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고로 Oct 27. 2024

[미식일기] 매기, 서울

'중경삼림' 씹어먹은 홍콩주점, 한국식 홍콩요리의 풍미 가득

피자대장님과 벅벅에서 고기와 치즈와 빵으로 서양식 만찬을 양껏 즐긴 김고로는 다시 이태원의 골목으로 나왔다.


피자대장님이 이태원에서 팝업 행사를 하실 때 애용했다고 하시는 괜찮은 커피집을 들려서 잠시 쉬는 시간을 갖고는 미리 예약해 놨던 어느 와인바도 잠깐 들러서 모 SNS에서 자주 뜨는 비결도 쓱 둘러보았다.


오픈 시간인 오후 5시부터 이미 사람들이 예약과 워크인으로 가득 들어찬 와인바는 오래된 건물의 맨 위층을 리모델링해서 다시 쓰는 곳, 여기저기 화분과 식물이 가득한 벽면에 통유리로 바깥 거리를 구경할 수 있게 만들어놓은 창가의 바 좌석들이 인상적이다.


계단의 난간과 틀에서 느껴지는 옛날의 향기가 눈앞을 감싸는 구식 건물들이었지만 그 안은 세련되고 깔끔한 현대식 인테리어로 꾸며놓은 모습을 보니 전통의 껍질을 두고 그 속은 요즘 세대에 맞춰서 손님들을 맞이하는 식당과 카페들의 유행이 한눈에 보이는 듯하다. 다만...


"아이고, 여기 음악 볼륨이 너무 커서 오래는 못 있겠어요."


"네, 저도요, 간단하게 한잔만 하고 나가시죠."


더 이상은 고용량 우퍼 스피커의 화려하고 거대한 성량을 견디지 못하는 두 남자의 고막이 괴로워하니 느긋하게 와인 한잔 마시기에는 고문과도 같았기에, 그들은 1시간도 채 앉아있지 않고 와인바에서 이태원의 골목으로 다시 나왔다.


"다음에 저녁 식사를 하러 갈 곳은 여기서 금방인데요, 그전에 이태원 산책이나 잠깐 할까요."


"좋아요, 대장님."


그들은 이태원을 가로지르는 왕복 도로를 건너서 영국식, 아일랜드식의 술집들과 이자카야 등과 함께 양옆으로 즐비하게 서 있는 골목으로 향했다. 이제 막 오후 5시 반을 넘어서 해가 뉘역뉘역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넘어가고 있는 이른 저녁이라.


수많은 사람들과 고성과 대화와 화려한 불빛들로 번쩍이고 시끌벅적할 골목과 거리는 음소거라도 된 듯 조용하다.


"평일 저녁에는 이태원도 역시나 조용하네요."


"여기 금요일, 토요일 저녁에는 사람 엄청나요."


벽돌처럼 보이는 외관, 현지에서 뜯어왔다고 해도 믿을만한 술집의 겉. 그리고 그 속에는 바 위에 매달려 있는 잔들과 홀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원목으로 된 의자들과 바에 붙어있는 입식 의자들.


물론 제대로 영업은 시작되지 않아서 다들 뒤집혀 있거나 손님을 기다리는 중이었지만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태원에 몰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여기도 이전에는, 그래도 이렇게까지 사람이 없지는 않았어요."


지속적인 불경기의 여파를 눈을 직접 볼 수 있는, 이태원을 교보재로 삼은 현장학습이 되어버린 산책을 마친 그들은 서양풍 술집들이 몰려있는 골목의 반대편 골목으로 가기 위해 큰 도로를 건너서 중국집, 수제버거집, 피자집, 동남아 식당들이 나열되어 있는 거리로 진입했다.


"이쪽 거리는, 길 하나를 두고서 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요."


"그게 여러 문화를 섞어 놓은 이태원의 장점이죠."


피자대장님과 김고로는 다시 저녁을 먹지 않은 사람처럼, 산책을 하며 뱃속을 정리한 후에, 어느 건물의 맨 위층에 붉은 글씨로 'Maggie'를 써놓은 간판을 건 식당으로 들어가기 위해 계단을 올랐다.


"엇? 사장님?"


"어? 오셨네요."


검은색과 작은 창으로만 이루어진 좁은 계단을 올라서 위로 가다 보니 마침 가게의 문 앞에서 바닥을 쓸며 손님맞이를 부지런히 준비하시던 매기의 사장님과 마주쳤다. 피자대장님과 비슷한 나이라고 들은 매기의 사장님은 대장님과 처음 보는 손님인 김고로를 담담하지만 친절하게 맞이했다.


"어서 들어오세요, 먼저 앉아계세요."


"감사합니다."


당차고 멋진 짧은 컷에 반짝이는 형광 노란색과도 같은 금발, 말라 보이지만 다부진 체격의 사장님에게서는 힘이 넘치는 오오라가 느껴진다.


"한잔 하시나요?"


"같이 앉아서 한잔 하시죠, 오늘 손님이 많이 올 것 같지 않아요."


"그럼 제가 맥주 꺼내올게요."


사장님들이 잔과 맥주병을 챙기고 김고로는 무얼 할지 몰라 우물쭈물 앉아서 덩그러니 남았다.


"그런데 이 분은 누구세요?"


김고로가 피자대장님의 지인인 사장님이 계시는 식당에 가면 항상 받는 질문이기에, 아무렇지 않다.


"피자 가게 단골손님이에요, 한 달에 한번 같이 식도락 다녀요."


"하하, 김고로입니다."


'단골손님과 사장이 이렇게까지 친해져서 놀러 다닌다고?'라는 호기심과 신기함이 섞인 눈빛을 받는 일이 처음이 아니기에 김고로는 멋쩍게 웃으면서 매기 사장님께 인사를 올렸다.


사장님들끼리 이런저런 얘기를 하시면서 한잔 기울이다가 매기 사장님은 손님들이 오셨으니 음식을 내오겠다며 주방으로 들어가신다.


그 사이에 김고로도 잠시 식당 안을 둘러본다. 작은 문을 통해서 식당에 들어오면 온 벽면이 검은색과 붉은색으로 둘러 쌓인 색감으로 손님들과 공기를 감싸고 작은 흰색 테이블과 검은 의자들, 그리고 그 위의 긴치마와도 같은 갓을 쓴 탁상 조명이 조용한 불을 밝힌다.


식당의 입구에서 바로 왼쪽에 자리 잡은 큰 주방은 배를 타면 볼 수 있는 문에 볼록한 아크릴로 만들어진 창을 통해서 주방 안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다. 주황색 등불이 주방의 가장자리를 밝히고 아마도 그 안 쪽은 타일로 포장된 벽에 화구들과 웍들이 즐비하겠지.


주방에서 홀로 음식을 위해 뚫린 빈 공간은 그 천장 근처에, 중국 본토의 음식점들처럼 음식사진들이 조명으로 빛나며 손님들을 비추고, 음식을 위한 주방과 홀 사이의 구멍을 통하여 향기가 뿜어져 나온다.


어두운 밤하늘의 빛나는 별들처럼, 비밀스러움과 잠잠한 분위기가 내리는 사이에 조명들과 사람들, 그리고 술잔에 비추인 빛들로 반짝이는 '별들이 속삭이는 홍콩의 밤거리'. 이태원의 중식 요리주점 매기다.


"처음 요리 드릴게요. 황비홍 깐풍 치킨이에요."


"이거 엄청 먹고 싶었어요."


피자대장님은 매기 사장님과 양양에서 팝업을 함께 하신 적이 있는데, 그때 매기의 황비홍 깐풍 치킨을 맛보시고는 엄청나게 맛있는 깐풍기라고 극찬을 하셨었다.

"기대되는데요, 사장님."


"식기 전에 드셔보세요."


콰직


바사사삭


모락모락 김이 나는 붉은색의 닭튀김을 큼지막하게 잡아들어 그대로 치아 사이에 끼워 넣는다, 앞니가 튀김옷과 맞닿아 닭살을 감싼 갑옷을 꿰뚫으며 가볍게 베어 넘긴다. 단단한 튀김옷의 촉감이지만 가볍게 부서지면서 이내 뽀얀 닭살이 쫄깃하게 씹힌다.


"허업 허업"


"아직 뜨겁네요"


매콤함이 먼저 입천장을 건드리면서 확 하고 올라오지만, 이내 함께 딸려 들어오는 달착지근한 단맛이 이슬이 내리듯 혀에 닿는다. 툭 치는 매콤함이 하늘로 솟는다면 단맛은 바닥에 깔리는 양탄자처럼 살포시 굴러들어 온다, 입안으로.

자그마한(우리 입에 비하면) 중화식 닭튀김 요리가 입안으로 들어와서 씹힌다, 코끝까지 밀려들어오는 향신료와 매콤함, 달콤함은 물론 쫄깃하고 부드러운 닭살과 단단한 듯 바삭한 튀김옷이 어울려 대비되는 식감으로 입을 즐겁게 한다.


고소한 계육의 향과 그 사이에서 별사탕처럼 씹히는 튀김 조각, 그런데 고추와 온갖 중식 향신료의 향을 더한 조각들이 바스락 거린다. 그리고 '황비홍'이라는 이름이 붙은 대로, 이 깐풍기 안에는 중식 식재료 중 '황비홍'이라는 브랜드 이름을 달고 있는 튀김 고추와 땅콩이 들은 황비홍 고추 튀김이 들어간다.


매기 외에도 다른 중식당의 매콤 달콤한 요리등에서 많이 만나봤었던 식재료인데 매기의 깐풍기와도 굉장히 잘 어울렸다. 땅콩의 고소한 맛과 바삭하게 튀겨진 고추의 식감에 깐풍기의 튀김과 풍미가 섞이면서 회오리처럼 맛이 증폭된다.


김고로는 함께 앉은 사장님들과의 대화와 허기에 밀려 제대로 된 표현은 하지 못했지만 수많은 끄덕거림과 눈감음, 음식에 대한 삿대질로 매기의 황비홍 깐풍 치킨을 극찬했다.

김고로가 오이를 싫어하는 탓에 맛을 알 수 없었던, 땅콩소스가 베이스인 홍콩식 오이무침

"다음 요리 내어드릴게요."


"와! 내가 좋아하는 튀긴 가지! 풍미가지네요!"


가지를 숭덩숭덩 조각으로 썰고 얇은 튀긴 옷을 입혀 튀겨낸 풍미가지는 김고로가 중국집에서 찾는 최애 메뉴 중 하나다. 일반적인 한국식 중화요릿집보다는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중국집이나 가지튀김을 하는 식당에서 찾을 수 있는 메뉴.


"아니, 가지를 튀기면 맛이 없을 수 없어요."


"가지 엄청 좋아하시나 봐요."


"그럼요, 매우 좋아하죠, 튀긴 가지는."


이미 뜨끈뜨끈한 튀김옷에서, 짭짤하고 달콤한 간장과 설탕의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김고로의 젓가락을 끌어당긴다.


작은 가지 한 조각을 들어 올린다. 겉보기에는 온순해 보이지만 입에서 깨물고 나면 부드러운 가지의 육질이 용암처럼 흘러나오기 때문에, 튀긴 가지는 조심해서 먹어야 한다.


"아흐아흐...!"


조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김고로는 이미 입으로 넣어서 씹은 지 오래다. 튀김옷은 가지의 표면을 살짝 스치는 바람처럼 얇게 붙었지만 입안에서 닿으면 단단한 질감을 그대로 표현한다, 그리고는 부드럽게 씹히며 가지와 함께 입안으로 휘말려 들어간다.


바삭바삭


중화요릿집에서 튀겨오는 가지튀김이나 풍미가지의 식감은 얇고 담백한 솜사탕을 사각거리며 씹는 맛이다. 씹으면 씹을수록 풍미가지의 겉면에 묻은 간장과 설탕이 섞인 소스가 끈적하게 튀김과 입안에 달라붙는다, 달착지근한 가지가 이내 납작하게 푹 치아와 혀 사이에서 눌리면서 채수가 흘러나온다.


"아, 이 맛이죠. 달콤 짭짤하며 새콤하고 부드럽게 씹히고 흐르는 이 맛!"


"가지를 정말 좋아하시는군요."


"네, 튀긴 가지는 사랑이죠."


닭튀김만 겉이 바삭하고 속이 촉촉함이 아니라, 잘 튀겨진 가지도 겉이 바삭하고 속이 촉촉하여 입안에서 녹아내린다. 달콤 짭짤하며 약간의 신맛도 함께 섞여있어, 양꼬치에 버금가는 술안주의 최고봉이라 개인적으로 인정하는 메뉴다. 특히나 중국집에 '풍미가지' 혹은 '가지튀김'이라는 메뉴가 있다면 꼭 주문해 보시길 바란다.


"요리도 많이 드셨으니, 이제 식사류 드릴게요."


"지금까지 제가 좋아하는 요리류만 내어주셨는데, 맛있는 음식을 또 주시다뇨."


볶음밥이 막 나온 모습을 보니, 그 냄새와 빛깔이 심상치 않다. 밥과 파, 달걀로만 이루어진 단순한 식재료의 조합이지만 김고로는 이렇게 단순해 보이는 볶음밥의 파괴력을 알고 있다. 지난날, 지금은 사라진 '진짜루'라는 볶음밥 집도 달걀, 파, 당근, 밥으로만 이루어진 소박한 볶음밥을 판매했지만 김고로는 이전에 그 소박한 볶음밥만큼 맛있는 볶음밥을 먹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따뜻할 때 드세요, 지금 먹는 게 정말 맛있어요."


김고로는 아직 다 먹지 못하고 남아있던 황비홍 깐풍 치킨과 풍미 가지가 있어서 그 음식들을 다 먹으면 볶음밥을 건드릴 생각이었으나, 매기의 사장님이 음식이 따뜻할 때 어서 먹어보라는 재촉에 이기지 못하고 수저를 들어 볶음밥을 맛본다.


"........... 이 맛은..!"


"맛있죠?"


대충 볶은밥 위에 달걀과 야채가 섞여서 부쳐진 어설픈 볶음밥을 내어주는 중국집이 많은 요즘, 밥알이 웍에서 파도치듯 널을 뛰며 한 알 한 알 기름에 코팅되어 매끄러운 쌀알의 윤택과 식감. 조미료가 스며든 기름에서 쌀알들이 뛰놀며 고슬고슬하게 씹히는 볶음밥.


독립적인 개체들이지만 한 숟가락 안에서 파와 달걀과 기름의 감칠맛으로 한 몸처럼, 군단으로 뭉쳐 입안으로 뛰어들어와서는 혀 곳곳에 침투한다. 쌀 한 알이 파스타의 '알덴테' 식감처럼 씹히는 식감을 주면서도 푸근하게 잇몸과 치아 사이로 감기는 맛이 어마어마하다. 참으로 맛있는 볶음밥을 먹으니 김고로의 고개 끄덕임이 멈추지 않는다.


"고로님은 반응이 엄청 좋으시네요."


"맞아요, 맛있으면 계속 반응해요."


중경삼림의 식사장면들이 생각나는 매기의 중식코스를 대접받은 김고로의 기억에 이 날의 식도락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이다.


식사를 다 마치고 나서 피자대장님과 서울역으로 향하면서도, 나중에 꼭 이쁜 그녀를 데리고 와서 함께 못 다 먹은 다른 메뉴들을 먹어야겠다고, 다짐하는 김고로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