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리로 느끼는 사계절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나는 내 두피와 친해졌다.
왜냐고?
머리를 밀었으니까. 아주 시원하게.
입학 전에 다녀온 집 근처 미용실,
3천 원짜리 바리깡 소리는 아직도 생생하다.
“지잉———”
그 짧고 굵은 소리와 함께
나의 앞머리, 옆머리, 뒷머리는 작별 인사를 했다.
다만 귀는 너무 잘 보여서 당황했고,
이마는 갑자기 너무 넓어져서 고속도로 개통 느낌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정수리로 계절을 느끼는 삶을 살게 되었다.
봄바람은 ‘간질간질’,
여름 햇빛은 정수리 직통 햇반 모드
가을엔 ‘머리카락 대신 낙엽’,
겨울엔… 짧은 머리 + 바람 = 참선의 계절
두발검사 날이면,
학교 앞은 이미 분위기가 삼엄했다.
선도부는 교문 앞에서 국정원급 스캔 능력을 발휘하며 외쳤다.
“정수리 눌렀을 때 찔리면 합격, 푹신하면 불합격!”
덕분에 우리 반 단체사진은
전원이 ‘군기 바짝 든 신병’ 콘셉트였다.
웃지도 않고, 머리는 다 똑같이 밀려 있어서
누가 누군지 구별하려면 이름표를 봐야 했다.
특히 뒷줄은 멀리서 보면 거의 복붙 수준의 빡빡이 행렬.
단체사진이라기보단 ‘수용소 수료식 사진’ 같았다고 하면 좀 심한가?
그 와중에도 꼭 있었다.
간지 빡빡이.
같은 바리깡인데 왜 걘 잘생겨 보일까?
게다가 눈썹도 살짝 다듬고 와선
“아니 그냥 미용실에서 서비스로 해줬어~” 라며 허세를 부렸다.
그 말 믿은 우리가 바보지.
나는 집에 돌아오면 거울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봤다.
이건… 사람이 아니라 달걀인가, 탁구공인가.
이마는 광활하고, 귀는 너무 당당했고,
표정은 덤덤했지만 속으론 조금 울고 있었다.
이제 겨우 중학생인데, 벌써 세상의 냉기를 다 맞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두발 자유화란다.
요즘 애들은 염색도 하고, 파마도 하고,
앞머리를 내려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단다.
라떼는 말이야~~
앞머리는 규정 위반이었고,
바람에 흩날릴 머리카락조차 없었다.
머리카락 한 올로도 혼나던 시절.
우리는 늘 똑같은 머리로 계절을 버텼다.
그래도 가끔은 그립다.
짧은 머리로 맞던 바람,
세수할 때 물이 쭉쭉 내려가던 감각,
샴푸를 한 방울만 써도 되던 경제성.
그리고
가장 순수하게 교칙에 맞춰 살았던 그때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