽게 들여지지 않았다. 전투복, 전투화, 베레모를 신고서 문을 '드르르륵' 열면 인사말만 건네고 앉으면 말없이 보리밥과 반찬을 던져주실 것 같은 그 분위기와 그때의 그 할머님을 볼 수 없다는 그런 예감이 (의외로 식당 뒤편에서 할머님이 나타나서 '나 아직 안 죽었어 이놈아, 누구 맘대로 나를 대관령 넘겨'라고 하실 수도 있었겠지만) 나의 마음을 슬프게 했기 때문에.


그래, 그깟 보리밥이 뭐라고. 집에서 그냥 밥솥에 보리밥과 감자 좀 숭텅숭텅 썰어서 쪄먹으면 감자보리밥을 쉽게 만들 수 있을 것이지만, 그래도 그 음식에 담긴 당시의 추억과 그에 얽힌 어느 이름도 모르지만 현실적이고 냉담한 군인들의 마음을 녹여주셨던 할머님의 정이 그리운 것이다. 보리밥을 다 먹고 나면 '맥X' 원두 알갱이와 황설탕, 그리고 '프리X'가 담긴, 다방에서 쓸만한 레트로 스타일의 유리병들을 플라스틱 쟁반에 올려주시며 '커피 알아서들 타 먹어'라고 하시던 그 모습까지 다른 전우들은 그 모습과 말을 잊을지라도 적어도 나는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음식에 담긴 추억과 정을 먹고사는 사람이기에.


세월과 시간이 지나며 식당이나 음식이 변할 수 있는 것은 당연지사이지만, 그래도 우리 마음에는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이 있는 것이다. 그 할머님과 보리밥처럼.


아직 돌아가지 않으셨길 바라는, 주문진 보리밥 할머님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위하여, 무더운 여름 갈증 식히는 끈적한 주문진 중앙시장 콩국물로, 건배.




추신. '대관령을 넘어가다': 영동지방 어르신들의 관용어구로 '죽었다'는 뜻입니다. 영동지방에서만 쓰이는지 아니면 영서에서도 쓰이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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