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일기] 부산족발, 부산

냉채족발과 장육의 시조, 미각을 뚫는 상큼하고 얼얼한 마성의 소스

by 김고로


김고로가 '냉채족발'이라는 음식을 처음 본 때는 지금보다 나이가 더 젊었을 적 어느 TV프로에서였다. 부산의 족발거리에 가서 그 거리의 특색 있는 족발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는데, 그때 부산의 냉채족발 집들을 김고로는 처음 보았다.


이후에 고성군에서 군으로 근무를 하던 시절, 선배들과 함께 주문해서 먹었던 동네 프랜차이즈 족발집의 냉채족발은 그럭저럭 달콤한 맛으로 큰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었다.


어느 음식이나 요리법의 원조를 좇아 올라가다 보면 그 시작이 확실한 경우도 있고, 누가 '원조'냐를 따지는 논쟁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김고로가 부산에서 방문한 '부산족발' 집은 냉채족발을 처음 개발한 집이라고 알려진 곳 가운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원조'라고 기정사실처럼 인정받는 곳이다.


물론, 이 '냉채족발'이라는 음식의 원조 개발자라고 주장하는 다른 집들도 있지만 과거 당시의 공식적인 문서가 없는 한 제삼자 입장에서는 알 수 없기에 김고로도 냉채족발의 원조라고 많이 인정받는 '부산족발'에서 냉채족발을 먹기로 마음먹었다.


울산에서 J군을 만나 즐겁게 식사와 쫀드기, 로스터리 카페인 '데미안' 본점에서 드립커피를 마시고는 부산으로 다시 동해선을 타고 내려왔다.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한 동생네 부부가 순천에서 출발하여 7번 국도를 따라서 여행을 할 계획이라는데 부산을 들리니 시간이 맞으면 같이 밥을 먹자는 연락이 왔다.


같이 밥 먹자는 제안을 마다할 김고로가 아니다, 부산에 오면 약간 늦은 저녁 시간이라지만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그것도 상관은 없기에 흔쾌히 그들을 기다렸다가 냉채족발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김고로와 이쁜 그녀가 머물고 있는 동네에서 광안대교와 부산항대교, 영도대교를 건너서 예전에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열었던 자갈치 근처 광복동으로 향한다. 부산에서 족발집들이 많은 유명한 거리는 '부평족발거리'인데 이 근처에 막창과 곱창을 파는 집들도 즐비한 골목도 있다. 국제시장과 자갈치 등이 인접해 있기에 외국인 관광객들도 곧잘 볼 수 있는 동네.


저녁 7시가 넘어서 식당 앞에 도착하니 역시나, 약간은 긴 줄이 기다리고 있다. 족발은 회전율이 빠른 음식이기도 해서 줄이 빠르게 사라지기는 하지만, 김고로는 기다리면서까지 식사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래도, 부산에 자주 오는 것도 아니거니와 냉채족발을 굳이 먹으러 올 일은 더 없기 때문에 동생네 부부와 스몰토크의 시간도 가질 겸 30분을 조금 넘게 기다려서 식탁에 앉는다.


4명이서 몇 인분을 시켜야 할까 고민하다가 냉채족발과 장육을 합쳐 총 6인분을 주문했다. 그런데 옆에 있는 2인 손님이 족발을 4인분을 주문하는 게 아닌가.


"형님, 우리 주문이 무언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화물차 등 특수 차량 등을 주로 정비하며 많은 힘과 체력이 필요하기에 한 끼를 두 끼처럼 먹는 동생의 남편이 동공이 흔들리며 얘기했다.


"일단, 기다려보자. 모자라면 2차를 가자."


"그러자."


옆에서 이쁜 그녀가 '족발이 모자라면 2차'에 동의하며 김고로와 일행은 얌전히 족발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환한 전구색의 불빛이 100명 이상은 거뜬히 수용할 수 있는 큰 매장의 곳곳을 비추고 매장의 외관 벽은 통창으로 되어 통유리 너머로 손님께 나가는 잘 익은 족발이 얇게 썰려 켜켜이 쌓여 냉채 소스로 하나가 되기 위해 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메뉴판을 보니 족발 메뉴들의 커다란 사진과 함께 솥밥과 된장찌개 등의 식사 메뉴가 있었다.


'아, 족발의 양이 적은 게 분명하겠군. 아니면 저런 식사 메뉴가 있을 리 없어.'


김고로가 주변에서 주문하는 족발의 양으로 가늠해 보건대, 이건 갈빗집에 된장찌개와 냉면의 존재 이유를 알려줌과 같았다. 하지만 김고로와 일행은 족발로 배를 채울 기대를 하고 왔기에 주문 후에 밀려오는 후회감은 어쩔 수 없었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다가 주문이 들어가다 보니 예상보다 조금 더 기다려야 했지만 주변에 나오는 음식들의 품질을 보니 서서히 기대감도 차올랐다.



"냉채족발 드릴게요, 장육도 곧 나옵니다~"


"네, 감사합니다."


김고로 일행이 오이를 먹지 않는 사람들이 절반이 넘어, 오이를 빼달라고 부탁을 드렸기에 냉채족발에 오이는 나오지 않았다.


장육과 냉채족발은 같은 소스를 사용한다. 다만 냉채족발은 소스가 있는 족발을 게맛살, 오이, 달걀지단, 해파리냉채와 함께 곁들여 먹는다. 살코기만 있는 부분은 가늘게 채쳐서 해파리냉채와 함께 버무려 게맛살을 위에 올리고, 껍질과 비계가 붙은 부분은 조금 더 넓게 어슷어슷 썰어서 쌓아 달걀지단을 올려놓는다.



김고로는 우선적으로 궁금한 소스를 맛본다.


후불


혓바닥에 넓게 번지는 단맛이 상큼한 식초의 산미와 함께 넘실 차오르다가 콧구멍으로 쾌속 진입하는 얼얼하고 화끈한 겨자와 함께 인간의 미각을 지배한다.


"워우, 이 소스 장난 없네. 달콤 새콤하면서 겨자로 깔끔하게 똑 떨어지는 맛. 무지막지한데?"



김고로는 채친 살코기와 해파리냉채를 집어서 비계가 붙은 넓은 살코기와 함께 씹는다. 살짝 서늘하기도 한, 시원한 돼지고기가 김고로의 입천장과 입벽을 스치며 치아에서 씹힌다. 차가운 돈육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쫄깃함과 부드러운 육질에 두 번 놀라는 김고로, 탱글거리는 비계와 껍질이 조금 더 탄력 있는 맛으로 입안에서 널을 뛴다.


그 사이로 오독거리면서 기분 좋은 소리를 내는 냉채가 쫄깃한 돼지고기와 함께 씹히면서 상반되는 식감으로 입을 즐겁게 한다. 김고로는 개인적으로 해파리냉채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큼함과 알싸함이 섞인 소스가 해파리냉채와 돼지고기의 단점을 모두 중화시키고 오히려 그 식감들로 장점을 끌어올린다.


"이 달콤함이 처음에 눈을 번쩍 뜨게 하면서 팍 치고 올라오는데, 그걸 신맛이 극대화시키면서 겨자가 싹 잡으면서 끝을 내. 그런데 그 과정에서 감칠맛이 크게 올라온다. 와, 이 냉채소스 유명할만하는구나."


요리에서는 물론, 신선하고 좋은 식재료가 중요함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음식의 맛과 매력을 상상 이상으로 증폭시킬 수 있는 도구가 바로 소스 혹은 양념. 방송에 많이 알려진 모 외식전문가는 '미슐랭 셰프들의 특징은 맛있는 자신만의 소스를 잘 만든다'라고 얘기하기도 했으니까.



김고로는 이어서 나온 장육도 젓가락으로 집는다. 장육은 비계가 없는 살코기를 넓고 최대한 얇게 썰어서 마늘을 더한 냉채 소스를 끼얹어 먹는 요리다. 냉채족발도 같은 소스를 사용하지만 조금 더 돈육과 소스에 집중할 수 있는 음식. 김고로는 얇게 저며진 돈육을 두세 점 집어서 씹어본다.


사각거릴 거라고 점쳤던 김고로의 생각과는 다르게 차가운 돼지고기가 쫄깃하고 부드러우며 탄력까지 살아있다. 비계가 보이지 않지만 살코기 안에 비계가 잘 섞여있나? 아니면 부산족발의 고기 삶는 기술 덕분일까? 아마도 둘 다인가?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그리고 거기에 장육 아래에 깔린 채친 양배추를 함께 먹으니 아삭거리는 식감이 더해진다.



부산족발에서 사용하는 새콤달콤, 얼얼한 소스의 가장 큰 매력은 질리지 않는다는 점. 단맛이나 신맛 등 어느 특정한 맛이 강하게 되면 나중에는 이 맛에 무덤덤해지고 질리기 마련인데, 이것들이 겨자와 마늘 등 알싸하고 매콤한 향신료들과 만나 혀를 크게 자극하기 전에 말끔히 지워진다.


단순히 고기에 냉채 소스를 끼얹어 먹는 음식이라고 볼 수 있지만, 쫄깃함과 아삭함, 그리고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는 맛들이 서로의 단점을 상쇄시키면서 음식 안에서 장점들을 오랫동안 살리고 매력을 길게 표현한다. 쉽게 말하자면 '질리지 않는 맛', '손이 계속 가는 맛'이다.


냉채족발과 장육의 맛에 끌린 사람은 김고로뿐만 아니라 부산족발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인 듯, 김고로 일행 테이블 위의 음식들도 빠르게 사라져 갔다.


"아, 무언가 조금 더 먹고 싶은데."


"그래? 그러면 2차를 가서 또 맛있게 먹자."


"그래요, 형. 가시죠."


기다렸던 시간만큼이나 진하게 농축된 맛과 다양한 식감을 즐긴 김고로 일행은 다시 부평족발거리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