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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은 극장에서 시작됐다

3편 그 여름, 손 내밀던 친구(E.T 편)

by 기억상자

그 영화는, 방학 특별 상영작이었다.

동네 작은 극장, 아마 동시상영관이었을 거다.

영화 포스터에는 까만 밤하늘 아래,

하늘을 나는 자전거와 손가락을 맞대는 모습이 있었다.


E.T..


제목도 짧고, 외계인이 나오는 이야기라기에

친구들이랑 아무 생각 없이 표를 끊었다.


극장 안은 시원했고,
팝콘은 돈이 모자라서 못 샀다.
그래도 두근거렸다.
왜냐면 스크린에선 진짜 외계인이 나온다니까.


이티는 좀 못생겼고,
처음엔 웃겼다.
근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 친구가 걱정됐다.


숨을 헐떡이던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갔고,
몰래 집에 전화하려던 장면에선
괜히 마음이 뭉클했다.

그리고 어느 날,
주인공 소년 엘리엇이 이티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We could grow up together, E.T.”
“우리 함께 어른이 될 수 있을 거야, 이티.”


그 말이 왜 그리 아련했는지 모르겠다.
나도 그런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누구보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멀리 가지 않고 옆에 있어주는 그런 친구.


“E.T. phone home.”
“이티, 집에 가고 싶어.”


그 짧은 말 한마디에
괜히 울컥했다.
친구들도 말이 없었다.
어쩌면, 다들 그 말이
우리 마음 같았는지도 모르겠다.


이티가 떠날 때,
엘리엇을 향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이상하게도 오래도록 남아 있다.


“I’ll be right here.”
“난 여기 있을게.”


손가락 끝이 반짝이던 그 장면에서
나는 정말로 손을 흔들었다.
혹시라도 그 친구가 돌아볼까 봐.


그 영화는,
외계인이 나오는 이야기였지만,
사실은 친구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어른이 된 지금,
가끔 하늘을 볼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때 우리가 함께 자랄 수 있었다면,
지금쯤 어디쯤에서 또 만나고 있을까?”


이티는 떠났지만,

그 여름의 나는 아직도

그 자리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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