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원짜리 동전으로 남긴 말들

그때의 전화박스엔 마음이 먼저 닿았다

by 기억상자

버스 정류장 옆, 오래된 공중전화박스.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 투명한 유리 안에서 누군가 울고 웃던 얼굴들이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주머니 속엔 꼭 100원짜리 동전 몇 개를 넣고 다녔다.
소중해서가 아니라,
그 몇 개가 있으면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말보다 돈이 먼저 떨어질까 봐 늘 마음이 바빴고,
‘뚜~’ 하는 소리가 들리면
숨 한번 고르기도 전에 재빨리 말을 꺼내야 했다.

전화박스 안에서 오가던 말들은
짧고 소박했지만, 늘 마음이 먼저 닿았다.


“엄마, 나 좀 늦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친구랑 놀다 들어갈게요.”
“야, 진짜 별일은 없는데... 그냥 니 목소리 듣고 싶더라.”
“아빠, 용돈 좀... 한 만 원만요. 급해서요.”
“야! 지금 뭐 하냐~ 나와라, 밥 먹자.”


전화박스 속 말들은 늘 짧았지만,
듣는 사람은 다 알았다.
그 짧은 한마디 안에
오늘 하루가 다 담겨 있다는 걸.

누군가는 걱정을 달래기 위해,
누군가는 조용히 기대기 위해,
또 누군가는, 그저 말 한마디라도 전하고 싶어서

그 안엔 백 가지 말들이 숨어 있었다.
그날 하루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그런 표정으로 말했는지,
받는 사람은 다 알았다.
말보다 숨소리가, 망설임이, 침묵이 더 많던 통화.


그게 공중전화였다.


어떤 날은
전화가 끊기는 ‘딸깍’ 소리보다
마지막 말 한마디가 더 무거웠다.


말을 꺼내기까지 오래 걸렸는데,
겨우 도착한 그 말이
100원짜리보다도 빨리 떨어졌다.

유리문엔 입김이 맺히고,
이마를 기댔던 흔적이 남았고,
받지 않는 전화엔
나도 모르게 “제발…” 하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기다리던 벨소리가 울리면
두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수화기를 더 꽉 쥐었다.
다른 쪽에서 "여보세요?" 하는 목소리가 들리면,
그제야 내 입에서 말이 터져 나왔다.
말보다 먼저, 안도의 한숨이 흘렀고.

그 짧은 통화 동안
주변 세상은 조용히 멈춘 것 같았다.
전화박스 안은 바람도 들어오지 않았고,
가끔은 울음도 숨도 그 안에서 머물다 나왔다.


끊긴 수화기를 내려놓은 뒤에도
나는 한참을 그 안에 서 있었다.


문을 열면
세상이 다시 시끄러워질까 봐,
내 마음이 아직 전부 전달되지 못한 것 같아서.

지금은 그 자리에 아무것도 없다.
고판만 덩그러니 남았고,
그 자리를 지나갈 땐
어쩐지 귀가 이상해진다.

누군가 “여보세요” 하고
내 이름을 부르며
바람을 타고 달려올 것만 같아서.


그 짧고도 긴 한 통화,
그 마음들은 지금 어디에 남아 있을까.


아마도
100원짜리 동전처럼,
작지만 오래 기억되는 무게로
가슴 어딘가에 고이 남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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