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향기

by 게으른 산책가

[작년 이맘때]

고등학교 친구들과 2박 3일 거제도 여행을 다녀왔다. 코로나 이후, 네 명이 모이는 것도 처음, 2박 3일을 같이 있기도 처음이다.


최근에 예능에서 어떤 연예인이 ‘축지법’을 시범을 보였는데 신난 어린이라면 누구나 해봤던 뜀박질이었다. 우리는 그걸 따라 해보기로 했다. 축지법으로 달리기를 겨루었는데, 나는 어렸을 때 많이 해봤기에 매우 쉬웠다. 학동 몽돌 해변의 관광객 속에서 창피함도 모르고 1등을 차지하고서 얼마나 웃었던가.


어색할 법한 몇 년의 공백까지 축지법처럼 축시법이라도 부린 걸까. 내가 잊은 추억을 다른 친구는 봉인한 채 갖고 있고, 나 또한 친구가 잊은 추억을 품고 있으니, 잊으려던 흑역사는 자꾸만 되돌리기 버튼을 누른다.


즐거운 여행이었다, 그러나 여행은 낯섦 투성이 아니겠는가. 내가 사는 동네에서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도 없고, 재잘대는 참새 소리도 없었다. 대신 독창을 즐기는 새가 있었고, 갈매기 소리가 흔한 곳이었다. 파도 소리와 짠내가 있었다. 우리가 먹은 음식은 익숙한 것을 거부한 것 투성이었다. 새로운 것에 오감을 열어서 현지인 못지않은 여행자가 되리라.


오늘은 신생아처럼 잠을 잤다. 오후 네 시에 겨우 일어나서 산책을 나섰다. 매번 걷던 보폭과 속도, 그리고 눈여겨보던 것들을 다시 바라봤다. 지겹지 않다. 길에서 만난 길고양이는 나를 피하지 않았다. 다만 내 걸음걸이를 주시할 뿐이다. 여행 가기 전날처럼 나는 걸었다, 내 산책길을. 길까지 나와서 짖어대는 강아지에겐 ‘개과천선’ 같은 변화가 있길 바라며 무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내일도 짖어댈 녀석이란 걸 알고 있다. 난 그들에게 매우 익숙하기 때문이다.


오감을 예민하게 가동할 필요가 없다. 오디가 익어가는 변화에 오월도 익어감을 알아주면 되고, 개구리 합창이 극에 달하는 지금은 모내기가 끝났다는 뜻이다.


어디선가 희미하게 다가오는 여름 향기를 느끼고 편의점 가는 길은 그해 첫여름 산책이다. 그날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중간에 편의점으로 휘익 방향을 트는 일 역시, 상상만으로도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그해 첫여름 나들이다. 여름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그 발걸음이 좋아서다. 그 발걸음 끝에 시원한 맥주가 있어서다.


[아무튼, 여름, 김신회]


저녁에 김치를 넣은 라면을 끓였다. 막내는 밖에서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 때문인지, 간간이 불어대는 바람이 시원해선지 그런 말을 했다.


“엄마, 이 라면을 먹으니까, 어렸을 때 냇가에서 물놀이하고 먹었던 라면 맛이 떠올라.”


오늘 저녁, 창문을 열어뒀다. 개구리 소리는 밤새 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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