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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Apr 23. 2022

[픽션] 극락식당

2-2

사자는 뚜벅뚜벅 큰 발걸음으로 서 걸어 나갔다. 그들이 걷고 있는 곳은 길은 있으나 길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우주와도 같이 빛나는 어둠 속에 휴대폰의 조명과도 같은 별빛들이 어둠 속을 물방울무늬처럼 물들이고 있었고 멀리 있는 산자락의 풍경처럼 희미하게 빛나는 초록색 불빛 아래 새어 나오는 빛을 향해서 계속, 걷기만 했다.

 

그의 뒤로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걸리면서 겁먹은 토끼와도 같은 총총거리는 발걸음, 이제는 더 이상 그녀를 잡아먹으려고 달려드는 여우처럼 까다로운 고객이나 개 같은 진상 고객이나 호랑이 같이 화를 내는 고객도 없지만 그녀는 불안함으로 두려웠다. 자신이 죽었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 사자에 의해서 어두운 공간으로 끌려들어 온 그녀는 그만큼 쉬지 못했었고 여유가 없었다, 그녀의 삶은.


"어디로 가는 거예요? 여기는 어디예요?"


"........ 휴우"


기대했던 대답이 아닌 짧은 한숨이 돌아오자 그녀의 부스스한 머릿속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우... 우리 어디 가요? 예?"


터억


다시, 사자에게서 돌아온 것은 언어적인 대답이 아니었다. 다만 크고 창백했지만 차갑기보다는 시원하게 느껴지는 손바닥이 그녀의 머리를 살포시 덮었다.


"쉴 수 있는 곳, 드디어. 네가 쉴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쉬어요? 쉬는 시간은 하루에 점심시간 1시간밖에 없었는데...?"


"........ 더 쉴 수 있는 곳이다, 안심해라."


"와... 좋네요. 안 그래도 피로가 쌓여서 점심시간에 쪽잠도 조금씩 잤었거든요, 책상에 엎드려서 자는 것 밖에는 못하지만요."


"....... 허, 그런가."


"네, 어디로 가는지는 몰라도 일단 눈부터 조금 붙이고 싶어요..."


"곧 그럴 수 있을지도, 가자 식사시간은 소중하지 않나."


사자는 다시 몸을 휙 하고 돌려 가던 방향으로 다시 걸음을 진행했다, 그가 입고 있던 어두운 코트의 끝자락이 펄럭거렸다. 지선이 다시 안경을 옷 끝으로 살짝 닦고 다시 앞을 보니 멀리 있는 것처럼 보였던 녹색과 형광색의 불빛이 더 가까워져 있는 듯했다.


"그런데 고개... 아, 아니 선생님은 누구세요? 위에서 저희 팀 감사하러 오신... 분이세요?"


뒤에서 슬며시 올라오는 질문에 사자는 손으로 이마를 짚고 잠시 젓더니 다시 숨을 작게 내쉰다.

 

"그런 셈이지. 인사처 소속이다."


물론 그 소속 앞에는 '저승'이라는 단어가 빠지고 뒤에는 '입국 복지 관리부'라는 긴 부서의 이름이 빠진 것이지만, 지선이 사자의 소속이나 직책을 알 필요는 굳이 없었다. 한 번 마주치고 나서 더 이상 볼 일이 없는 영혼들에게는, 굳이.


"'인사처'면 상위 그룹이시구나... 그런데 저만 이렇게 가는 건... 제가 무언가 잘못을..."


"... 한 건 아니다, 걱정 말도록. 넌 잘했었다."


"제.. 제가요? 오늘도 고객한테 욕바가지를 먹었는데..."


사자는 생각했다, 식당에 도착하기 전에 무언가 이 대화를 마무리 지어놓지 않으면 혹은 이 '김지선'이라는 영혼의 감정을 다스려 놓지 않으면, 괜히 자신의 하루가 더 피곤해질 것 같다고. 그래서 그는 억지로 입꼬리를 위로 올려 작은 미소를 만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다, 그래도 잘했다. 너로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


지선의 눈망울이 투명하게 촉촉해지더니 곧 그녀의 눈가에 물방울이 생겨났다. 그녀는 안경을 벗고 두 손으로 눈을 가리며,


"아... 눈물 나, 회사 다니고 처음으로 받아본 칭찬이에요... 흑.. 감사해요"


그녀가 함께 걷던 걸음을 멈추고 자리에 서서 조금씩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 시작하자, 억지로 미소를 짓고 있던 사자의 얼굴이 다시 냉랭한 표정으로 돌아오더니 또 한숨을 내쉬었다.


'가지가지한다는 게 이런 때에 쓰이는 말이지. 여러모로 어려운 녀석, 이러다 진짜 늦겠군. 오래간만에 '신경질'이라는 감정이 생길 것 같아.'


속으로 생각을 마친 사자는 지선의 우는 팔목을 잡고 앞으로 잡아끌며 말했다.


"그래 그래, 감사하면 빠르게 걷도록. 우리는 가야 한다."


"네, 네... 맞다, 우리 쉬러 가야죠..."


"그래, "


열불이 붙어 타들어가는 사자의 속마음도 모르고 지선은 울던 얼굴을 손으로 쓸어 넘기고는 다시 '인사처'소속으로 자신을 '감사'나온 사자를 따라나섰다. 그녀가 마음으로 이 길을 따라 걷는 것과 앞에 보이는 출구를 향해서 편안한 마음을 가질수록 형광색으로 빛나는 목적지가 더 가까워져 감을 볼 수 있었다.


"다 왔군, 들어와라."


"네네, 실레합니다.... 우와..."


밝은 색의 원목으로 이루어진 바닥과 천장, 녹색과 흰색 그리고 식물들로 이루어진 벽. 그 앞에 밝은 형광 LED 조명을 받아 밝게 빛나는 유리병, 유리컵, 와인잔들이 나열된 찬장과 바의 천장, 그 앞에 고동색의 두꺼운 테이블로 그녀와 사자를 기다리고 있는 바 테이블.


"어서 와요, 지선 씨!"


그 뒤로 흰색의 셰프복을 입고 검은 머리를 뒤로 가지런히 말아 묶은 깨끗한 피부의 여성이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지선은 그녀를 처음 보았지만 이전에 알고 있던 사람처럼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꾸벅하며 인사했다.


"아, 네! 아, 안녕하세요!"


".... 토닉 한잔."


사자가 나갈 때 보다 더 피곤한 얼굴로 인사는커녕 바로 그녀에게 나아와 기운 빠진 목소리로 주문부터 하자 셰프는 미간을 찌푸리며,


"사자님, 사람이 인사를 했는데 인사는 안 하고 토닉 한잔 달라는 게 어느 나라 예의예요? 토닉 한잔 나한테 맡겨놨어요?"


'.... 후우... 피곤한 녀석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을 잊었군.'


속마음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현명한 선택을 한 사자는 말없이 뒤에 따라오는 지선에게 손짓으로 바 테이블 앞의 의자에 앉으라는 신호를 보내고는 자신은 그 옆 의자에 털썩 앉았다. 입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지친 얼굴로 그가 앉기만 하자 사자의 눈치를 살피던 셰프는 사자의 안부를 먼저 묻기로 결정했다.


"무슨 일 있었어요, 사자님?"


사자는 대답 대신 엄지손가락으로 뒤에 따라오는 지선을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피곤하군, 인사는 생략하겠다."


"쉽지 않은 혼령이었나 봐요?"


셰프가 웃으면서 묻자 사자는 조용히 읊조렸다, 지선이 들을 수 없도록.


"아직도 모른다, 자신이 죽은 줄."


사자에게 고개를 기울여 들은 셰프는 눈꼬리와 입꼬리가 서로 마주 보게끔 얼굴을 만들며 측은한 표정을 지었다.


"저런... 딱하네요. 무슨 일이었을까요?"


식당 안을 둘러보면서 바테이블로 온 지선이 의자에 앉자 셰프는 그녀의 직업대로 밝게 웃으며 말했다.


"드시고 싶은 것 있으세요?"


"네? 지금은 딱히 생각이 안 나요..."


"지금은 배가 아직 안 고프신가 봐요."


"네... 아까 아메리카노 한잔 밖에는 안 먹었는데, 잘 안 넘어갔는지 점심때가 되어도 배가 안 고파요."


셰프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식당에 오는 모든 영혼들이 배가 고픈 채로 오는 것은 아니었다. 죽기 전의 상황은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그래요, 그럴 수도 있죠. 그래도 여기서 떠나기 전에는 조금 출출해질지도 모르니까요, 후훗. 그럼 시원한 주스나 한 잔 하실까요?"


"좋아요."


셰프가 뒤를 돌아서 음료를 제조하는 동안, 그녀는 동시에 전음으로 사자에게 말을 걸었다. 저승에서 공무원으로 일할만큼 힘이 있는 영혼들이 각자의 영력을 이용하여 머릿속으로 말하며 비밀스럽게 대화하는 방법이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영혼으로 둘 거예요?'


빠르게 사자의 답이 날아왔다, 셰프의 머릿속으로.


'곧.'


대답과 동시에 사자가 자리에서 슬며시 일어나더니 음료를 제조하는 모습에 집중한 지선의 머리에 손바닥을 펴 올렸다. 사자의 눈에서 붉은 안광이 서서히 뿜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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