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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일기] 가마솥설렁탕해장국, 속초

뼈찜과 감자탕, 지역 시민들의 사랑받는.

by 김고로

이전의 글들을 살펴보면 내가 속초에 살던 때에 자주 방문하던 단골 맛집들이 여럿 있었으나 지금은 이러저러한 이유들 때문에 사라지고 겨우 한 손에 겨우 꼽을만한 수의 애정하는 식당들이 남아있다. 특별한 재앙과도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는 집들 중 한 곳에 나는 피자대장님과 함께 향했다.

지금도 전국의 빵돌이와 빵순이들을 설레게 하는 유명한 마늘빵을 판매하는 '봉브레드'라는 빵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시커멓고 매캐한 색으로 덮인 카센터들 사이로 자신도 오래된 카센터라고 위장색을 덮고 숨어있는 어느 식당, 식당의 상호명과 식당의 대표 음식들이 전혀 짝을 이루지 않는 재밌는 속초의 로컬 맛집 '가마솥설렁탕해장국'.


물회, 냉면, 튀김 등으로 유명한 영동지방의 대표 관광도시인 속초라는 것에 알맞지 않게 뭐 이런 집을 다 맛집으로 생각해서 가느냐라고 물어볼 수 있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맛있는걸. 뼈찜과 감자탕이라는 음식만 전문으로 하는 이 집은 바깥에 신호탑처럼 세워둔 기다란 간판 외에는 알아볼 수 있을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지도 어플에 식당의 상호명을 꼭 찾아둔 후에 운전자와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길가를 둘러보면서 잘 찾지 않으면 똑바로 들어가기가 어려운 집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로는 어느 정도 먹고살만한 수입이 들어올 정도로 여유롭게 장사를 하고 계시는 것일지도.


가게에 들어가면 BTS의 팬덤인 '아미'의 일원인 식당 사장님의 따님께서 꾸며놓은 BTS 멤버들의 사진으로 둘러싸인 벽들과 커다란 김치냉장고들. 계절마다 맛 좋은 식재료들을 거두어 대접하는 밑밥찬들 사이로 사시사철 먹을 수 있는 이곳만의 슴슴하고 깔끔한 백김치를 한입 하는 것을 시작으로 대장님과 나는 식사를 개시한다.



"대장님, 이곳은 뼈찜이 주인공이 아닙니다."


"예?"


분명 절친한 단골손님과 속초에 뼈찜을 먹으러 왔는데 '뼈찜'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은 무슨 소리인가. 물음표가 가득한 표정의 대장님은 우리 자리의 뒤쪽으로 커다란 감자탕 4인분을 주문해서 먹으려고 시동을 거는 어르신들을 바라보며 답하신다,


"아, 여기는 감자탕이 맛있는 거예요? 뼈찜이 아니라?"


나의 입에서 튀어나온 헛소리 같은 진실에 알맞은 대답, 나는 웃으며


"그런 얘기는 아니고요, 뼈찜이 나오면 아실 겁니다, 흐흐."


"오.. 그래요?"


적어도 음식에 대해서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시는 대장님은 나의 말을 전적으로 믿기로 하신 것일지 아니면 '그러려니'하고 넘기신 것인지 모르지만 음식이 나올 때까지 내 말의 의미는 아실 수 없으셨다.



곧 도기로 된 넓은 전골 그릇에 붉고 질척거리는 소스로 뒤덮인 돼지의 등뼈 조각들이 등장했다, 그 위에는 크고 아름답고 굵은 콩나물들이 함박눈과 같은 붉은 고춧가루를 입은 채로.


"일단 콩나물을 드셔 보시죠."


내가 먼저 뼈찜과 콩나물을 잔뜩 잡아 앞접시에 담으며 권하고는 콩나물을 집어 입으로 밀어 넣는다. 아삭아삭하고 쫄깃하게까지 느껴지는 콩나물의 식감 사이로 새빨간 모습이지만 전혀 맵지 않고 간간한 맛과 입을 돋우는 묘한 감칠맛이 입안을 감싼다. 그와 동시에 대장님의 입에서도 '아삭아삭'한 콩나물의 소리가 내 귀까지 들린다.


"와, 맛있네요."


"그렇죠? 이 집 뼈찜의 진정한 주인공은 콩나물이에요."


"아...."


물론 이 집 뼈찜의 주인공은 콩나물이라는 것은 지극히 나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주장이다, 아마도 뼈찜의 콩나물을 영접하기 전에는 그저 헛소리로 들렸겠지만 콩나물을 이미 씹어 넘긴 그 상황에서 뼈찜의 콩나물은,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뼈찜의 주인공이었다. 고춧가루 양념이 아삭한 콩나물을 씹으면서 혀로 스며드는 채수와 함께 어우러지면서 살짝 매콤하면서 짭짤하며 상큼한 맛이 난다.


"오랜만에 이렇게 먹으려고 하니까 설레네요.", 나는 즐겁다.



헤어졌던 절친한 친구를 오랜 시간 후에 다시 보는 것과도 같은 기분, 젓가락으로 등뼈에 붙은 두툼한 살을 발라내면서 나는 웃음 짓는다. 고추냉이를 갈아서 만든 이 집 특유의 소스를 찍어먹는다. 부드럽고 쫄깃하게 익어 뻑뻑하지 않은 살코기, 고기를 씹는 치아 사이로 살코기 특유의 식감과 육즙이 양념과 어우러져 저절로 눈이 감긴다. 고추냉이가 혀 위로 선사하는 약간의 알싸함과 개운함, 다시 콩나물과 고기가 당긴다.


매콤 짭짤한 감칠맛과 아삭한 식감의 콩나물은 꼭 고기가 없이 이것만 먹어도 맛있겠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 정도다. 거기에 따라오는 뼈찜의 살코기가 부속품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이곳도 여느 감자탕집과 마찬가지로 볶음밥을 해 먹을 수 있다, 여기서 조언을 하자면 앞접시에 뼈찜 소스들이 남아있다면 그것을 절대로 버리거나 먹어버리지 말라. 날치알, 볶음김치, 맛김으로 볶아지는 밥이 완성되면 앞접시에 남아있는 뼈찜 소스에 볶음밥을 비벼먹어라, 두 번 먹어라.


짭짤하고 입안에서 구르는듯한 식감의 볶음밥이 육수와 채수가 담긴 질척거리는 빨간 맛에 적셔지면 촉촉한 양념 사이로 바삭함이 씹히는 식감이 강화된 즐거운 식감과 맛이 입안을 빈틈없이 채운다. 내가 중국에서 살았을 때 좋아했었던 푸저우식의 해물볶음밥과 같은 촉촉함과 탱글 거리는 볶아진 쌀알의 식감의 사랑스러운 맛을 간접 경험할 수 있기에 나는 앞접시에 뼈찜 소스를 절대 비우지 않는다.


이번 대장님과의 방문에서는 빠듯한 시간 일정으로 인하여 볶음밥은 먹지 못했지만 나중에 누군가와 다시 올 때에는 맛볼 수 있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다.


"나중에 속초 오면 또 오겠는데요." 가게를 나서며 대장님이 입을 여신다.


"맞아요, 또 오게 돼요. 저랑 아내도 그렇거든요." 나의 이쁜 여자도 이곳의 뼈찜을 사랑한다.


사실 속초의 이 '가마솥설렁탕해장국' 집은 이전에 내가 썼던 돼지등뼈에 대한 글에서 자료사진으로 출현했던 집이다. 사장님께서는 식당을 개업하고 나서 이미 여러 방송국과 프로그램들의 출연 제의를 받으셨었지만 식당이 유명해지면 현재 오고 있는 단골손님들에게 폐가 될 것이라고 하셨기에 다 거절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쓰는 글도 혹시나 그러한 사장님의 생각에 폐가 될까 생각했었지만, 내가 쓰는 글이 굳이 그런 효과를 가질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기 때문에 조심스레 글을 남겨보는 것이다.


만족스러운 뼈찜으로 점심을 채운 피자대장님과 나는 내가 속초에 올 때마다 들리는 대포항의 튀김집에서 갓 나온 새우강정을 하나씩 포장해 들고 이 날의 미식 여행을 마무리지었다.


"머리가 엄청 바삭하네요."


"새우는 통째로 튀긴 게 맛있다니까요."


하루의 미식의 여정을 마무리하면서도 우리의 '맛있음'은 끝이 없다는 것은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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