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면발, 시원하고 깔끔한 국물, 불맛이 창조한 바다
지금은 폐업한 단골 카페의 사장님께서는 강릉에 있는 맛 좋은 중화요릿집을 얘기할 때마다 항상 집 앞에 있는 식당을 빼놓지 않고 언급하셨다.
"거기 짬뽕이 맛있더라고요, 식사 시간에 가보면 사람도 많고."
"그래요? 상호명이 뭐예요?"
"동보성이요, 짬뽕이 참 괜찮아요."
그렇게 카페의 단골손님들에게 집 앞에 있는 중화요릿집을 홍보하시던 사장님이, 자신의 최애 중국집 중 하나에 자연스럽게 모여드는 단골손님들의 모습 보게 됨은 이후 가까운 미래의 일이었다.
그렇게 이야기하실 때만 해도 김고로는 아직 포남동이라는 거주지로부터 약간 멀리 떨어져 있는 동네에 갈 생각이 없었기에 방문을 계속 미루어왔고, 카페가 폐업을 한 이후에야 겨우 가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고로님, 이번 달 맛집투어는 어디로 가실까요."
피자 대장님이 자신의 업장 위에 층에 새롭게 개업한 파스타 집에서 이쁜 그녀와 함께 파스타를 흡입하던 김고로에게, 월마다 실행하는 피자 대장님과의 점심약속 장소를 어디로 정할지 피자대장님이 물으셨다.
"이번 달은 포남동에 있는 동보성으로 가보려고요."
"오, 동보성? 거기 어렸을 때 할아버지 손 잡고 짜장면 먹으러 가던 곳이에요."
피자 대장님의 동업자이자 연인인 수달양이 어릴 적 추억이 생각나는 듯 빙긋 웃으며 답한다. 그만큼이나 이 '동보성'이라는 중국집이 강릉에서 오래된 식당이라는 말.
"네, 짬뽕이 맛있다는 소문을 들어서 한 번은 확인해 보러 가려고요."
"좋습니다, 기대되네요."
현재 동보성이 위치한 곳은 포남동으로 초당동 혹은 송정동과 가깝다고 할 수 있지만, 원래부터 이 가게가 이곳에 있던 것은 아니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치고, 대한민국을 덮치고, 강릉을 침략하기 이전에는 강릉 시내 대학로에서 눈에 띄게 잘 보이는 자리에서 오랫동안 터줏대감으로 군림해 온 식당이었으나 코로나19 기간 동안에 자리를 옮겨서 포남동으로 재정착했다. 하지만 새롭게 이사 간 곳에서도 음식 맛이 좋다는 평을 들을 정도이니 역시나 긴 시간을 버텨온 중국집의 저력은 변치 않는가 싶다.
그리고 피자 대장님과 동보성에 가기로 한 날,
'4인 코스요리도 괜찮은 가격으로 제공하지만 이번에 갈 때에는 짬뽕과 탕수육으로 만족해야겠군.'
포남동으로 향하는 길에 김고로는 퍽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피자 대장님이 운전하시는 차에 이쁜 그녀와 오른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자가용을 이용하면 먼 거리가 아니기에 동보성을 가기로 한 4인의 파티는 금방 포남동에 도착한다. 동보성의 영업 시작 시간이 오전 11시이기에 11시 반이 다 되어서 도착, 아직 점심시간이 시작되지 않았기에 한가로운 자갈밭 주차장과 문이 활짝 열린 식당.
햇빛을 차단하기 위한 선팅이 된 통유리로 외벽을 두른 식당의 내부 인테리어는 대부분 밝은 톤의 검은색과 환한 조명으로 치장되고 짙은 원목색의 의자와 탁자로 옛 고급 중국집에 들어온 기분이다. 붉은색과 반투명 시트지로 간판과 외벽을 꾸민 겉과는 상반되는 내부.
그들은 가게의 첫 손님으로 자랑스럽게 입장, 바깥에서도 잘 보이는 내부의 어느 자리에 앉아서 자연스럽게 주문한다.
"저희는 짜장면 하나, 짬뽕 하나로 나눠 먹어요."
"우리는 짬뽕 각자 먹을 거예요."
어릴 적 추억이 담긴 짜장면의 맛을 보고 싶은 수달양은 피자대장님과 나눠먹을 짜장면과 짬뽕을 하나씩, 자신만의 음식을 맛보고 싶은 김고로는 이쁜 그녀와 짬뽕을 각자 시킨다. 그리고 탕수육 작은 것도 하나.
주방에서는 어느 중국집에서나 대부분 많이 들을 수 있는 중국 북방 지역의 흐르고 굴러가는 표준 중국어로 대화를 크게 나누는 소리가 새어 나온다. 거기에 웍과 물이 끓는 소리가 왁자지껄하게 들리고 음식들이 금방 나온다. 처음 식탁에 오른 음식은 '요리부'의 탕수육.
노포 중국집들에서 맛보던 토마토케첩이 들어가거나 투명한 빛깔의 탕수육 소스가 끼얹어진 탕수육을 기대하던 김고로는 짙은 고동색의 간장과 설탕이 섞인 소스에서 강한 신맛이 피어올라오자,
'소스는 유행을 따라가시는구나.'하고 생각하며 탕수육을 하나 집었다.
콜록콜록
다들 젓가락으로 탕수육을 한 조각씩 집어 먹으려 말고 소스에서 강한 산미가 터져 나오자 일단 기침을 한번. 그리고,
바삭
갓 나와서 바삭하게 뜨끈뜨끈한 탕수육을 베어무니 새콤하면서도 강하게 달콤한 탕수육의 맛이 좋다.
"저는 여기 탕수육이 소스가 부어서 나오는 '부먹'일 줄은 생각 못했어요."
'탕수육은 원래 소스를 미리 부어서 먹는 건데요, 튀김이 금방 눅눅해지는 곳에서 따로 주면서 소스에 찍어 먹는 문화가 생겼죠.'
김고로는 탕수육이 입안에 있어 혀가 바쁜 탓에 머릿속에서 수달양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탕수육과 함께 속으로 삼켰다. 동보성의 탕수육은 튀김이 과하지 않고 얇으며 탕수육 고기도 쫄깃하고 속이 튼실하다. 소스가 묻어서 시간이 지나면서 바삭했던 튀김옷은 옛날 중국집들처럼 약간의 바삭함에 쫄깃한 식감으로 대체된다.
"탕수육 소스의 신맛이 강해서 본토의 꿔바로우를 먹는 기분이네요, 꿔바로우는 생강과 식초맛이 강렬해야 맛있거든요."
"중국 본토의 음식은 역시나 다르군요."
탕수육에는 당근과 적양배추, 양파가 푸짐하게 곁들임으로 나와서 아삭하고 신선한 식감을 함께 즐기며 진부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새콤달콤한 맛으로 입맛을 돋운 김고로는 탕수육이 반 이상 사라진 때를 잘 맞춰 나온 짬뽕으로 눈을 돌린다.
"여기 면이 넓네요? 다른 곳이랑 달라."
"맞네, 링귀니면 같아요."
일반적인 중화요릿집의 면발은 기본적으로 그 생김새가 기다란 원통 혹은 직육면체 모양이다, 굵은 젓가락 혹은 얇은 대나무 꼬지와 같은 생김새, 굵은 스파게티면과도 비유할 수 있겠다. 하지만 동보성의 면발은 칼국수면만큼이나 넓적하다, 파스타면으로 치면 김고로와 이쁜 그녀가 집에 많이 저장해 두고 먹는 링귀니면과 같다.
"왜 이런 면을 선택했는지 궁금하네요."
"그러게, 왜 굳이 이랬을까."
김고로는 궁금증은 먹다 보면 풀리지 않을까 생각하여 잠시 호기심은 접고 자신의 앞에 등장한 동보성의 그 소문의 짬뽕을 마주한다. 오징어, 새우, 뉴질랜드산 녹색 홍합, 양파, 부추, 애호박으로 구성된 짬뽕은 김고로가 군산의 비응항에서 먹었던 비응반점의 해물짬뽕을 생각나게 했다.
우적우적
짬뽕에 들어가는 해산물의 신선도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 중 하나인 오징어를 씹는 김고로. 자주색 껍질과 함께 뽀얗게 삶아진 오징어가 입안에서 탱글거리면서, 아직도 자신의 생명은 소화되기 전까지 꺼지지 않았다는 항명을 하듯, 날뛰듯 씹힌다. 쫄깃하며 시원한 오징어의 바다맛이 입안에 가득하다. 거기다 오징어의 다리와 입이 있는 조각들로 유추해 봤을 때, 말린 수입산 대왕오징어의 조각이 아닌 신선한 생물오징어를 썼을 확률이 높다고 김고로는 자신했다. 우선적으로는 신선한 재료로부터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바다맛이 가장 큰 증거니까.
"오, 오징어 신선해. 맛있어. 이러면 다른 재료들도 비슷한 조건일 확률이 크지."
"네가 그렇게 말하면 그러겠지."
오징어와 같은 해산물을 그리 좋아하지 않고, 바다의 비린맛에 민감한 김고로가 '오징어 맛있어'라는 말을 하니 이쁜 그녀도 동보성 짬뽕 건더기 재료에 불만이 없다. 그들은 거의 비슷한 순간에 국물을 맛본다.
후루룩
베트남 고추가 추가로 들어간 매운 짬뽕이 아니라 일반적인 보통 짬뽕을 주문했기에 입안을 강렬하게 때리는 매움은 없으나, 오징어와 홍합, 새우 등에서 짬뽕 육수로 스며든 북엇국과 같은 시원함과 그를 뛰어넘는 상쾌함, 그리고 찝찝함 없이 똑 떨어지는 깔끔하게 매콤한 육수가 김고로와 이쁜 그녀의 입맛을 휘어잡는다.
"와아."
"캬, 햐아."
전 세계의 모든 인류가 맛 좋은 국물을 마시고 나서 토해내는 공통 감탄사가 그들의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김고로는 거기에 추가로 고개까지 끄덕인다.
"자극적인 가미 없이 깔끔하고 시원해. 부담스럽지 않은 짬뽕, 좋네."
"음, 그리고 이 면발이 다른 면발보다 더 맛있어."
김고로는 동보성이 이러한 면발을 사용하는 이유가 무엇일지 먹으면서 생각해 보았다.
후루루루룩
젓가락에 쉽게 잡히는 면발이라 먹기 편한 점도 있고, 동보성의 짬뽕은 다른 중화요릿집의 짬뽕에 비해 국물에 고춧가루가 거의 들어가지 않은 것처럼 깔끔하고 가벼우며, 시원하며 간이 세지 않다. 자극적이거나 진하고 강한 맛도 아니기에 얇은 면보다는 육수의 맛이 면발에 더 많이 묻어 나올 수 있는 비교적 넓은 면을 사용할 때 동보성 짬뽕의 매력에 더 발휘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김고로였다. 동보성의 주방을 책임지시는 사장님은 '아닌데, 그냥 넓은 면이 좋아서 하는 건데'라고 할 수 있겠지만.
물론 동보성도 탄산수소나트륨, 일명 '면짱'이라 불리며 면에 쉽게 탄력을 부여하는 가루를 넣어 만든 면발이라 노란면이지만 그 모양 덕분에 더 넉넉하고 부드러우며 매끄러움을 자랑하는 면이 입안에 잘 말려들어오는 느낌이다.
김고로는 새우와 홍합살을 발라서 삼키고, 면발을 다시 한번 강하게, 바닷물을 빨아들이는 고래처럼 크게 빨아들인다.
꿀렁이는 조류, 파도와 같은 노르스름한 면발이 철썩이며 입안으로 밀려들고 썰물처럼 식도로 빠져나가자 짬뽕 그릇을 잡아 들이키며 바닥이 드러나 있던 입안을 육수의 밀물로 채우는 김고로. 적당하게 매콤하며 똑 떨어지는 시원함은 짬뽕 국물을 많이 마시지 않는 김고로로 하여금 배가 다 부를 때까지 마시게 만들었다. 이쁜 그녀도 김고로보다는 천천히 식사를 하며 동보성이 만들어낸 바다의 맛을 느긋하게 즐긴다.
"우리 집에서 멀어서 아쉽다, 짬뽕 참 맛있는데."
"기회가 되면 근처 왔을 때 또 오자."
식사를 마친 일행은 손님들로 서서히 채워지고 있는 동보성을, 만족스러운 배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