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 달 동안 시골은 차갑다. 겨울치고 따뜻한 날씨라 해도 내 눈은 차갑다. 바스락거리며 뒹굴던 나뭇잎은 냉기를 먹어서 잔뜩 오그라들었다. 차라리 눈으로 산을 덮어버리면 내 눈은 따뜻할 텐데. 도저히 살아날 것 같지 않는, 네 면의 산을 바라보면 너무 춥다. 차라리 도시의 높은 건물로 산을 가렸으면 좋겠다. 마을 이장님은 어느 노인의 부고 소식을 전했다. 사람의 명도 자연과 닮았다. 겨우 연명하던 어느 노인은 추운 겨울이 되면 할 만큼 했다며 아주 긴 마지막 숨을 토해내고 만다.
몇 해째 겪는 겨울인데, 갈수록 겨울은 비호감이다. 난 몰랐다. 겨울이 죽음과 가깝다는 것을. 이장님이 전하는 부고 소식이 겨울에 몰려있다는 것도 이제야 깨달았다. 아이였던 때는 사계여서 고루 즐거웠다지만 아이에서 한참이 멀어진 지금, 겨울이 싫다. 추워서 꼼짝하지 않는 것도 싫고, 간경화 환자 같은 산(지형인 산) 빛이 무섭다.
그래서 봄을 기다렸구나. 무거운 이불 탓만은 아니었다. 살아있는 것들을 보고 싶어서 잠들어 있던 운동복을 꺼냈다. 개켜진 데로 눌려있던 운동복은 주름이 반듯하다. 유연하지 않은 내 관절처럼.
봄비에 젖은 나무들은 바짝 마른 몸에 윤기를 내려고 입질을 한다. 반짝이는 여린 감잎을 보았다. 가여운 연둣잎이 안쓰러워 만지지도 못한다. 주근깨가 가득한 내 얼굴이라도 감히 해를 마주하고 싶은 봄. 한때는 이런 봄이 따분했다. 잎 하나가 진초록이 되는 데 며칠이 걸린다는 게 따분했다. 여린 감잎 하나에 감동하는 건, 겨울이 '죽은 계절'이라고 느낄 때부터다. 봄은 절대 따분하고 느려터진 시절이 아니다. 지나고 보면 나의 봄 같은 어린 시절이 애틋하고 짧았노라 추억하는 걸 보면 말이다.
어느 꽃이 피는지 눈여겨봤다. 무슨 향인지 실컷 맡았다. 어디에서 바람이 불어오는지 머리칼을 날려보았다. 봄은 허투루 보내서는 안 된다. 개구리가 울어댄 지 벌써 며칠이 지났다. 바람에는 꽃 냄새보다 진초록 냄새를 데려오고 있다. 장마가 시작되려는지 베란다 창문이 거세게 흔들렸다. 봄을 더 사랑할 걸 그랬나?
밤마다 개구리는 쉬지 않고 울어댄다. 창문이 바람에 흔들려서 문을 닫았다. 그리고 거실 문도 닫았다. 더 이상 개구리 소리는 집안으로 들어오질 못한다. 대신 냉장고가 방구석에 웅크린 채 쉴 새 없이 울어댄다. 식힌 보릿물을 물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둔다. 이제 초여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