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병 속의 여름 기억
아직 달력은 봄이라 말하지만, 볕은 어느새 여름을 닮아간다.
창밖으론 햇살이 무겁게 내려앉고,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하는 요즘
문득, 오래전 주전자 속에서 피어오르던 김이 그리워졌다.
그건 찻물이라기보다, 계절을 달이는 냄새였다.
보리차는 그렇게 부엌의 공기 속에 스며 있었고,
집 안 어디에 있든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방 안에 앉아 있어도, 마당을 쓸고 있어도,
주전자 위로 퍼지던 그 구수한 냄새 하나면
‘이제 곧 마실 물이 준비됐구나’ 싶었다.
어릴 적, 냉장고 안엔 늘 델몬트 유리병이 있었다.
오렌지 주스를 마신 뒤 깨끗이 씻어 다시 쓰던 그 유리병엔
고동빛 보리차가 담겨 있었고,
투명한 병 속에서 햇살까지 식어 보이곤 했다.
무겁고 투박했던 그 병은,
차가운 물보다 더 깊은 시원함을 품고 있었다.
갈증을 해소하려고 마신 물인데도,
마시고 나면 언제나 마음부터 편해졌다.
그건 그냥 물이 아니었다.
집이 주는 온기였다.
뜨겁게 끓였다가 식히고,
식힌 걸 다시 식히고,
그러다 꺼내 마시는 그 물
그 정성과 순환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땐 몰랐다.
보리차가 왜 특별했는지.
왜 꼭 끓여야 했는지,
왜 굳이 주전자에 덥히고 식히고를 반복했는지.
그저 ‘구수하다’는 말속에 다 들어 있는 줄만 알았다.
지금은 안다.
끓이는 시간은 기다림이고,
식히는 시간은 배려라는 걸.
사람도, 차도
한 번쯤은 뜨겁게 끓고 난 뒤에야
제 온도를 찾는다는 걸.
식어도 변하지 않는 맛.
차가워져도 마음을 데우는 향기.
그게, 보리차였다.
그리고 어쩌면,
여름의 시작은 늘 그렇게
다정한 물맛 하나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