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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Feb 05. 2022

행복할까?

단순하고 어려운 우리네 인생의 그것

'행복할까?'


사람 많고 차 많고 복잡하고 돈 많고 비싼, 적어도 나에게는 그러한 동네인 서울. 서울에서 놀고 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으시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마음 편한 도시가 아닌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한 서울에서도 물질과 권력의 힘을 잘 느낄 수 있는 곳 중 하나인 청담동의 압구정, 그곳에 어느 유명 셰프가 운영하는 파인 다이닝을 이쁜 여자와 함께 즐기러 갔던 날이었다, 바깥에 잭과 콩나무에 나오는 커다란 콩나무 마냥 그 안에는 수많은 성냥갑과도 같은 방들을 품은 주상복합건물을 바라보면서 나는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살면 행복할까?"


나는 이쁜 여자에게 물었고 이쁜 여자는 답했다,


"행복하지 않겠어?"

"그럴까?"


그렇다, 나도 그것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리 쉽게 고개를 끄덕이고 싶지는 않았다. 행복이라는 것은 주관적인 가치이기에, 꼭 물질이 많고 내가 잘나고 명예가 높고 사회적인 위치가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행복할 것이라는 증거는 없다...'그사세'에 사는 사람들도 '그사세' 나름 고민과 걱정거리, 부정적인 감정을 품고 살 수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나 혹은 내 주변의 사람들처럼 물질적인 부족으로 인한 부정적인 감정의 발생은 없겠지, 아... 상대적인 부족함을 느껴서 그럴 수도 있겠다.



다시, 그날의 서울 청담동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 있던 우리로 돌아와서, 나는 한 끼 식사로 지불하기에는 어마어마한 가치의 장장 2시간에 걸친 풀코스를 음미하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처음 레스토랑에 입장할 때부터 시작된 홀 매니저들의 격식과 예의가 갖춰진 손님 대우와 겉옷 맡아주는 서비스, 트러플과 샤프란, 철갑상어알 등등 평소에는 먹기도 힘든 진귀한 재료들이 아낌없이 가미된 식사, 그리고 그에 들어간 키친 스태프들의 창의성과 노력, 마지막 식당에서 나오면서도 황송한 90도 직각인사, 거기에 나의 복잡한 생각에 정점을 찍은 것은 압구정 로데오 지하철역으로 향하면서 눈에 담길 수밖에 없었던 명품거리에 있던 수많은 명품 브랜드 매장들.


나의 오감을 통해 나의 뇌에 저장된 그 수많은 정보들이 나에게 묻고 있었다, '행복할까?'


압구정 로데오의 지하철역에서 우리와 함께 지하철을 타며 퇴근을 하시던 청담동의 수많은 매장들에서 일할 것이라고 추정되는 피곤한 표정과 몸짓의 사람들, 그들을 보며 나는 나에게 물었다, '행복할까?'


아, 확실히, 내가 레스토랑에서 맛보았던 그 식감과 향미 그리고 여유로운 식사로만 본다면 행복할 수 있겠지, 적어도 며칠은. 다만 그러한 식사도 일상처럼 반복된다면... 그러한 것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까?


이 글을 쓰면서 확실하게 얘기하고 싶은 것은 지방의 어느 관광도시에 사는 가난뱅이 유부남이 서울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지며 겪은 그 옹졸한 질투심에 '행복은 물질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우후훗'하며 정신 승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날 느낀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나로 하여금 '사람은 무엇으로 행복한 것일까?' 하며 다시 자문하게 한 것이었다.


처음 맛보는 물질의 가치, 처음 느껴보는 고가의 식감과 향미, 그런 것도 반복이 되고 일상이 된다면 '행복'이 아니라 '보통'이 되어버릴 텐데 말이다.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음식 그것만으로... 어떤 사람은 행복하다고 얘기할 수 있겠지만, 나는 얘기하고 싶다, 사람의 행복은 그리 단순한 것만은 아니라고 말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물질이 있어야 사람다운 삶이 영위된다는 것은 인정한다, 다만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쓰다 보니 '행복'이라는 이 주관적인 가치가 굉장히 얻기 어렵고 복잡한 것 같이 되었지만 평소처럼 살다 보면 이건 생각보다 간단하고 단순하기도 하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다만 그것을 추구하고 억지로 좇아가려고 하면 얻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 복잡하고 어렵고 단순하고 간단한 '행복'이라는 녀석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 우리를 찾아온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찾아갔던 포남동의 어느 팥죽집, 단팥이 정말 맛있다고 들어서 첫 방문 때는 팥빙수를 먹으며 즐거웠던 집이었다. 이쁜 여자가 다시 가고 싶다고 하여 또 방문한 가게 사장님이 즐거워서 운영하는 그 가게, 단팥죽과 호박죽을 주문하여 따뜻해 보이는 나무 숟가락으로 한입을 삼켰을 때, 나와 이쁜 여자는 서로 눈을 맞추고 슬며시 방긋 웃고는 말없이 단팥죽과 호박죽을 흡입했다. 사이드로 나온 아몬드가루, 마요네즈 혹은 크림에 버무려진 과일 칵테일 샐러드가 지루할 수도 있는 죽에 상큼함을, 쌉쌀하면서 구수한 차가 물려버릴 수도 있는 달달한 입맛에 깔끔한 마무리를. 첫 숟갈을 먹자마자 나는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말했다.


"사장님, 혹시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하루를 행복하게 하는 맛이네요."


서울 청담동의 그 공간과 맛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그 감정을, 어느 아파트 단지 앞 골목의 작은 죽집에서 느낄 수 있었다. 참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행복감이라는 것이 웃기지 않은가? 2시간의 풀코스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그 감정을 작은 죽 한 그릇에서 먹을 수 있었다. 청담동의 그 코스요리가 별로였어서 그런 거 아니냐고? 아니, 그 요리는 진정 그 가격의 가치를 다하는 훌륭하고 맛있는 요리였다, 다만 그 음식이 사람을 행복할 수 있게 하느냐 혹은 아니냐는 또 다른 문제다.


음식을 맛있게 하는 것은 요리사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음식을 먹는 사람으로 하여금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집에서 이런저런 요리를 취미 삼아 만들어내며 식사를 해주는 이쁜 여자와 가끔 오는 손님들의 즐거운 표정을 볼 때면 마음속으로 큰 뿌듯함을 느끼는 바다. 내가 어느 식당의 부엌에서 음식을 해서 그저 홀 담당 직원에게 전달해주기만 하는 일을 한다면 볼 수 없는 표정과 감정 들이었을 테니까.


당신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던지, 나는 당신이 적어도 삶에 감사하고 만족하며 삶의 사소하거나 큰 행복들을 느끼고 나누면서 살아가고 있기를 소망한다. 행복함이라는 것은 위에 내가 떠들어 놓은 것처럼 복잡하기도 단순하기도 한 가치이기에, 어떠한 것이라고 함부로 정의하고 싶지 않다, '주관적'인 것이니까. 그렇기에 당신이 당신의 삶에서 행복함을 느끼고, 남들에게 행복함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것은 또 다른 의미로 성공한 삶이 아닐까. 당신은 행복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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