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의 거절은 내 행위에 대한 거절이지, 내 존재에 대한 거부는 아니다.
나는 내 존재에 대한 뿌리가 지면에 묵직이 닿아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거의 없다. 그림검사를 했을때도 의도하면서 그린 것은 전혀 아닌데 다리가 땅에 닿지 않고 둥둥 떠있는 그림을 많이 그렸다. 언제든지 도망칠 사람인 것처럼. 거부의 상처가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다 보니 거부당하지 않기 위해서 먼저 도망쳐 버리곤 한다.
문제를 발견했을 때 '회피'가 나의 가장 빠른 해결책이었다.
나 자신, 사람들, 세상과의 관계가 나에게는 참 중요한데 갈등이 생기면 도망쳐 버리고 그 상처를 또 끌어안고 상대에게도 똑같은 상처를 준다.
내 안에 어떤 모습이 드러나면 사람들이 나를 안좋게 평가할 것 같고 그래서 사람들이 날 싫어할 것 같아 잘나고 멋진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데 가까이 오면 나의 찌질한 모습이 드러날 것 같아서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해야 하고. 그러면 또 외롭고. 이것의 무한반복.
나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빨리 그 부분을 바꿔서 해결하고 싶어 하고, 그러지 않으면 불안하고 초조하고. 내 민낯이 드러나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할 것 같고 버림받을 것 같은 마음. 그래서 상대가 가까이 와서 내 진짜 모습을 알면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그 누구와도 밀도 깊은 관계를 나눠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또 나는 기질적으로 타인에게 민감한 부분도 있어서 만족에 대한 기준치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평가받는거 누구보다 싫어하지만 판단&평가 가장 잘하고, 나의 공간이나 시간 무척이나 중요해 내가 원하는 시간과 거리에서 함께 해야한다. 상대가 나에게 지적하거나 거절의 의사를 표시하면 그것은 끝없는 분노 또는 상처로 자리 잡았다. 완벽주의 또한 내 오랜 친구인데 이것은 다음에 이야기하도록 하자.
(너무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하지만 상대가 하는 NO라는 의사표현은 내가 한 말이나 어떤 행동에 대한 거절이지 내 존재에 대한 거부는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저 사람이 거절할 때 나는 내 뿌리까지 흔들리기 때문에 인정받고 싶고 받아들여지고 싶어서 무엇인가를 잘 해내고 싶어하고 상대를 만족시켜 주고 싶어하고 그래서 거절당하지 않기 위해 상대의 욕구는 무엇인가 항상 안테나가 타인에게 가 있었다. 나의 감정이나 욕구는 중요하지 않고 오직 상대에게 내가 받아들여지는가 아닌가. 즉, 관계에서 나의 존재감이 있느냐 없느냐는 상대방의 평가와 판단에 의해 좌지우지되곤 했다. 저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 나도 아니고 저 사람이 맞다고 하면 나도 맞게 되는.
나와 너의 경계가 없이 하나가 되는게 서로 상처받지 않는 것이라 여기며 부단히도 나는 내가 아닌 그 상대가 되려고 노력했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상대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그것은 또 거부의 상처로 자리잡았다. 내 안에 중심이 없으니 밖에서 들려오는 나에 대한 수많은 말과 평가에 나라는 사람의 고유한 가치나 존재감 자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휘청거렸고 그것은 꽤나 날 아프게 했다. 과연 너와 나의 경계가 없이 하나가 되는게 내가 원하던 관계일까?
우리 모두는 각자의 우주가 있다. 그것은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으며 그 사람만이 가진 고유한 가치이자 유유일한 존재이다.
우리 모두는 바라고 바래서 이 자리에 있는 존재
내가 뭘 잘하거나 해내거나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우리는 각자의 우주에서 각자의 고유성을 가지고 각자의 길로 빛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며 각자의 우주안에서 살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다를 수 밖에 없다. 사람이 100이 있다고 하면 100가지의 다른색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에서 갈등은 있을 수 밖에 없다. 상대가 나에게 거부를 했다고 해서 그것은 내 존재에 대한 거절이 아님을 다시 한번 알았으면 좋겠다. 그것은 내가 한 말이나 행위에 대한 거절이고 내 존재에 대한 거부는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꿔말하면 상대가 본인의 우주안에서 원하는 욕구와 본심에 대한 YES이며 그것을 나에게 표현해준것은 하나의 힌트일 수 있다. 내 우주안에서 일어나는 나의 본심은 이것인데 너의 우주에서의 본심은 어떤건지, 본심끼리 만나서 대화를 해보고 싶다는 힌트. 이것을 각자의 특별함을 존중해주고자 하는 첫 걸음일 수 있다.
이렇게 너도 세우고 나도 세우고 각자의 욕구와 본심을 알아차리며 서로 조율할 수 있는 대화로 이어지는게 내가 맺고 싶은 관계다. 어느 한쪽만 계속 요구하거나 어느 한쪽만 계속 맞춰주는게 아니라.
'너'와 '나'로 동등하게 만나 각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본심을 잘 꺼내놓고 서로의 욕구를 조율할 수 있는 관계.
이렇게 되기 위해선 상대의 거절이 내 존재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럼 나의 욕구를 표현하는 일도 훨씬 수월해질 것 같다.
매순간 올라오는 감정을 잘 알아차리고 그 밑에 나는 어떤 욕구가 좌절되어서 이런 감정이 올라왔는지 인지하고 그것을 상대에게 잘 전달할 수 있다면 내가 그토록 바라던 진정한 소통의 길로 가는 묵직하고도 의미있는 발걸음일 것이다. 이것은 결코 쉽지 않지만 내가 정말 가고싶은 길이기에 그 길을 잘 닦아서 한걸음 한걸음 의미있게 도약하고싶다. 삶은 관계가 전부인 것 같다. 그렇게 너무 소중하기에 두렵고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용기를 낼 수 있게 해주는 삶의 힘에 감사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