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숫대야

아직도 발표는 심장을 나대게 해

by 게으른 산책가


나는 내성적인 아이다. 눈은 움직이는 고개를 따라갈 뿐이다. 묵직하게 움직이는 고개는 소리에 반응했을 것이다. 보이는 것에 말을 걸었다. 나만 아는 묵음의 말 걸기. 아직도 선명한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여덟 살, 여름 방학을 보내고 선생님은 방학 동안 무얼 했는지 발표를 시켰다. 아마도 반 전체를 시켰고, 피할 수 없는 발표에 난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3 분단 일곱째 줄쯤 앉았으니, 내 순서는 빠르지 않았을 터. 친구들의 발표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직 어린 이들의 발표는 '지나치게' 날것이라 웃음이 터졌을 텐데, 교실에는 오로지 오태현 선생님과 내가 독대한 장면으로만 편집되어 떠오른다.

물론 여름 방학은 물어보나 마나 집 앞 냇가에서 보냈다. 뜨지 않을 게 뻔한 양은 세숫대야에 앉아서 뱃놀이도 도전했다. 그대로 가라앉아도 무섭지 않을 정도로 배짱이 두둑한 여덟 살이었다. 일척(一尺) 정도 떨어진 자리에서 엄마는 열심히 빨래방망이를 두드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양은 세숫대야에 담긴 빨래를 물가에 부어서 돌로 눌러놨겠지. 난 그대로 침몰하는 양은대야를 이번엔 뒤집어서 튜브대용이 되는지 실험했다. 완벽한 수평을 이루지 못한다면 금세 뒤집어지고 마는 고난도의 실험이었으므로 엄마 목소리를 단박에 듣기 힘들다.

“이제 집에 가자. 대야 이리 줘라.”

물에서 나온 사 척(尺) 단신은 빤스 바람이었다. 등짝은 벌겋게 달아올라도 절대 따갑다고 말하지 않았다. 내일 또 엄마를 따라와서 나머지 실험을 해야 하니깐. 제법 몰두했던 나의 흥미진진한 연구를 그대로 말하면 되는데.

“자, 우리 00 이는 방학 동안 무얼 했는지 말해볼까?”

개신교에서 말하는 방언이 내게 터졌다, 하필 그날 말이다. 머릿속에서 하는 말과 내 입에서 터진 말은 전혀 다른 말이었고, 사정없이 떨고 있는 것은 내 몸이 아닌 내 머리였으리라. 차라리 입을 닫았으면 좋았을 것을. 차라리 ‘고집은 지독히 세며, 말수가 없는 아이’였으면 편했을 것을.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 내성적이지만 착실한 아이. 이건 착실하게 내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었다.

“00이 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지?”

오태현 선생님의 미간이 좁아졌다. 아, 화장실 가고 싶다.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말도 못 하는 주제에 화장실 가고 싶다. 3 분단 일곱째 줄까지 오는데 선생님 목소리는 쉬었다. 사 척 단신은 더 작은 콩벌레가 되었다. 다행히 울지 않는다. 해는 점점 뉘어져 갔으니 땅과 가까워지고, 교무실에 달린 무거운 종은 내 방언을 들은 신이었으리라. 오, 종이시여.

“선생님, 저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탄 콩처럼 까만 이유가 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고모, 그리고 세 남매 옷을 빠느라 매일 빨래터에 가는 엄마를 따라다녔어요. 양은 세숫대야로 부력을 실험했으나 등짝만 벌겋게 타고 말았어요. 부록으로 물 위를 뛰어가는 실험도 했지요. 그대로 가라앉더군요. 그러다가 잠수를 배웠어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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