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내 전 재산이 뒤집혔다

초등학교판 주식시장, 딱지 코인 대폭락

by 기억상자

초등학교 4학년 교실.
세상이 내게 알려준 첫 번째 경제 수업은
은행도, 증권도 아닌 딱지판에서 시작됐다.


나는 딱지 21장을 갖고 있었다.
그중 은은한 광택이 나는 로보트 태권V 딱지가 핵심 주력 종목이었다.


눈빛은 레이저였고, 팔짱을 낀 포즈에서 이미 승리를 예고하고 있었다.
나는 이 딱지를 다른 딱지와 섞지도 않고,
지퍼백에 넣어 다녔다.
실물 투자란 이런 거다.


그날 점심시간.
나는 이 태권V를 들고 접기 고수로 불리는 5학년 형에게 도전장을 냈다.
딱지판은 벌써 교실 뒤편에 열려 있었다.


“형, 접기 한 판 하실래요?”


형은 짧게 말했다.


“올인?”


나는 잠깐 머뭇했지만, 태권V가 내 손 안에서 반짝였다.


오늘이다. 오늘 인생 바뀐다.


형은 딱지들을 양손에 나눠 들고는 말했다.


“자, 어디 손에 별이 많을까?”


나는 숨을 고르고, 형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오른손이 살짝 더 두툼했다.


‘그래, 저 안에 있다. 내 별들.’


나는 외쳤다.


“오른손! 2장!!”


형이 손바닥을 펼쳤다.

별 셋, 둘, 하나, 넷, 둘…

합 12별.

그 순간, 형이 반대손을 펼치며 말했다.


“아쉽다. 이 손엔 14별.”


패배.

내 딱지 2장이 형 손으로 이체되었다.


딱지들의 별은 반짝였지만, 내 눈은 침침해졌다.

형은 다시 딱지 뭉치를 내게 건네며 말했다.


“이번엔 네가 들고, 내가 맞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딱지를 쪼개 들고 숨겼다.
오른손엔 8별,
왼손엔 10별.

형은 고민도 없이 말했다.


“왼손! 4장”


정확했다.

내 손에 있던 4장이,
마치 국가의 예산처럼 조용히 빠져나갔다.

그렇게
접기 7연패.


내 손엔 이제 단 3장만 남아 있었다.
그중 하나는 S급 태권V.


나는 이 판을 뒤집을 기회로 삼기로 했다.

이번엔 불기였다.
형은 탑을 쌓았고,
딱지를 하나씩 불며 뒤집기 시작했다.


“태권V 걸게요.”
“오, 진심이네?”


형은 피식 웃더니
두 번째 불기에서 내 딱지를 딱—뒤집었다.

아이들은 “오~~~” 하며 환호했고,
나는 멍하니 형이 내 태권V를 자기 딱지 더미 맨 위에 올리는 걸 바라봤다.


로보트는 강했지만, 나는 약했다.


그날 나는 집에 가는 길에 조용히 중얼거렸다.


“난 딱지만 보고 있었는데,

형은 내 표정 보고 있었어.

내가 질 줄 알고 있었던 것 같아…”


엄마는 내 표정을 보더니 물었다.


“왜 그래? 딱지 또 졌어?”


나는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말했다.


“불다가 불어터졌어... 내 전 재산이.”


그날 이후로 나는 딱지를 두 장만 들고 다녔다.
하나는 접을 용도,
하나는 불기 전에 도망갈 구실로.


나는 배웠다.
딱지는 종이지만,
판단은 무겁게 해야 한다는 걸.


그리고,
사람은 손보다 입이 빠를 수 있다는 걸.

지금은 코인이니 주식이니 떠들지만
내게 가장 큰 손실은
불다가 날아간 S급 로보트 태권V 한 장이었다.


이게 내 첫 번째
접기 실패, 불기 파산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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