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은 극장에서 시작됐다.

6편 동전 하나가 떠오르면, 그날의 기억도 따라온다(사랑과 영혼 편)

by 기억상자

요즘은 동전을 거의 쓰지 않지만,

가끔 주머니 속에서 하나쯤 굴러다니는 동전을 만지작거리다 보면

오래전 극장의 한 장면이 불쑥 떠오르곤 한다.


그날 나는, 표도 없이 극장에 들어갔다.

동네 극장에서 청소 일을 하던 이모 같은 분이
내 손을 툭 잡아끌며 말했다.


“얌전히 뒤쪽에만 앉아 있어. 들키면 안 돼.”


10살이던 나는, 그 말만으로도 모험이 시작된 것 같았다.


커다란 화면, 어두운 객석, 어른들만 가득한 풍경.
어떤 영화가 상영 중인지도 모르고,
그저 숨죽이며 이모 손을 따라 조심조심 들어갔다.


영화는 조용했다. 그리고, 조금 이상했다.

흙을 만지는 두 사람이 나왔고,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도자기를 빚는 장면은 낯설고, 어딘가 조심스러워 보였고,
그 장면을 바라보는 사람들 얼굴은 유난히 진지했다.
나는 잘 몰랐지만, 이상하게 눈을 뗄 수 없었다.

귀신처럼 보이는 남자가 거리를 달리고,
누군가를 쫓고, 또 누군가는 울고 있었다.
죽은 사람이 말을 걸고, 살아 있는 사람이 들으려 애썼다.
그게 무서운 일인지, 슬픈 일인지,
그땐 딱히 구분할 수 없었다.


그런데 한 장면이 유난히 강하게 남아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동전을 움직이던 순간.
말 대신, 물건 하나를 들어 올려 보여주던 장면.

어린 나는 그게 너무 신기해서
‘귀신이 진짜 저럴 수 있을까?’ 싶었고,
몰리는 그 동전을 보며 울었다.

나는 어쩐지 같이 울고 싶었지만,
그게 왜 슬픈 건지 끝내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그 눈빛과 그 목소리엔 거짓이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도, 그 여자가 흘리는 눈물이
왠지 내 마음을 울렁이게 했다.


“I love you.”
“…Ditto.”


그 짧은 대사를 나는 기억한다.
그땐 무슨 뜻인지도 몰랐지만,
왠지 멋진 말 같아서
집에 돌아가며 속으로 몇 번이나 따라 해 봤다.


디또. 디또.


마치 주문처럼 마음속에서 맴돌았다.


시간이 흘렀고,
그 영화가 다시 TV에 나올 때쯤 나는 이미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그들이 빚던 건 도자기가 아니라,
함께 만들고 지키고 싶던 마음이었다는 걸.


그리고 “Ditto”라는 그 짧은 말이,
사랑을 되돌려주는 가장 조용하고도 확실한 방식이었다는 걸.
말이 짧을수록, 마음이 깊을 수 있다는 것도
그 영화를 다시 보며 알게 됐다.


그때는 공짜로 봤지만,
지금은 마음 다 주고 다시 보고 싶은 영화.
그 영화가 내게 처음 알려준 건
사랑이란 말보다,
그 말 없이도 닿는 마음 하나였다.


그리고 문득,
그 말이 떠오를 때가 있다.
누군가 내게 조용히

“I love you.”라고 말한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Ditto.”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 시절, 강시와 함께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