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속 형편을 부끄러워하던, 그 시절의 나에게
도시락을 열기 전,
먼저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먼저 옆자리부터 슬쩍 훔쳐본다.
반짝거리는 소시지,
바삭한 돈가스,
너겟 위에 빨갛게 얹힌 케첩 한 줄.
그 도시락들은 뭔가 반짝였고,
소풍처럼 즐거워 보였다.
내 도시락은 조금 달랐다.
익숙한 김치,
조금 짠 멸치볶음,
어디선가 흙냄새 나는 나물 한 줌,
아주 가끔은,
계란찜이 얹혀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런 날엔 그게 참 기분 좋았다.)
뚜껑을 여는 순간,
빨간 김치 향이 먼저 퍼졌다.
김치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인기 반찬들 사이에서
그건 늘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반찬이었다.
괜히, 나도 부끄러워졌다.
마치 내가 김치인 것처럼.
조심스럽게 한 조각을 집어
밥 위에 올려두며 슬쩍 주위를 둘러봤다.
혹시라도,
“왜 맨날 김치야?”
그런 말을 듣게 될까 봐,
입보다 마음이 먼저 움츠러들었다.
그 시절,
우리 집엔 늘 김치가 있었고,
그만큼 없는 것도 많았다.
도시락 반찬에
‘형편’이 담긴다는 걸
그 어린 나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김치를 먹는 입보다
그걸 보는 누군가의 눈이 더 신경 쓰였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이제는 도시락을 싸들고 다닐 일도,
그 속을 남과 비교할 일도 없다.
지금은, 도시락 없이도
하루를 넉넉히 채울 수 있는 날들이다.
어지간한 건 사 먹을 수 있고,
사 먹는 김치는 종류도 많고 맛도 좋다.
그런데 요즘,
가끔 그때의 김치가 생각난다.
그 시절, 가장 감추고 싶었던 반찬이
지금은 가장 자주 떠오른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마음 한쪽에
오래도록 익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부끄러웠던 건,
김치가 아니라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그 마음이었지 않을까.
친구들보다 조금 덜 가진 걸
들킬까 봐 조심하던,
아주 어린 마음 하나.
그 마음이,
시간이 지나서야
괜찮은 거였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조금 부족했던 그날들이,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조금 더 살필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그래서 지금의 나는,
그 시절의 나를
이제는 가끔 미소 지으며 떠올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