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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영 Nov 25. 2020

그래서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1)

이미 글러먹은 나의 미니멀 라이프

지난해 봄, 오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친구는 3살 배기 딸아이 하나를 두고 있는 엄마다.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 친구는 뭐든 꽂히면 확실하게 알아내는 스타일이라 무슨 말을 해도 나는 흘려들을 수가 없다. 나의 지적 허영심 때문이다. 조금 듣다 보니, 이거 이거... 며칠 전에도 첫째 아이 유치원 하원하고 집 앞 놀이터에서 엄마들이 하던 이야기가 아닌가. 그로부터 2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우리에게는 미니멀 라이프가 유행 중이다. 나만 빼고.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을 1일 1개 버리기가 미션인 듯 너도나도 집안에서 버릴만한 물건들을 찾아 집 밖으로 버리고 있다. 쓰레기가 매일 집 앞에 쌓인다. 하지만 개운하다. 새벽마다 쓰레기차가 수거해 가니까, 결국 집 앞도 깨끗해진다. 집 안에 내 물건, 내 마음 둘 곳까지 조금이라도 더  여유가 생기는 건 무척이나 멋지고 소중한 경험이다.


경기불황으로 인해서 생긴 '미니멀 라이프'는 우리네 소비패턴과 인테리어, 살림 방식 전반을 아우르는 용어가 된 듯하다. 버리고, 정리하고, 내 마음은 채워진다. 남들보다 더 좋은 것을 가지려고 노력했던 나 자신을 보듬어주고, 주변들에 조금 더 잘 보이고자 애썼던 소비심리에 대항한다. 나는, 나에게 더 '특별한 나'가 된다. 나를 더 사랑하는 내가 된다. 나는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다. 그러니 더 가질 필요도 없다. 불필요한 것들을 버릴수록 미운 마음은 비워진다.


미니멀 라이프, 알수록 마음에 쏙 든다.

그런데 나는 글렀다.


거실 한가운데 서서 집 안을 둘러봤다. 문득 단 한 가지 질문이 떠올라서였다. 나는 뭐 버릴 것 좀 없나? 이 집에서 제일 정리 안 되는 물건은 무엇이 있나. 아이들 장난감? 아, 강제 집콕하는 이 시국에는 엄마가 하는 일거수일투족이 남매에게 공유된다. 몰래 무언가를 하기에는 들킬 위험이 크다. 24시간을 함께 하다 보니 체력은 아이들이 잠들기도 전에 방전되기 일쑤다. 내 돈으로 사줬다고 내 마음대로 했다가는 아이와의 신뢰관계가 깨질지도 모른다.  마음 좀 개운하게 풀어 보자고 아이와의 관계를 건드리고 싶지는 않다.


냉철한 눈빛으로 거실 바닥을 쳐다보고 서 있는  엄마가 어쩐지 수상한가 보다. 아이들이 쫄래쫄래 옆으로 다가와 묻는다.

"엄마, 뭐 하고 있어?"

'7짤이'의 말에 순간 뜨끔했다.

"으응...? 아, 그냥... "

"엄마 뭔가 쳐다보고 있었어?"

어쩜 이리도 예리할까.

"엥~? 아닌데~ 아무것도 안 보고 있었는데~?"

시치미 뚝 떼고 말해놓고 나니 내 말투가 영 어색하다.

"엄마 장난감 보고 있었어? 우리가 정리 안 해서? 엄마 혹시 우리 장난감 버리려는 거야??"


아무것도 안 했는데. 쳐다보기만 했는데. 아이들은 엄마의 빅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 틀림없다. 늘 정리하라고, 정리를 안 하면 장난감들이 장난감나라로 다시 되돌아 가버린다고 으름장을 놓으니 엄마가 장난감을 보는 시선에서 느낌이 오나보다. AI도 요런 건 못하겠지.


아무렇지 않은 척 얼버무렸다.

"아니~ 안 버릴 건데? 정리 잘하면 되지~"

약속을 받아내겠다는 듯, 우리 집 '7짤이'가 되묻는다.

"진짜로 안 버릴 거지?"


'... 들킬 거면 안 버리지...'

반은 들킨 거나 마찬가지다. 속으로 생각하며 아이들의 긴장된 물음을 뒤로하고 저녁식사 준비를 하려는 척, 주방으로 눈을 돌렸다.


맙소사. 이게 정녕 전업 주부의 주방이란 말인가. 전업주부가 왜? 결혼 전에 정리 잘하는 면접이라도 보고 들어오나? 그렇지만 영 내 마음에는 안 든다. 뭐가 문제 일까. 우리 집 '3짤이'가 만질까 봐 조리대로 올라온 조미료들? 씻어서 엎어놓은 그릇들? 아직 제대로 버리지 않은 쓰레기? 그러고 보니 주방 한 구석에 씻어 말린 재활용품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코로나 19가 우리의 일상을 덮쳐오기 전부터 재활용품을 모으고 있었다. 집에서 놀이나 독서활동을 '재활용품으로 만들기'를 통해 하고 있어서였다. 분리수거함이 있는 베란다 입구에서부터 주방을 거쳐, 아이들 만들기 재료가 가득한 놀이방에까지. 그 양이 너무도 많아 집에 누군가를 초대하기가 망설여질 정도다. 지난 추석에는 할머니 댁에서 페트병을 비롯한 일회용품들을 한 박스 가득 채워 들고 왔다. 그러니까 나는 SNS에서 다들 하는 '미니멀 라이프'식으로 집을 꾸미긴 글렀다.


저녁 준비 중에 식탁에 앉아 팽이에 관한 그림책을 만들던 '7짤이'아들이 갑자기 흥분해서 엄마에게 소리친다. 다음 페이지에는 '지구를 지키는 팽이'를 그리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예전에 어쩌다 자기가 만든 그림책을 유치원에 가져갔다가 선생님이 친구들에게 소개했던 적이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그림책 '2탄'은 언제 나오느냐 물으셔서 이번에는 친구들에게 '팽이 도감'을 만들어 소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친구들이 집에서도 해 볼 수 있도록 재활용품을 이용해 팽이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 줄 거란다. '7짤이'가 말하는 '지구를 지키는 팽이'는 바로 재활용품을 이용해 만든 팽이였던 것이다.  


쉽게 쓰고 쉽게 버리는 시대에 우리는 잘 사지도 않고 잘 버리지도 않는다. 우리는 할 수만 있다면 필요한 물품이나 놀잇감을 재활용품으로 만들어 쓴다. 재활용품으로 장난감 만들어 놀기만 해도 아이는 직접 가르치는 것 보다도 더 크게 자란다. 설명서 없이도 도전해 볼 수 있는 용기, 창의력, 상상력, 지구를 위한 마음까지. 만든 것은 세상에서 하나뿐인 아이의 노력과 엄마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이다.


이것은 우리가 즐거워서 하는 일이고, 동시에 환경을 생각하는 의미 있는 일이다. 아이들도 함께 틈틈이 재활용품을 모으고, 종종 멋진 아이디어를 내며, TV와 스마트폰을 보는 대신 엄마와 재활용품으로 만들기를 하는 시간을 기다린다. 재활용품으로 가득한 놀이방은 정돈되어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에게는 보물창고나 마찬가지다. 이런 우리도 '충분히 괜찮고 특별한 우리'이기 때문에, 이웃을 초대하기 위해 이 일을 그만둘 수는 없다.


우리의 공간에 질서와 여백은 필요하지만 물건 버리기나 심플한 인테리어는 필요하지 않다. 코로나 블루가 우리에게 스며들 틈도 없이 가구가 1도 없는 침실에는 활기가 넘치고, 싸구려 컵 하나도 우리에게 특별하다고 하면 그것 하나로 평생 쓸 수도 있는 것이다. 미니멀 라이프가 유행하다 보니 왜곡된 방향으로 실천하는 것을 목격하곤 하는데 단순히 물건을 버리는 것만이 미니멀 라이프는 아니다. 잔가지를 쳐내며 정말 나에게 가치 있고 소중한 게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삶, 그것이 모두가 원하는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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