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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Feb 18. 2022

[픽션]극락식당

1-1

인간은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텅 빈 동공, 힘없이 얼이 빠져버린 입, 차가운 장작개비처럼 굳어버려 축 늘어진 사지. 그것은 우리가 흔히 죽음이라고 부르는 현상이었다. 내가 일해왔던 직업의 이력상 수십, 수백 번 인간의 죽음이라는 것을 마주치고 살아올 수 밖에는 없었다. 직접적으로 죽음이라는 세계에 뛰어드는 직업은 아니지만 그것과 가까운 시공간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일들.


하나의 인간을 지탱해왔던 수십 년의 역사와 이야기는 그렇게 한순간 허망하게 혹은 고통스럽게 혹은 쉽게 끝이 나버린다. 그들의 마지막을 보내며 최대한 예우를 갖춰 몸을 닦고 정리를 돕는다, 어차피 죽음이라는 것을 맞이하려고 했던 사람도, 혹은 예상하지 못한 결말을 맺은 사람도 모두 공평하다, 그 끝은.


이번에 사자의 손에서 차갑게 無의 세계로 돌아온 그는 왜소하고 키가 작은 남성 인간. 그의 기억과 인지를 앗아가 버린 질병, 그리고 몸 안에서 끊임없이 객담을 배출해대는 고장 난 필터 펌프로 인하여 고통을 받던 그가 이제는 명료한 정신으로 시원하게 호흡을 하며 나비처럼 훨훨 자유롭게 걸을 수 있기를 바라며, 사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쩔 수 없이 가족과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더 이상 그들과의 기억도 만료되어버려 불러오기를 할 수 없었던 그였더라도 삶을 마지막으로 그만두기 전 하고 싶었던 일들이나 느끼고 싶었던 것들, 먹고 싶었던 것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제... 내 차례입니까. 곧 오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올 거라고는 알지 못했습니다."



밝고 얇은 오오라를 지닌 그의 영이 사자를 바라보며 일어나 말을 건넸다. 죽음을 맞이한 인간의 영체의 모습은 여러 가지, 죽음 당시의 모습을 보일 수도 혹은 인생 중 전성기의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생각보다 밝은 모습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아 이 인간은 괜찮은 인생을 살았나 보다.


하얀 벽, 차가운 침대, 거친 숨소리를 내뱉는 산소공급기를 사이에 두고 그가 사자에게로 다가왔다. 내가 오늘 마지막으로 '그 세계로'  인도해야 할 영, 그는 이윽고 천천히 생전의 전성기 모습을 갖춰나갔다. 챙 넓은 밀짚모자에, 건설현장에서 입을만한 회색 외투에는 동그란 마크 안에 '안전제일'이라는 문구와 녹색 십자 모양이 박혀있고, 카고 바지와 장화를 입은 모습이었다.



"도시가 아니군"


"그렇습니다, 어릴 적부터 밭을 일궈 열매를 맺고 살았지요. 그걸로 4남매를 대학까지 보내고 결혼도 시켰습니다... 이렇게 가도 여한을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자는 왼손 위로 순간 떠오른 패드에 체크가 되지 않은 박스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그에게 물었다.



"향년 87세, 이성걸. 가볼까."


"어디로 가는 겁니까."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낡은 모습과는 반대로 소싯적의 젊은 모습으로 돌아간 성걸의 영체가 사자를 따라오며 말을 붙였다.



"가야 할 곳으로."


"가기 전에 가족들에게 뭐라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병을 앓아서 정신과 기억이 온전치 못해 자식들에게 폐만 끼친 것이 미안해서 말입니다."


"내가 알 바 아니지. 삶의 바람은, 삶에서 맺었어야지."


"그럴 수가..."


"영화를 너무 많이 봤군. 죽음이 꽤나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나, 자네."


"흑흑...."



이상걸이 운다, 눈물과 콧물이 얼굴의 구멍에서 흘러나오며 그가 걷고 있는 공간에서 증발된다. 그들의 삶의 후회와 감정도 사자가 알바는 아니다, 냉정하다고 얘기해도 좋다, 일이니까. 사자는 우측 양복 주머니에서 작은 막대사탕을 하나 꺼내 입에 문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잠시 걸어야 한다.



"너도 하나 할 텐가."


"아닙니다... 아아.. 아직 막내딸한테 못한 말이 있는데."



이상걸은 다시 울먹인 소리로 중얼거리며 사자를 따라왔다. 애초에 죽음이 결정되어 영체가 되어버린 순간부터 그들은 사자에게 묶여버린 존재,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거나 행동할 수 없다, 도망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사자는 그저 영체들이 결말이 구분 지어지는 판결사 무소로 이송되기 전, 그들이 잠시 쉬며 본인의 삶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주는, 조물주가 선택하고 빚어내고 임명한 존재. 누군가는 이 존재를 '사자'라고도 혹은 '천사'라고도 부르지만 그것은 인간들이 그를 일컬어 부르는 호칭일 뿐, 그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가 신경 쓰는 것은 영체들을 잘 데려다주는 것, 그뿐이다.


뒤에 있는 이상걸이 눈물로 세수를 하든지 말든지, 사자는 눈앞에 곧 나타난 크고 두툼한 나무문에 달린 옥으로 만들어진 문고리를 잡고 두드렸다. 널따란 문, 짙은 고동색, 음각으로 깎여 바깥쪽과 중심에 얇은 직사각형의 테두리를 만들고 가운데에는 옥으로 만들어진 사람 얼굴 만한 해태의 머리, 그 입에 옥으로 만든 고리가 걸렸다.



타앙 타앙 타앙



끼익 거리며 육중한 소리를 내며 문을 열리고 이윽고 하얀 벽과 원목으로 만들어진 천장에 작고 화려한 샹들리에, 그리고 하얀 셰프복을 입은 여인이 원목의 바테이블 너머로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여, 오늘의 마지막 손님이군요."


"그런가."


"갑작스럽게 예약 손님이 추가되었길래 누가 오려나 싶었는데, 역시나 당신이었군요. 오시느라 수고했어요, 물 한잔 하시죠. 옆에 분도 앉으세요, 앉으세요."



사자를 따라 들어와 휘둥그레, 놀란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이상걸도 내가 바테이블에 앉자 엉거주춤 따라 앉는다.



"역시나 친절하군, 마스터."


"별말씀을. 메뉴는 항상 먹던 걸로?"


"그럴까."



바테이블 위로 테이블 매트와 식기류, 기다란 유리컵이 나타났고 컵에는 물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우와!"



이상걸이 소리를 내며 물이 아직 채워지고 있는 유리컵을 들자, 마스터라고 불린 셰프는 손가락을 양옆으로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아직 놀라기는 일러요."


"그럴지도."


"이곳에서는 아주 사소한 소원을 하나 이뤄드리죠."



마스터가 물을 마시는 이상걸에게 말했다, 이상걸은 이제 막 외투와 모자를 벗어놓은 참이었다. 아직 놀란 눈을 뜬 상걸이었다.



"사소한 소원이요? 다시 사..."


"... 는 건 안되죠, 고객님. 아쉽게도."



상걸은 고개를 푹 숙인다.



"받아들여라, 죽음을."


"그럼... 무엇을 이뤄주시죠?"



마스터는 자부심 넘치는 양팔로 팔짱을 만들어 끼고는 미소를 유지하며 말했다.



"그리운 추억을 담아드리죠, 한 접시에. 때에 따라 한 컵일 때도 있지만."


"그렇지."



사자는 두 번째 사탕을 꺼내 문다. 딸기우유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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