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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mma Apr 05. 2023

우리는 왜 수치심을 느끼는가

두려움을 넘어 진정한 내가 되기를 소망한다.

나의 키워드 중 하나는 수치심이다. 그리고 이 단어는 항상 불안함을 동반한다.


나는 언제부터 수치심을 느꼈을까?

개인의 역사로 보자면 나는 어렸을 때 주양육자로부터 '지적'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였다.

말투가 강하고 완벽주의가 있는 양육자들에게 나의 행동이나 말투에 대한 지적을 많이 받았고

나의 행위 자체가 내 존재에 대한 부정으로 새겨져 스스로에 대한 수치심이 생긴 것 같단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욕구에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나의 감정이나 욕구에 집중하기보다

그들에게 비난받지 않기 위해 또는 그들을 도와 나라는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착한 아이로 자랐다. 그래서 나는 더욱더 나의 감정을 많이 억압하고 자기표현에 서툰 아이였다. 이것은 나의 성격으로 자리 잡아 타인의 눈치를 많이 보는 민감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도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에 대한 질문으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수용해 주는 사람'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만큼 나는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나의 모든 면을 받아들이고 사랑해 주는 수용적인 관계를 원한다.


책이나 유튜브를 보면 우리 모두는 수치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뇌과학적인 측면에서 보아도 원시시대 때부터 우리는 불안, 두려움, 공포라는 감정을 이용해 적으로부터 공격을 피해 생존할 수 있게 되었고 이 감정이 결코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게 너무 발달하면 (편도체의 기능이 너무 활성화가 되면) 그때부터는 불안이나 두려움이 우리의 삶을 지배해 우리는 이성적인 뇌(전전두피질)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편도체를 안정화시키는 방법은 많은데 그중에서 나랑 잘 맞는 것은 호흡과 명상이다. 이걸 하려고 한 건 아니지만 불안과 두려움이 많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런 활동들에 끌렸던 것 같다.


불안과 수치심을 연결해 보자면 나는 대체 언제 수치심을 느낄까?



사람들과 내가 다르다고 느낄 때 수치심을 느낀다.



사람들과 내가 다르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만들어 놓은 어떤 평범하다는 기준에 내가 들어가지 못했을 때를 말한다. 어렸을 때의 기억이 아직까지 나의 상처로 남은 걸 보면 나는 그 평범한 기준에 도달하지 못해서 항상 지적받고 수용받지 못해 스스로가 부끄럽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남들 앞에 놓이는 시장에 내가 섰을 때, 부족해 보이거나 남들과 다르면 나는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지고 언제든 발을 빼고 도망칠 준비를 하며 항상 불안해하고 스스로가 수치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괜찮지 않은 사람이라는 나의 어떤 모습이 드러나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고, 내 존재 자체를 거부당할 것 같고 그러면 나는 사람들과 연결될 수 없고 그렇게 되면 나는 또 혼자 남아 외롭게 살겠지. 이런 공포가 나를 불안하게 만들고 그래서 그런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더더욱 애쓰며 존재하지도 않는 허구의 기준에 허구의 나를 세워두고 더욱더 발발 떨고 있었는지도.


하지만 여러분들도 나도 상대의 연약함점을 발견했을 때 마침내 그 사람의 진짜 내면을 보게 되고 깊이 공감되고 더욱 가까워지는 친밀감과 연결감을 느껴봤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연약한 모습을 볼 때 보호해주고 싶고 공감이 되는 게 어쩌면 정상적인 반응일지도 모르겠다. 그 모습을 보고 비난하거나 이상하다고 판단하는 사람은 어차피 나와 오래갈 수 없는 결을 가진 사람이다.


나의 연약한 부분을 드러내고 나의 수치심에 대해서 말하는 게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란 것은 안다. 내 안의 어떤 상처가 건드려져서 그 기억이 나를 더욱 괴롭혀 그것이 폭발적으로 반응될까 봐 우리 내면의 에고는 그것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가면을 쓰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 내 안의 이런 관리자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제 그 관리자에게 이렇게 말할 힘이 있다.

안심하라고. 그 상처는 꺼내놓아야 진정한 내가 될 수 있다고. 그 상처가 있는 나도 나이며, 완벽하지 않은 내 모습도 나다. 나는 나로서 이미 충분하기에 그렇게 열심히 일 안 해도 전체의 나는 온전하니 부디 안심하고 걱정하지 말라고.



우리 인생은 언제나 불확실하다.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우리는 모두는 완벽하지 않다는 것.


그러니 어떤 기준에 들어 안정적으로 살기 위해 나의 수치심을 꼭꼭 숨기고 살지 말도록 하자. 모든 것은 변화한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란 없다. 관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봐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는 나에게 관계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더욱더 나의 연약함과 수치심을 드러내보자고 말하고 싶다. 내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싶고 비난받지 않고 싶어 수치심을 드러내지 않는 걸 선택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미숙한 점이 드러날수록 사람들과 마음속 깊이 더욱더 깊게 연결되는 충족감을 느낄 수 있을 거다. 물론 용기가 필요하고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방향성을 여기에 두고 수치심, 불안, 두려움 등에 대한 느낌을 조금이라고 전환할 수 있다면 그래서 아주 작은 것부터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힘이 생겼다면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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