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에 의한’에 감사하며

건강 검진 결과가 나왔다

by 게으른 산책가

10여 년 만에 위 내시경을 받았다. 검사 전, 의사 선생님에게 질문했다.

“저 10년 전엔 검사받을 때는 수면이 들지 않았는데, 수면이 잘 들지 걱정이에요.”

“걱정 마세요. 10년 전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혈관을 타고 들어오는 차가운 프로포폴이 느껴졌다. 검사받는 순간을 기억하려고 집중했다. 오랜만에 해보는 위내시경에 대해 무용담 마냥 기억하려 했다. 프로포폴이 혈관을 타고 한 뼘쯤 지났을까, 기다리던 암전이 왔다. 그리고 한 시간 뒤, 아무도 없는 검사실에서 일어났다. 점심시간이라 다들 밥 먹으러 갔고, 난 멋진 위 사진을 기대하며 한 시간을 잔 것이다. 멀쩡한 정신과 다르게 어눌한 발음과 몸짓으로 간호사를 찾아 나섰다.

“일어나셨어요? 가정의학과 선생님에게 검사 결과 듣고 오세요.”

자석 끝에 붙은 수많은 철가루처럼 건강검진 대상자들은 한 해 끄트머리에 병원으로 몰렸다. 그럼에도 의사 선생님은 친절하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혹은 개원한 날에 맞이하는 첫 손님을 대하듯 친절했다.

“만성 위염이 있으시네요. 검사받는 동안 잠들지 못하셔서 프로포폴은 두 번 맞으셨고요. 원래 마른 분들이 그래요. 다른 것은 없습니다. 궁금한 거 있으신가요?”

“아, 두 번이나.. 프로포폴을... 맞았어요?.. 만성.. 위염이요?”

난 잠에서 확실히 깨지 못해서 단어들이 들러붙지 못하고 뚝뚝 떨어졌다. 만성 위염이지만 약 처방이 없으니, 10년 동안 위를 혹사하진 않았다고 위로했다.

10여 년 전 내 위는 깨끗했으나, 다른 곳에 문제가 있었다. 폐를 절제할 정도면 큰 문제라고 할 수 있지? 그래선지 고작 국가 건강검진 결과지만 가족들은 내 건강에 관심이 많다. 당시에 큰 딸은 초3, 둘째 딸은 초2, 막내는 일곱 살이었으니 엄마 없는 한 달은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엄마의 부재가 여행이었다면 매일 전화해서 징징댔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병원에 있다. 어린 딸들은 징징대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에 대한 근심은 서서히 잊혀갔지만.

엊그제 건강 검진 결과지가 우편으로 왔다. 각자 방에 있던 아이들은 거실로 모여들었다. 병원에서 보낸 내 몸 성적표를 보는 아이들 눈빛에는 긴장감이 서렸다. 입가에 주름이 늘었듯 몸 안에도 변화가 있는 건 당연한데 초연할 수 없다.

“만성 위축성 위염?”

난 방으로 들어갔다. 휴대폰으로 검색을 하고 눈동자는 빠르게 글을 훑어냈다. 그리고 이내 편안한 단어를 찾아냈다. ‘노화에 의한’ 이 말. 꼬마 아이들이 철없는 행동을 할 때, ‘아직 어려서 그래.’ 이 말과 동격으로 느껴졌다.

거실로 나가서 혼잣말 치고 크게 말했다.

“앞으로 맥주 안 마실 거야. 매운 것도 안 먹어야지.”

막내는 내 혼잣말에 반색했다. 만성 위축성 위염쯤은 별게 아니라고, 나는 표정으로 드러냈던 것도 같다.

“엄마, 오! 진짜 맥주 안 마실 거야?”

“응.”

인간에게 영생은 저주일 수도 있다. 나이 듦은 당연하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며, 푸르름은 결국 노쇠함으로 간다는 걸 이미 알아버렸다. 헐벗은 나무를 바라봤다. 아주 단아했다. 오래전엔 초라하다고 했던 나무는 이젠 정갈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흙을 바라봤다. 생명을 잉태하고 혹은 생명을 수렴하는 흙, 그 속에서 수렴되는 나를 떠올린다. 요절이 아닌, 노화에 의한 내 인생의 수렴. 그럼 난 행복할 것 같다.

그리고 더 좋은 것 하나.

지금이 소중하다는 걸 알게 해주는 글쓰기가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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