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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영 Nov 07. 2020

다시 너의 눈과, 눈이 마주칠 때까지.(3)

남자가 두려운 비혼 주의자

수술을 받고 집으로 내려오신 아빠는 몸무게가 급격히 줄어들어 수척해 보이셨고 엄마는 신경이 곤두선 것처럼 느껴졌다. 갑작스러운 암 선고에 입원부터 수술까지, 집으로 돌아와서는 당장 아빠의 식단부터가 엄마의 숙제인 것이었다. 아빠의 의지가 가장 중요했고 우리 가족 모두의 노력이 필요했지만 우리는 모두 결혼을 해 따로 살고 있으니 현실적으로는 엄마의 어깨가 가장 무거웠을 것이다.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아빠를 만난 나는 열심히 햇님이를 아빠 앞에 데려와 보여주려 애썼다. 이렇게 귀여운 손자가 나왔으니 아빠도 얼른 이겨내시고 손자 손잡고 예전처럼 재미있게 놀러 다니 자는 뜻이었다. 아빠는 "외할아버지 다 낫고 나면 함께 골프 치러 가자."라고 말씀하시며 햇님이에게 분유를 먹이셨다. 혼합수유를 하길 잘했다. 완전 모유수유를 하지 못해 속상했던 나는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빠의 상태는 점점 호전되는 듯했다. 다 함께 모여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아빠가 어느 정도 즐겨도 좋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아빠가 드시던 중 어느 시점이 지나면 아빠를 걱정하는 엄마의 잔소리가 끼어들어 두 분이 투닥거리시곤 했다. 내가 어릴 때부터 겪어온 두 분의 말다툼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었다. 말의 뜻은 서로를 위하는 마음 그 자체가 분명했지만 주고받는 어조에는 지친 마음이 스며있어 일일이 귀담아듣지 않아도 마음이 아팠다. 뜻을 되짚어 볼 순 없지만 당장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만 같은 분위기. 그것은 햇님이에게도 그렇게 들렸을 것이다. 투병이란 손자가 예쁘다고 해서 드라마틱하게 승리하는 싸움이 아니었다. 투병은 일상이었다.


내가 자란 가정환경을 누구와도 비교한 적이 없었다. 매일 챙겨가는 학교 준비물은 늘 문구점에서 제일 좋은 것으로 사주셨고, 방학숙제에 도움이 될 개미집을 손수 만들어 주실 정도로 나의 부모님은 내 학창 시절의 든든한 지원군이셨다. 단, 친구나 다른 외부 환경에 있어서 부모님은 통제가 강한 편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은 행동을 할 때면 부모님의 잔소리가 지친 마음이 깃든 날카로운 어조로 날아와 가슴에 꽂혔다. 나는 자라면서 나의 일기장이 들춰지는 걸 극도로 싫어하게 되었고 나의 내면을 꼭꼭 감추게 되었다. 자물쇠가 딸린 비밀 일기장을 펼칠 때면 '빅브라더'가 꼭 내 손 끝에 있는 것만 같았다. 장난 섞인 가끔의 반항만이 그 통제를 야금야금 누그러뜨려보려는, 소통의 도구였다.


친구들끼리 학교 쉬는 시간에 깔깔대며 한 번쯤 나눌법한 이야기. "우리 중에 네가 제일 일찍 결혼할 것 같아." "아닌데? 난 결혼 최대한 늦게 할 건데?" "꼭 그런 애들이 나중에는 결혼 제일 빨리한다더라."

어렴풋이 떠오르는 등학교 성교육 시간에, 여자로서의 경력단절을 최소화하고 싶으면 23살에 결혼해 아이를 낳는 것이 아이와의 세대차이도 거의 나지 않아 제일 좋다는 계산이 나온 적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때쯤의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긴 할까? 어른이 된 나는 어떤 모습일지 가끔 상상해 봤다. 아이는 낳고 싶었지만 결혼은 두려웠다. 사실은 아이를 낳는 것도 두려웠다. 내 뜻에 따라 통제되지 않는 것에 대해 나도 나를 어찌할지, 상대를 어찌할지, 알 수가 없었다. 속 편하게, 나는 비혼 주의자가 되기로 했다.


연애는 좋은데 결혼은 싫은 나, 비혼 주의자. 난 왜 비혼 주의자일까? 나는 나만의 공간에 아무렇지 않게 왔다 갔다 하는 제2의 인물을 놓기가 싫은 것이었까? 나는 어지간한 고민거리 또는 가십거리가 아니면 친구나 가족에게 공유하지 않았다. 내 공간, 내 시간, 내 삶을 공유하고 다른 누군가의 그것과 조화를 이루며 산다는 건 아무나 해 낼 수 없는 능력 같았다. 머리가 복잡할 때면 노트북 앞에 앉아 내면을 마주했다. 답은 늘 나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통제가 강한  나'에게, '늘 나보다 힘이 셀  남자'는 상극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런 고민을 할 때마다 늘 나를 설득하던 화가 있다.


예쁜 딸을 가진 아버지가 있었다. 사자 한 마리가 아버지 앞에 나타나 딸과 결혼하고 싶다며 졸랐다. 딸의 아버지는 사자에게 '날카로운 발톱들을 모조리 뽑아오면 딸과 결혼식을 올려주겠다'라고 약속했다. 아버지는 발톱을 모두 뽑아낸 사자가 돌아오자 이번에는 '뾰족한 이빨이 딸을 해칠  것 같으니 이빨도 모조리 뽑아오라' 고 요구했다. 사자는 아버지의 말대로 이빨을 모두 뽑아 없애고 다시 나타났다. 하지만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이 없는 사자는 더 이상 늠름하고 용감한 모습의 멋진 사자가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는 이 화 속 '사자'는 바로 내가 결혼하기를 두려워하는 '남자'였다. 센 힘을 가졌고, 실제 한국사회에서도 더 대우받는 지위를 가지며, 때로는 술과 폭력에 휘둘리기도 하는 남자. 여자인들 안 그런 부분이 있겠느냐마는, 그때는 그랬다. 이것도 세대차이인지, 여자로서 너무 많은 것을  손해보고 산다고 느낀 엄마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편견 섞인 왜곡된 감정이 생겨났으리라. 부모님  분은 분명히 서로 사랑하시지만 자녀가 바라는 것만큼 다정하지는 않으셨다.


다시 동화 이야기로 돌아가자. 이 결혼에 있어, 정말 사자의 이빨과 발톱만이 문제의 답이었을까? 애당초 딸의 아버지는 사자와의 결혼을 허락할 생각이 없었다. 그냥 사자가 싫고 두려웠던 것이다. 사자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는 사냥의 기질은 이빨과 발톱이 없어진다고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해서, 그들도 처음부터 믿지 않았다. 결국 본연의 모습을 잃은 사자는 점점 우스꽝스러워질 뿐이었다. 차라리 사자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더욱 멋졌을 것이다.


이 동화는 나에게도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정말로 는 이빨이 없는 사자를 원하느냐고. 안타깝게도 이빨을 드러내지 않는 사자는 나에게도 매력이 없었다. 사자는 맹수의 위치에서, 가지고 태어난 성품과 주어진 환경에 맞게 사냥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빨과 발톱을 뽑는다고 해서 절대 동등한 입장이 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따져보면 사람들의 관계도 다르지 않았다. 이 세상 누구와도 완벽히 동등한 입장 일 수 없는데, 어떻게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꾼다는 말인가? 하지만, 꼭 완벽해야 할까? 어차피 누구와 결혼해도 입장이 동등하지 않다면서? 완벽하지 않아도 서로 기울어져가면서 잘 살기도 하잖아? 나를 파고드는 스스로의 질문은 점점 '결혼하고 싶은 나'가 되게 만들었다. 나는 사실 연애뿐 아니라 결혼도 하고 싶은 거였다. 나는 내면의 질퍽한 바닥에서 튕겨져 나왔다.


생각의 방향을 바꿔서, 그렇다면 나는 어떤 배우자를 만나야 그와 잘 어울릴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했다. 나는 상대방이나 상황의 무조건적인 통제가 아니라, 상대가 내 의견을 따르기 이전에 인정받고 존중받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이상형을 재설정했다. 나를 인정해주고 나의 말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 서로에게 맞춰주기 위한 노력을 할 줄 아는 사람. 그거면 충분했다. 당장 내 주변을 돌아봤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나는 비로소 다른 사람의 내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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