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았던 고기, 뜨거웠던 시절

1500원으로 구웠던 건 고기보다 청춘의 시간이었다.

by 기억상자

1500원이면 큰 접시에 산처럼 쌓아주던 고기.
접시가 작아서 그렇게 보였던 건 아니고,
진짜로 고기가 얇아서 가능했던 시대였다.


대패로 민 듯한 삼겹살.
불판 위에 올리면 종이처럼 말리며 익고,
“이거 익은 거야?” 하던 친구가
젓가락으로 뒤집는 순간,
이미 바삭하게 타고 있던 고기.


지글지글을 지나 치이익—까지 가던 불판,
기름기 하나 없이 구워지는 고기.

지금의 대패삼겹살은 분명 더 좋다.
씹는 맛도 있고, 고기답다.


그땐 그냥 얇은 돼지고기였을 뿐인데,
우린 왜 그게 그렇게 맛있었을까.


아마도,


고기 때문이 아니라 함께 구웠던 시간이 있어서였을지도.

술은 항상 소주였고,
잔을 따르며 괜히 심각한 얘기 꺼내는 친구가 있었고,
양념 반찬 위에 고기 올려주며
눈치 없는 남 얘기하던 친구도 있었다.


연기 자욱한 가게 안,
휑한 통장 잔고와 허기진 속,
하지만 괜히 웃음 나던 밤.

그 시절의 대패삼겹살은
사실상 고기보단 ‘분위기용 얇은 구실’이었다.


배고픈 걸 핑계 삼아
서로 위로하고, 웃고,
가끔 울기도 하던 시절의 불판 위 풍경.


지금은 다들 제법 좋은 고기를 먹지만,
그때처럼 소주 한 잔이 목을 타고 따뜻해지는 느낌은
왠지 더는 없다.


그땐 고기가 얇았고,
우리는 서툴렀고,
그래서 더 뜨거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참 좋았다—


그 시절이 참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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