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온 해변의 추억
비 오는 날, 슬픔에 젖은 여자를 보면 절절한 사연을 지어내고 만다. 어젯밤, 우리 가족밖에 없는 이 숙소에서 난 별의별 사연을 생각해내고 말았다. 다른 말로 밤샜다.
자정이 넘은 시간, 신랑 전화기가 울린다.
“여보세요! 네, 네.”
그리고 전화를 끊는 걸 보니, 잘못 걸린 전화로 추측했다.
“잘못 걸었다네.”
끊은 전화를 두고 쌍욕을 날릴 법도 했지만, 신랑은 의아하다는(나 혼자 오해하며) 투로 말할 때부터 난 별의별 사연을 상상하기 시작한 거다.
‘여기 사장이 지나치게 친절했어. 뭔가 우리를 넘긴 기분이 든단 말이지. 누군가에게 우리 전화번호를 넘겼을 거야. 혹시 연쇄??? 전화 너머 목소리 상태만 듣고도 우리가 무얼 한지 알아차렸을 거야. 전문가니까. 티브이 소리를 잡아냈겠지. 그럼 몇 시쯤 방문할까.’
허름한 건물에 오가는 손님도 없어서 기분 좋을 일도 없는데 숙소 주인은 친절했다. 뭐가 그리 좋아요? 친절해도 문제가 될 때가 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두 시다. 낡은 냉장고 소리와 다른 소리가 교차해서 또 다른 상상 속 물체가 나타났다. 그건 오토바이다. 드디어 그놈들이 온 건가. 곧 연기가 날지 모른다. 난 암막 커튼 사이로 붉은빛이 나지는 않는지 예의주시했다. 복도에는 울렁거리는 방향제 냄새가 가득했지만 연기 냄새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다. 난 시뮬레이션을 가동 중이다. 그래, 내가 가족을 지키자. 연기가 스며들라치면 수건에 잔뜩 물을 묻히고 문틈을 막고서 미리 봐둔 완강기로 둘째 딸부터 내려줘야 한다. 난 파자마 위에 바지부터 얼른 입자. 추운 건 힘드니까. 그다음엔 누가 내려가지? 가위바위보를 해? 내가 마지막에 내려가고 싶지만 분명 신랑이 나 먼저 내려가라고 하겠지. 그럼 어쩔 수 없다. 신랑은 고집이 세니까, 들어줘야지. 시간이 없잖아.
그렇게 두어 시간 자고 아침 6시에 깼다. 밤새 오토바이가 왔다고 착각한 건 아무래도 냉장고 소리+신랑 코 고는 소리+ 바람 소리가 만든 효과음 같다. 다행히 우리 가족은 살아남았다.
누워서 천장을 찍어본다. 사장님은 출근했을까. 손님도 없는 5층짜리 펜션 운영하면서 너무 친절하지 맙시다. 무서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