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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Feb 22. 2022

[픽션]극락식당

1-3

어느덧 따가운 태양을 피해 오두막으로 함께 올라온 마스터와 사자는 고개를 숙이고 열무국수를 빠르게 흡입하고 있는 상걸과 그의 아내, 그리고 농사일을 함께 하는 마을 사람들 사이에 앉아 새참 식사 대열에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음식에 대해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열무라는 김치에 비벼놓은 국수가, 상걸씨가 인생에서 먹었던 음식 중 가장 즐겁게 먹었던, 그의 영이 얽힌 음식이겠군요. 저도 언젠가 가족들과 먹은 기억이 나요. 언제였는지는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래서. 할 수 있나?"


"어느 정도는요, 그런데 상걸씨 아내의 열무김치 맛을 제가 그대로 재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예요."


"그래도, 해야 한다."


"알아요. 마무리를 잘 지어야겠죠."


마스터는 앞치마 주머니에서 어떻게 갖고 있었는지 모를, 하얀 니트릴 장갑을 꺼내어 오른손에 '착' 하고 끼더니 명순이 갖고 있는 새참 꾸러미 스테인리스 용기에 담긴 열무김치를 집어 먹었다. 지금 그들이 있는 공간이 이상걸 영혼의 기억 속의 시공간이기는 하지만 오감은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공간이 설계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삭아삭


마스터의 입안에서 열무의 이파리와 탱글 거리는 줄기가 어금니 사이에서 신선하게 씹히며 그녀의 미각을 가득 채웠다. 시큼하고 매콤한 양념 사이로, 예상치 못한 달달함과 감칠맛, 줄기가 톡톡 거리면서 터지니 마스터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굉장하군요, 맛이 생각보다 깊어요. 여름에 수확하자마자 바로 김치를 담갔을 테니 많이 익은 맛이 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사람들이 칭찬할만하군요. 저라도 국수를 비벼먹겠어요."


"그런가."


"먹어볼래요?"


무표정으로 보이던 사자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며, 얼굴을 찡그렸다.


"아니."


"후회할 텐데"


"안 한다."


마스터는 콧방귀를 '흥'하고는 '바보'라고 살며시 읊조렸지만, 사자는 듣지 못했는지 열무국수를 맛있게 먹는 상걸의 모습에 집중했다.


"잘 만들면, 쉽게 가겠군."


"네, '잘 만들면'요."


"어떻게 만들 생각이지."


"음...."


마스터는 잠시 골똘히 생각했다. 열무김치를 담그는 난도가 일반적인 배추김치를 담그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그래도 김치는 김치다. 찹쌉풀, 액체 젓갈, 고춧가루, 마늘, 쪽파, 부추 등으로 양념을 만들고 그 외에 집집마다, 혹은 어머니와 어머니들 마다 각자의 노하우가 전수되어 그 집만의 김치 양념과 김치가 완성된다. 즉, 상걸과 명순이 함께 먹던 열무김치의 요리법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이상 그와 완전히 똑같은 맛은 만들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명순이 만들던 열무김치보다 맛이 없어도, 더 맛이 있어도 문제인 것이다. 추억 속에 살아있는 그 음식의 맛을 그대로 내는 것이 아니라면 영혼은 만족하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한다면 사후 세계로 후회 없이 넘어가기에 좋은 상태가 되지 않기 때문에. 마스터와 사자의 목표가 달성되지 못한다, 영의 '한'이 남기 때문에.


"제가 아는 방식대로 시도를 해보고, 차차 변화를 줘야겠어요. 식당 주방으로 돌아가요, 이만. 이 날씨 너무 더워서 곧 있으면 제가 이 열무처럼 늘어질 것 같아요."


"알았다."


"상걸의 기억 속으로 또 올 수 있겠죠?"


"아마도."


사자가 마스터의 눈을 바라보며 끄덕이자, 그와 동시에 다시 시공간이 휘리릭하고 돌아가며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원래의 바 테이블이 있던 주방으로 돌아왔다. 아무 일도 있지 않았다는 듯, 상걸은 사자의 옆 의자에 그대로 앉아 자신의 아내가 해주었던 열무김치에 대한 얘기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 무더운 날 여름, 열무김치가 들어간 국수를 새참으로 먹을 기대에 힘들지도 모르고 일을 하던 때도 있었지요... 허허... 힘들었지만, 참 좋은 때였어.."


"그런가. 어떻게 하는지 알고 있나."


상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알지 못합니다. 제가 평생 했던 요리는 라면 정도예요, 부끄럽지만."


"그래. 다시 먹고 싶지 않나."


상걸은 휘둥그레 눈을 떴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바 건너편에 있는 마스터가 눈에 확실히 담을 정도로.


"그게 가능합니까, 저는 죽었는데."


사자는 바 뒤편, 보이지 않는 공간, 주방으로 들어가는 마스터를 창백한 손으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문이 달려있지 않아 주방의 공간이 눈에 비치는 것을 함께 보며 사자는 입을 열었다.

"가능하다, 도움이 약간 필요하지만."


"아아...."


영혼의 상태이지만 상걸은 눈에서는 투명한 액체 방울들이 하나, 둘씩 맺히기 시작했다.


"왜 그러나."


"아이 엄마가 둘째를 낳고서 먼저 떠난 이후에는,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었지요... 그걸 다시 먹어볼 수 있게 되다니..."


"그런가."


그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주방에서는 요리가 한창인 마스터는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재료들과 요리기구들을 잡고 요리를 시작했다. 열무와 부추, 쪽파를 썰고, 찹쌀풀을 만들고, 거기에 고춧가루와 새우젓을 썰어 넣고 액젓, 사이다와 물을 넣고 마늘도 갈아 넣어 야채들을 버무려 빠르게 김치를 만들었다. 김치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과정인 '숙성'과 '발효'가 필요하지만 사후 세계의 주방을 보유한 그녀에게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주방 한편에 놓인 김치 냉장고는 사후세계에서도 최신 제품이라 냉장고 내부의 시간을 과거 혹은 미래로 돌릴 수 있는 기능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생전에 L사의 가전제품 연구개발 쪽에서 일을 하다가 과로로 사망하여 사후세계로 온 어느 영혼이 개발한 제품으로 사후세계의 요리사들에게는 혁신적인 제품으로 호평이 자자했다.


마스터는 양념에 잘 버무려진 열무를 김치냉장고용 보관통에 담고, 김치냉장고에 넣고는 다시 또 생각했다.


"이걸... 음... 그때 그 맛으로는 신선한 열무의 맛이 좀 더 느껴졌으니 3달 정도로 숙성시켜볼까."


김치냉장고 속의 시간 설정을 '3개월 앞'으로 누르자 잠시 냉장고 속에서 '우우웅'하는 기계음이 들렸다. 마스터는 미소를 지으며 열무김치가 담긴 보관통을 열어 한입 먹었다. 매콤하고 상큼한 열무가 제법 괜찮았다.


"이 정도면 됐으려나. 시식을 한번 해보고, 다시 찾아봐야지."


마스터는 열무김치에 미리 삶아서 찬물에 헹궈놓았던 소면을 비벼 주방에서 나왔다. 눈에 눈물을 맺힌 채 사자와 함께 앉아있던 상걸에게 그녀는 면기에 담긴 열무 국수를 들고 다가갔다.


"자, 한번 드셔 봐요, 어르신. 입맛에 좀 맞으시려나 모르겠네요."


"아.. 고, 고맙구려..."


상걸이 곧 젓가락을 굳은살이 가득한 손에 들고 열무김치에 잘 버무려진 소면을 열무와 함께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아삭아삭, 우적우적, 후루룩. 마스터, 사자, 그리고 상걸이 앉아있는 바테이블에는 잠시 고요함 속 상걸이 열무국수를 먹는 소리만이 울렸다.


"음....."


타앙


상걸이 몇 젓가락을 먹더니 그대로 젓가락을 면기 옆에 내려놓았다.


"맛이 없나."


상걸은 망설이다 말했다.


"맛은 있습니다, 다만..."


"다만?"


"아내가 해주던 열무김치에 비해서는 무언가 부족한 맛이 있어요. 아쉽습니다, 아내가 해주던 열무김치는 무언가 입과 혀에 감기는 그런 느낌이 있었어요."


"감기는 맛?"


"네, 입에 '착'하고 감기는 맛입니다."


마스터는 팔짱을 끼고서는 자신이 만든 열무국수를 작은 그릇에 덜어 맛을 보았다. 상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의 기억 속에서 먹던 열무김치의 양념에는 자신이 만든 양념에 비해 상큼함과 새콤함 맛은 없지만 진한 감칠맛과 깊이가 있었다.


"역시 한 번에 만족스러운 맛을 만들기는 어렵네요. 여태껏 한 번에 넘어간 영은 없었으니, 당연한 것일까요."


"아마도."


"양념을 그저 먹는 것으로는 알기가 어려워요. 상걸씨, 열무김치의 요리법을 아내분이 얘기해 준 적은 없나요?"


상걸은 덥수룩한 뒷머리를 손으로 벅벅 긁으며, 고개를 숙이고는 그가 답했다.


"부끄럽지만 아내가 죽기 전까지도 부엌일을 하지는 않았어서.... 아무것도 아는 게 없습니다, 맨날 먹을 줄만 알았지 할 줄은 몰랐네요..."


"흠."


세 사람은 (정확히 말하자면 세 영혼은) 잠시 아무 말 없이 없었다, 그리고 마스터가 하이톤의 목소리로 정적을 뚫었다.


"음...? 그런데 아내분은 그럼 상걸씨보다 일찍 돌아가신 건가요?"


"그렇습니다."


마스터는 사자를 보며 환히 웃었다.


"사자씨, 그럼 답이 있네요."


"그렇군."


사자는 아주 옅은 미소를 하얀 얼굴 위로 띄우며 말했다.


"내가 다녀오도록 하지."


"그래요, 다녀오세요. 부탁 좀 할게요, 사자님. 그동안에 나는 재료 손질이라도 더 하고 있을 테니."


마스터와 사자 사이의 알 수 없는 대화에 상걸은 영문 모르는 얼굴로 그들에게 물었다.


"어디를 가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사자는 바에서 일어서 검은 코트와 모자를 손으로 다시 단정하게 툭툭 털며 매만지더니 걸음을 옮겼다.


"여기 얌전히 있도록. 어차피 영으로서, 갈 수 있는 곳은 없겠지만."


"어디를 가시는 겁니까."


"네가 알 바 아니다."


사자는 바에서 맞은편에 보이는, 조명 없이 어둠 속에서 초록색으로 환하게 빛나는 '비상구'라고 보이는 문으로 가더니 그대로 어둠 속으로 사라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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