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루틴

by 게으른 산책가


팔월 첫 주는 공식적으로 가장 더운 날일 것이다. 내가 다니는 학습지 회사는 언제나 팔월 첫 주를 여름휴가로 고정되어 왔고, 한적한 시골 도로가 가장 붐빌 때도 그때쯤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보편적인 혹서 주간, 아빠에겐 사적인 혹서 酒간이다. 하긴 아빠에게 따로 술과 멀 때는 드물다. 술로 속병이 심하게 날 때면 스스로 금주를 다짐했다. 나는 그 다짐이 쉬이 바래질 걸 알지만 단 며칠이라도 안 먹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금주 다짐이 깨지는 데는 몇 가지 절차가 있다. 칡과 등나무처럼 할머니와 아빠는 갈등을 겪었다. 각자 주장을 들어보면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 둘이 만나면 지구 몇 바퀴를 돌아도 만나지 않는다는 평행선이 되고 만다. 어떤 날은 그 싸움이 비화될 때가 있다. 혈연관계로 최측근끼리 편이 나뉘게 되는 것이다. 할머니와 고모, 아빠와 그 자식들. 난 가운데에서 중립을 지키고 싶었으나 아빠와 나는 고작 1촌 사이다. 그게 뭔지 슬쩍 아빠 편을 들고 싶어 진다. 그래서 자식을 키우나? 암튼 아빠는 전쟁의 종지부를 찍고 싶을 때, 무기를 대동한다. 이미 화는 火가 되었으니 기름만 들이부으면 된다. 그게 술이었으리라.


화르르르 타오르면 화산재는 여기저기 날려서 푸르른 하늘도 가리고, 정갈한 마당에도 날린다. 우중충한 잿빛이 될 때, 다시 아빠는 갈지자로 신작로를 활보하며 나훈아의 노래를 아무 때나 불러댄다. 승자가 부르는 개선가인가, 어디에도 피할 수 없는 초나라 군사의 사면초가인가. 구슬프게 부를 때면 사면초가일 것이고, 친구를 데리고 와서 크게 웃어댄다면 개선가일까? 뭐, 내 인생에 큰 변화는 없으니 신경을 쓰지 말자 했다. 어쩌다 모자지간은 평행선을 긋게 되었을까.


혹서 酒간에는 우리 집 분위기가 예상된다. 도화선은 도처에 있다. 내 촉은 지뢰 탐지기 못지않다. 할머니를 데리고 갱변(강변 사투리)으로 나갔다. 한참을 같이 걷다가 집에 들어가면 아빠는 적군이 없으니 잠이 들고 말았으리라. 엄마와 아빠 싸움을 본 기억은 드물다. 오히려 엄마는 그녀의 시어머니와 남편 싸움에 새우등 터질 격이었다. 하긴 엄마와는 싸울 거리가 없다. 애초에 불만이란 걸 드러내지 않으니까. 난 엄마에게 혼나 본 기억이 없다.


내게는 오빠와 남동생이 있다. 그들은 아빠에 대해 각자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 오빠는 나와 비슷한 ‘온순한’듯한데 한편으론 대쪽 같은 구석도 있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는 편인데, 우리 집을 평가하기를 ‘콩가루’ 집안이라고 했다. 콩가루에 버무려 산다고 생각하니 나는 화가 나서 발끈했다. 하지만 아니라고 부정할만한 근거가 없다. 남동생은 나보다 철이 빨리 들었는데 그건 아마도 아빠 덕분일 것이다. 사춘기 때, 아빠에게 하도 혼나서 상처도 받았지만, 철까지 들어버린 것이다. 갓 담은 김치에 시큼한 걸 넣으면 빨리 익듯이, 아빠는 남동생에게 강제로 시큼한 무언가를 버무린 것이다.


곧 아빠의 루틴인 혹서 酒간이 다가온다. 비록 그는 산 중턱, 작은 평수를 차지하고 누워있지만 난 자꾸만 그가 떠오른다, 팔월 첫 주가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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