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일기] 초량불백, 부산

달콤한 밥강도, 불맛으로 입맛을 바싹 구워버리는 불고기백반

by 김고로

부산의 족발거리에서 즐거운 식사를 마친 김고로 일행은, 김고로가 생각했던 다음 장소와는 다르게 부산역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초량동으로 향하고 있었다.


김고로의 친한 동생의 남편인 Y군은 부산 진구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부산 토박이, 적어도 부산에 있는 식당들에 대해서는 김고로보다도 더 많이 알고 있기에 김고로는 그의 인도를 따랐다.


아쉽게도 부산족발에서 먹었던 냉채족발과 장육의 양이 배가 고프고 또 고팠던 네 사람의 위장을 가득 채우기에는 모자랐기에, 그들은 2차 식사를 하기로 했다. 어디로 갈까 잠깐 생각하다가, 광복동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Y군의 오랜 단골집에 가기로 했다.


부산이라면 밀면, 국밥, 자갈치, 복국, 중화요리 등으로만 쉽게 치부될 수 있지만, 의외로 부산역 근처의 동네들을 다니다 보면 다양한 노포와 식당들을 만날 수 있다. 김고로도 초량동의 불백(불고기백반) 정식이 유명한 사실은 이날 처음 알았다.


불백이라면 기사님들의 최애 메뉴 중에 하나로 떠오르기 마련인데, 아. 그렇다, 대한민국의 제2의 도시, 총알보다 빠르고 지도 어플보다도 더 방대한 정보력으로 골목들을 누비고 다니며 모든 승객들을 원하는 시간보다 훨씬 여유 있게 수송하기로 유명한 기사님들이 많은 도시에 기사식당이 많지 않을 리가 없지.


초량역에서 초량3동으로 들어가면 동네를 가로지르는 내천을 따라 올라가면 (김고로가 아직 맛본 적은 없는) 돼지갈비골목도 있고 거기서 좀 더 올라가면 부산고 근처에 서로 어깨를 마주한 불백집들이 남아있다.


Y군의 말에 따르면 초량동의 불백집들은 점심시간 정도에 열어서 밤늦게까지 하는 곳이 많다고 한다, 그렇기에 김고로의 일행이 '초량불백'에 입장한 밤 9시가 넘은 시간에도 소주를 기울이며 울긋불긋한 불고기백반에 반주를 하는 손님들이 많았다.


동네의 노포 음식점들이 으레 그렇듯, 동네에서도 자신의 취향에 맞는 식당을 따라서 단골로 정착하는 손님들이 있고, Y군은 그중에서도 초량불백의 단골이었다. 근처에 이모댁이 있어서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손을 잡고서 초량불백 집에 밥을 먹으러 왕래했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그 말을 반증하듯, 초량불백의 여사장님께서 Y군을 함박웃음으로 맞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모! 여기 불백 6인분이요!"


"6인분? 니 그 다 물 수 있나?"


"그럼요, 왜 못 먹어요. 내 몸집이 이런데."


부가 설명을 하자면 Y군은 매우 큰 사람이고, 김고로도 평균보다는 더 잘 먹는 편이다.


김고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불백집 앞에서 삼삼오오 모여 담뱃불을 붙이고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 너머 초량불백집은 샛노란 바탕에 굵직한 검은색 글자로 '가정식백반 초량불백'이라고 쓰인 간판을 걸었다. 주홍색의 짧은 어닝 아래로 통유리로 된 외벽 우측과 좌측에는 식당을 다녀간 유명인들의 싸인과 초량불백거리에 소개를 지나 내부로 들어가면 다시 유명인들의 싸인이 가득한 벽과 창가, 회색 바닥 위에 검은 알루미늄과 나무재질로 된 의자와 식탁이 형광등 아래에서 빛을 반짝인다. 안으로 더 들어가면, 조금 침침한 불빛 아래, 지글지글 불고기백반을 구워내는 거뭇거뭇한 화구와 식기들, 스테인리스 덕트와 부식 준비대. 강릉을 포함한 어느 한식집에서나 볼 수 있는 익숙한 풍경에 김고로는 알지 못할 편안함을 느꼈다.


"반찬 드릴게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음식을 기다리던 도중에 밥과 반찬, 된장찌개와 쌈채소가 먼저 모습을 드러낸다. 미역줄기, 무생채, 땡초와 마늘, 쌈장에 쌈추와 깻잎을 담은 아담한 플라스틱 소쿠리. 그리고 어두컴컴한 빛깔의 무쇠팬 위로 붉은 돼지고기가 나온다.


얇은 돼지고기에 양파, 대파가 송송 썰려 새빨간 옷을 나눠 입고 탈 듯이 뜨거운 철판 위에 누웠다. 아직까지도 지글거리는 소리가 나고 거뭇거뭇한 숯 칠이 군데군데 묻은 직화의 기운에 설탕과 고추장이 그을려 매콤 달콤한 향이 피어올라 식탁을 잠식한다.


"와, 이 냄새가 엄청나네."


잠깐 숨을 들이쉬었는데 달콤함에 살짝 매운 냄새가 섞인 연기가 코안으로 들어와 김고로를 식전부터 압도했다. 이제 김고로도 젓가락을 들어 반격할 차례다.



일반적으로 쌈채소에 다시마줄기, 무생채, 김치에 고기를 싸서 먹지만 김고로는 불백 자체의 맛이 궁금했다. 얇은 고기 몇 겹을 들어 올려 입으로 가져온다.


우걱우걱


김고로의 혀 밑에 고여있던 타액이 불백의 양념과 만나 달콤함으로 입안을 감싼다. 불에 탄듯한 설탕이 감칠맛으로 변하여 뒤이어 따라오는 고추장의 매콤 달콤한 하늘에 별빛으로 쏟아진다. 김고로의 눈이 번쩍 뜨인다.


"우오! 와 이거 뭔데."


얇은 고기가 바싹 구워져서 뻑뻑하거나 질긴 식감이 없다, 야들야들하고 쫄깃한 돼지고기(식감 때문에 전지인지 후지인지 구분이 어렵다, 돼지불고기는 주로 후지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말이다)이기에 씹으면 씹을수록 튀어 오르듯 쫄깃하고 육질 사이에서 알싸한 달콤함과 진득한 고기맛이 새어 나온다.


'고기를 얇게 해서 조리하는 직화구이, 이거 엄청나네.'



김고로가 이전까지 먹었던 '돼지불고기' 혹은 '불고기백반'이라 함은 매콤 달콤하거나 짭짤 달콤한 간이 강한 양념에 비계가 살짝 붙은 두툼한 고기를 볶거나 구워낸 맛이어서 쫄깃하면서 식감이 묵직한 경우가 많아서 제육볶음과는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많았는데, 초량불백의 '불백', 돼지불고기는 자신의 정체성이 확실했다. 적어도 김고로의 경험으로는, 제육볶음에 이렇게 얇은 고기를 쓴 곳은 먹어보지 못했으니까.


양념한 대패삼겹살을 볶아내었는가? 아니다, 비계가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지방이 육질에 잘 녹아있었음은 치아 사이에서 느껴지는 고소함이 증명하고 있었다. '얇다'는 특징은 양념을 골고루 흡수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양념과 고기가 쉽게 탈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생존한 노포의 불백장인이 그걸 모를 리가 있겠는가.


'향기'라고 할 수 있을 만큼의 훈제의 냄새가 고기에서 피어오를 만큼의 딱 적절한 굽기, 인류가 처음 불을 발견하여 고기를 구워 먹기 시작한 때부터 침샘과 미각을 조건반사처럼 자극하게 하는 그 냄새가 김고로의 후각세포를 즐겁게 한다.


김고로는 쌈추에 불백을 수북하게 올리고 김치를 조금, 마늘에 쌈장을 조금 찍어서 무생채를 얹고 쌈을 만들어 입안에 던진다.


아사삭


사각사각


우적우적



쌈추의 심심한 사각함에 새콤한 무생채가 매콤 달콤한 고추장맛의 얇은 돼지고기와 어울려 사각거리며 색다른 식감을 뽐낸다. 알싸한 마늘이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하며 사라진다. 김고로는 미역줄기를 좋아하지 않기에 쌈에 포함하지 않았지만, 조금 더 상큼하고 색다른 식감을 더해주지 않았을까.


붉고 투명하여, 형광등 불빛에 반사되어 영롱하게 빛나는 기름에 굴려진 파와 양파도 집어서 씹어본다. 사각거리며 아작아작거리는 채소의 식감이 달콤하다, 그 채소에서 묻어 나오는 고깃기름의 감칠맛도 매력적.


불백과 쌈채소의 조합으로 계속 먹다 보면, 불백에 묻은 양념의 맛도 혀를 자극하고 얼얼하게 하는 맛은 아니고 집에서 먹는 제육볶음처럼 편안한 맛이라 질리지 않고 밥이 계속 들어간다. 부산에서 먹는 불백이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크게 놀랐다.


"다음에 부산 오면 여기 또 오고 싶다. 당일치기로 초량불백만 먹으러 오고 싶을 정도야."


김고로는 이쁜 그녀의 말에 동감하며 텅 빈 무쇠팬을 바라보고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래, 우리 다음에 부산 오면 초량동에 또 오자."


식사를 즐겁게 마친 그들은 아직 채워지지 않은 후식 위장을 채우기 위해 어두운 초량동 골목으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