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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산책가 Mar 19. 2022

오월, 아다지오 바람에 핀 꽃

바바리맨도 추억이다

오월, 아다지오 바람에  

 

 바람이 느리게 분다. 5월이다.

버스를 타고 통학하는 건 이제 익숙하다. 학교 가는 오르막길도 거뜬하다. 조금 더 자랑하자면 등굣길에 주의할 점도 알고 있다. 왼쪽으로 가는 길이 빠르지만 혼자 가지 않는 게 낫다는 것을. 간혹 놀랄 일이 생기더라도 앞만 보고 죽어라 뛰지 말고 째려보라고도 했다. 전주 시내에 있는 고등학교는 시골 중학교 등굣길과는 다르다더니, 그날 그렇게 바람이 느리게 불던 그날 말이다. 주택가 골목길로 접어들자 이른 시간부터 여고생을 맞이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바람을 막 집어넣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흔들리는 불법 입간판과 같았다. 좁은 길을 채운 거대하고 불편한 간판을 기어이 쳐다볼 수밖에 없듯, 그날 나는 그를 보았다.

 

‘아이 씨, 왜 아침부터 옷을 벗고 난리야.’

 

그 불법 입간판 같은 사람은 5월의 아침 바람을 즐기고 있었다. 하필 여학생이 지나갈 때, 옷을 내림으로써 더욱 시원하게 희열을 느꼈을 테다. 줄행랑치는 내 뒷모습을 바라보며 최고의 영업맨이라도 된 듯 입꼬리를 올린 채, 한껏 비대칭 얼굴을 만들었겠지. 방정맞은 동네 개들은 인도에 모닝 똥을 쌌으니, 난 기어이 밟고 말았다. 놀라서 뛰다가 똥 밟는 건 한 번으로 족하다. 내성이란 병원체에만 생기는 게 아니었다. 우리 학교 옆에는 공원이 있었다. 학교 3층과 맞먹은 높이에 있는 공원 위로 누군가 올라가 있다. 그리고 여고생을 향해서 그는 옷을 내리니, 선배들은 굳이 3층까지 뛰어올라서 그와 마주하며 함성을 질렀다. 선배들 틈에 끼어서 낯선 이성의 몸을 볼 기회가 있었으나, 내겐 내성이 부족했다. 내성이 강해진 선배들 때문인지 그는 공원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열일곱 살의 오월, 이제 버스 계단까지 인파로 빽빽한 등교 버스에도 아무렇지 않다. 거기다가 6일 중 하루쯤은 지각하기로 결심한 사람처럼 정기적으로 버스를 놓친다. 의자도 남아돌고, 바깥 경치도 여유롭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대가를 치러야 했다. 버스에서 내린 순간부터 오르막 등굣길을 뛰고 나면, 교문 입구에는 수첩을 들고 있는 선도부 언니들을 만나는데, 나를 무지 알고 싶어 했다. 정기적으로 만나면서도 꼭 이름을 물어본다. 어른이 되어서 알았다. 나를 그녀들에게 밝히고 싶지 않다면 더 늦게 학교에 가라.

 

집에 가는 길, 스테이플러로 꾹 박아둔 회수권 중 한 장을 뜯었다. 내 어깨는 아침보다 쳐졌는지 자꾸만 가방은 흘러내렸다. 작년만 해도 나는 하교 시간이 좋았다. 양옆으로 친구들을 이끌고 집으로 데려가 라면을 끓여먹으며 시시덕거리던 그 시간이 자꾸만 떠오른다. 버스에 앉아서 턱을 괴고 밖을 바라본다. 고교 시절을 보낼 고모네 집 가는 길, 뻑뻑한 버스 창문에 힘을 주어 열어본다. 건물 사이를 헤집고 다니던 바람은 눈치도 빠르지. 내가 자신을 부른 이유를 알아차렸다. 내 눈가를 훔쳐낸다, 바람이. 어느 집 마당 안, 목련은 땀 먹은 적삼처럼 누런 때깔이다. 교복에도 땀이 배어나는 오월이었다.

 

고모네 집을 가는 길은 또 오르막길이다. 바삐 가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해 천천히 길을 오른다. 바람은 계절마다 다른 속도를 낸다. 한 뼘만큼 위로 아래로 오르내리며 아다지오로 부는 바람, 혀에 올린 솜사탕을 씹지 않듯, 바람은 봄을 느리게 음미한다. 나는 바람 안에 있다. 이온음료 광고 속 주인공처럼 바람이 불어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구도 돌보지 않는 공터에 라일락이 꽃을 피워냈다.


 

학교 가는 길, 회수권 한 장을 뜯어낸다. 내 뒤통수를 바라보며 고모는 잔소리를 해댄다.

“야, 팔자걸음으로 걷지 말랬지. 반듯하게 예쁘게 걸으라고.”

아, 잔소리가 그리웠던 건가. 완벽하지 않은 내가 뿌듯하다. 빽빽한 버스 안, 서로의 정수리를 볼뿐 모두 낯선 사이다. 나만 모르는 세상에 떨어진 줄 알았는데...... 일주일에 한 번 지각하는 날, 여전히 내 존재를 궁금해하는 그녀들에겐 1학년 5반 17번이라고 알려줬다. 난 다시 느긋해질 거야. 생활기록부에서 ‘가’ 대신 ‘나’를 얻더라도 말이야.

 

아무도 관심 주지 않는 공터, 쓰다 버린 녹슨 기계가 있는 그 자리에 라일락이 있다. 자꾸만 아다지오 바람이 나를 가두는 바람에 라일락 향이 내 몸을 또한 가둔다. 내 교복이 분홍 원피스로 되는 상상을 한다. 시골에 널린 민들레 대신 공터에 핀 라일락 한 그루, 아다지오 바람에 라일락 향이 나를 가두면 기꺼이 그 그물 속에 갇히거나 머물고 말았다.

 

1993년 5월 某일, 촌女ㄴ 도시 적응기


에세이를 바탕으로 노랫말을 써 봤다.


<노랫말>


촌女ㄴ‘S 도시 생활

 

아다지오 바람이 부는 오월이야

바람은 꽃을 지휘해, 풍선간판은 어지럽지.

학교 가는 빠른 그 길을 조심해.

여고 가는 그 길을 조심해.

풍선간판 같은 그자는 네 발자국 소리를 기다려.

 

“베이비, 안녀~엉”

그 남자가 익숙한 풍경에 묻혀.

 

꽃잎 돋는 열일곱 살이야

빽빽한 버스가 너무 지겨워, 하루쯤은 차를 놓치지.

학교 가는 오르막길을 뛰어도 소용없어.

교문 앞에는 선도부 그녀들이 널 기다려.

 

“몇 학년 몇 반이야?”

 

빡빡한 버스 창을 열어 봐.

민들레를 그리워하는 네 눈물

엄마의 잔소리가 빈 네 귓가

네게 부는 아다지오 바람을 불러봐.

 

아다지오 바람 안에 라일락 향이 나를 가두면

 안에 기꺼이 머물던 나의 오월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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