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오전의 끄트머리
마음이 편해졌다.
매일 걷지 말자, 라는 말을 입을 다문채 가슴속에다 외쳤다. 매일 걷지 않아도 돼, 가 아닌 걷지 말자이다. 그래서 마음이 편해졌다.
날씨가 좋은 날, 집에 있어도 후회가 되지 않고 싶었다. 이런 날에 집 청소가 어때서? 그래서 이른 시간에 버릴 수세미로 개수대를 닦고, 그 수세미를 화장실 바닥에 턱, 던졌다. 세제를 묻혀서 눈이 잘 가지 않는 모서리를 닦아냈다. 습기와 결탁한 때들, 그리고 나, 술래잡기를 했다.
‘내가 여기를 닦아낼지는 몰랐지? 흐흐’
버리려던 수세미가 제법 쓸 만해서 몇 번 더 써야겠다.
해가 따사로운 9시, 하지만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다. 산책가가 아닌 ‘청소 수행 중’인 수행가로 여기니 닦아내는 때가 내 마음속에 낀 때 같아서, 청소 수행은 ‘개운’이라는 감정을 주었다.
고무장갑을 다시 꼈다. 삶아서 개켜둔 걸레에 물을 적셔 꾹 짰다. 사람들은 ‘걸레’에게 정당한 의미를 매기지 않았다. 대충 세탁한 여름날 운동복보다 우리 집 걸레는 더 맑은 냄새가 나는데. 삶지 않은 부직포 행주보다 더 깨끗한데, 더러운 하류 단어 취급이나 하다니.
빳빳한 걸레는 물을 흡수하고 이제 먼지들을 품었다. 가운데 손가락으로 욕을 하지 말아라. 그것 또한 걸레질에서 리드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각진 모서리에서 가운데 손가락은 먼지를 빼낸다. 그러면 새끼손가락은 먼지를 휩쓸고 걸레에서 나가지 못하도록 포위한다. 칫솔질로 이 사이에 낀 고기가 쏙 빠진 기분과 비슷하다.
수압 센 샤워기를 걸레 위에 드리운다. 수십 개의 물줄기는 걸레에 붙은 먼지를 수챗구멍으로 안내한다.
청소 수행한 사람은 청소 후, 하는 일이 있다. 괜히 모서리를 바라보는 것, 그리고 흐뭇해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