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강시와 함께 뛰었다.

팔을 앞으로 뻗으면, 그 시절이 따라왔다

by 기억상자

이마에 부적을 붙인 시체가
깡충깡충 뛰어다니던 그 영화, 기억하시나요?


‘강시’라는 단어를 들으면,
나는 이상하게도 ‘무섭다’는 감정보다
먼저 ‘어린 날의 냄새’ 같은 것이 떠오른다.


방 안에 가득하던 먼지 냄새,
가끔은 쿰쿰했던 이불 속 공기,
그리고 누군가 웃다가 새어나온 숨결처럼
희미하지만 분명한 냄새.


언제부터였을까.
누군가 “강시다!” 하고 외치면,
아이들은 장난을 멈추고 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입은 다물고 눈만 치켜뜬 채, 깡충깡충.
슬리퍼를 끌며 어기적거리던 그 동작은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건 마치 유행처럼 번지는 동작이 아니라,
마치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있던
놀이 본능 같은 거였다.


정확한 장면은 희미해도,
그때의 놀이는 생생하다.
운동장 모래 위에서, 골목길 담벼락 옆에서,
우리끼리는 부적 없이도 도사가 되었고,
찢어진 공책 한 장이면 이마에 붙일 부적이 완성되었다.

친구가 부적을 이마에 붙이고 달려오면
우리는 “강시다—!”를 외치며 도망쳤고,
누군가는 가짜 주문을 외우며
진지하게 손바닥으로 기를 보내기도 했다.


어떤 날은 겁이 너무 나서
진짜로 강시가 오는 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이 들기도 했다.
베개 밑에 부적처럼 접어 둔 종이 한 장을 숨겨 놓고,
그걸로 날 지킬 수 있다고 믿었던 밤.

하지만 다음 날이면 또 아무 일 없다는 듯,
우린 다시 팔을 뻗고 ‘흐어어~’ 소리를 냈다.

그건 우리만의 암호 같았다.
어린 시절의 언어이자, 용기였고, 놀이였다.


강시는 무섭고도 웃긴 존재였고,
놀이이자 상상이었고,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우리들만의 괴담이었다.


별다를 것 없던 골목도,
그날만은 마치 영화 세트장이 되었다.
자전거는 도사들의 탈것이 되었고,
철문 옆 그늘진 자리는 언제나 강시가 숨어 있을 법한 장소였다.


지금은 어디서도 강시라는 말을 들을 수 없다.
그 단어가 나올 법한 대화는 사라졌고,
팔을 뻗고 뛰는 아이들 역시 보이지 않는다.

‘강시’는 이제 더 이상 유행도 아니고,
누구의 입에서도 쉽게 꺼내지지 않지만,
나에겐 아직 그 단어가 살아 있다.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만 들으면
내 안에서 무언가가 불쑥 깨어난다.
팔이 저절로 앞으로 뻗어질 것 같고,
누군가 내 이마에 종이 부적을 붙여줄 것만 같다.

‘강시’라는 단어 하나가
그토록 많은 기억을 데리고 올 줄은 몰랐다.


지금도 그 말만 들으면,
내 안의 어린 내가 깡충깡충 뛰어오른다.


생각난 김에…


오늘 밤, 부적이나 하나 그려볼까.
그때는 그 종이 한 장이면
세상 모든 게 막아질 것만 같았는데.


지금도 가끔,

그런 게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고

문득 생각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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