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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영 Oct 27. 2024

6. 쓰려고 퇴고합니다

 작가들의 세상에서, 제가 ‘내 안의 창조성’을 보호하기 위해 썼던 방법은, 나의 창조성을 더 자주 밖으로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일기를 쓰는 것도 좋고, 시를 쓰는 것도 좋고. 어떤 때에는 방송대본만 아니라면 뭐든 다 좋았던 것 같아요.


 쓴 글은 SNS를 통해 공개했습니다. 언어적 감각을 동원하는 일들이 저에게는 큰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 추천하고 싶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평소에 쓰는 글과는 다른 장르로 시도하면 더 재미있었어요.


 ‘가만있자, 내가 뭘 쓰려고 했더라?’와 같은 생각은 잘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날 마음 깊이 차올라있던 무언가를 즉흥적으로 써 내려갔고, 뭔가를 쓰고 싶기는 한데, 집중이 되지 않을 것 같을 때에는 이전에 써놓은 글을 읽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쓴 글일 때도 있었고, 다른 작가가 쓴 글일 때도 있었어요. 가장 좋았던 것은 제가 최근에 가장 몰입해서 완성한 글을 찾아 읽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백이면 백, 읽을 때마다 고치고 싶은 부분이 눈에 들어왔어요.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쓴 글. 이미 발행한 글이지만 망설이지 않고 퇴고했습니다. 정말이지, 망설이지 않았어요.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한 글자라도 보이면, 얼른 수정하고 싶어서 다급한 기분이 들었으니까요. 


 집중해서 조심스럽게 읽어 내려가다 보면 그 글을 처음 쓸 때와 가까운 몰입도와 감정으로 빠져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내가 썼던 글을 고치다 보면 그 글에서 이어서 쓰고 싶은 내용이 떠오른다거나, 다른 새로운 영역으로 생각이 확장되기도 합니다. 다시 쓸 수 있는 힘이 생긴 거지요. 그러면 신이 나서 새로운 글을 써 내려가곤 했어요. 


 다른 작가가 쓴 글을 읽을 때는 그 글이나 혹은 책에서 무언가 배우고 싶고 얻어내려는 것이 있어서 그것을 생각하며 읽기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잘 읽히지 않는 책, 많은 분이 어려워하는 책은 왜 그런지 궁금했어요. 특히 번역서의 경우 내가 이 글을 ‘실례지만’ 좀 뜯어 살펴보겠다는 심정(과연 고칠 만한 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으로 읽었습니다. 역시 출간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긴 했어요. 


 그렇게 글을 읽다가 나만의 언어로 정리하고 싶은 것이 생기거나 내용과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을 때, 그것을 기록하기 위해 메모를 해두거나 재빨리 노트북을 켜서 글을 썼습니다. 중요한 건 ‘퇴고한다는 생각’으로 나의 주관이 끼어들 틈을 열어가면서 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빠르고 즐겁게 글쓰기를 위한 몰입 단계에 도달할 수 있어요. 

우리가 잠을 잘 때도 깊은 수면으로 빠지기 전 '가수면'이나 '렘수면'같은 이전의 단계가 있지요. 이처럼 글쓰기에도 깊은 몰입 이전의 단계들이 있다면, 퇴고하면서 읽는 것은 깊은 몰입을 위한 스트레칭과도 같아요. 좀 더 깊은 몰입으로 빠르게 접어들게 해주지요. 정말 놀랄만한 속도로요. 그러니 독서와 퇴고는 제가 새로운 글을 쓰기 위해 치르는 의식, 혹은 워밍업을 위한 도구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누군가의 글을 고친다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여러분도 어떤 글이든 고칠 여지가 있다는 생각으로 독서를 한 번쯤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왜 저는 자꾸만 글을 고치거나 제 생각을 덧붙이고 싶었을까요? 누군가의 글을 단순히 감상하고 소비하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어요. 늘 무언가를 표현하거나 대화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여기서만 고백하는데, 저는 어릴 적부터 팅커벨이 너무 만나고 싶었답니다. 만나면 제 이야기를 들어봐 달라고요.) 책을 읽을 때도, 어느 순간 질문을 던지고 그것의 답을 찾기 위해 게슴츠레 눈을 뜨고 활자들을 훑어 내려가는 자신을 발견했고, 글을 쓸 때도 가슴에 품은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글을 쓰고 있었지요. 답을 구하면 구하는 대로 좋았고, 구하지 못하면 구할 거리가 생겨서 좋았습니다. 그것이 저의 또 다른 글감이 되어주었어요. 


 학교나 직장, 혹은 어떤 모임에서든 나와 생각이 비슷하다 싶으면 호감의 표현으로 맞장구를 치게 되지요. 때로는 나와 생각이 달라도 일단 고개를 끄덕이고 봐야 할 때도 있고요. 사람들 사이에서 너와 내가 다르다는 것은 시너지가 되기도 하고 불협화음이 되기도 합니다. 배움과 조율의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혐오 혹은 부러움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요. 그러다 보면 내가 가진 개성이나 주도성이 묻힐 때도 많은데, 우린 그것으로부터 몸부림치거나 회복해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교적인 사람도 가끔은 고독을 찾아 일상을 떠나는 것이 그 예라고 볼 수 있지요. 

 이럴 땐 타인의 말과 행동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의 생각을 정리하기만 해도 ‘아,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나는 다른 사람과 이렇게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건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와 수다를 떨면서도 가능하고, 저처럼 글쓰기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지요. 저는 이것이 자신의 창조성과 자기 주도성을 되찾는 가장 빠르고 자연스러운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속마음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저는 ‘내 안의 창조성’을 보호하기 위해 지금도 글쓰기를 하고 있고, 글을 쓰기 위해 써둔 글을 퇴고합니다. 세상 속에서 명확히 존재하는 법이 바로 글쓰기, 다시 그 속의 비장한 언어를 갈고 닦는 것이 퇴고였던 것이지요. 창조성이 치유되면 나의 자아도 단단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답니다. 무엇을 읽든 나의 언어로 재구성하고, 누가 뭐래도 나의 주관을 꺼내 들어 흔들리지 않고 표현할 수 있도록 연습합니다. 창작을 위한 독서 모임을 즐기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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