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두기 : 한 가지의 공통된 주제나 소재를 중심으로 독립된 짧은 이야기 세 편을 엮어내었다.
1. 먹고사는 것에 9할을 걸던 엄마는 내 옆에 없다. 하찮아 보였던 그 ‘9할’, 그녀가 그토록 중요하게 밀어붙이던 먹고사는 것들. 정지(부엌 사투리) 간도 덩달아 죽었다. 물기 마른 밥그릇과 국그릇, 엄마가 없는 정지간의 주인은 이제부터 나다.
“아빠, 미역국에 풋고추 넣어도 돼요?”
“그래라.”
아빠는 먹는 것에 자포자기한 것이 틀림없다. 요리의 조화를 모르는 스무 살 나에게 아빠는 영혼 없는 대답만 했다. 미역국을 먹는 이유는 자고로 자극을 받지 않고 편안하게 먹고 싶은 이유일 진대, 눈썰미 없는 스무 살은 매운 걸 좋아하는 아빠의 식성만 기억해냈다. 미역국에 고추라니. ‘눈썰미가 없다’는 자평은 그나마 호평이다. 엄마가 하는 일에 관심을 주지 않던 ‘무심한 딸’이 맞겠다. 처음 들어본 식칼, 손에는 힘이 들어간다. 손뿐만 아니라, 눈에도 힘이 잔뜩 들어간다. 감자 자르는 게 이토록 힘든 일이었던가.
엄마의 공사다망함이 정지되자, 각자 역할이 흐릿해졌다. 아니, 혼돈일 수도 있다. ‘엄마 없음’은 밥통에서 하루 세끼만 덜어진 게 아니었다. 유족이 되어버린 나는 미래보다 하루를 생각하는 하루살이가 되었다. 뚜렷한 괘선을 그릴 수 없었다. 점괘는 아주 희미했다.
2. 스무세 살이 된 그해 겨울은 무채색이다. 그래서 내 마음도 잿빛일까? 퇴근길에는 사무실 앞에 있는 비디오방에 들르는 게 일과다. 신간 영화는 궁금하지 않았다. 나의 몇 년 전을 그리워하듯 오래된 영화만을 고른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
국내 영화보다 외국 영화, 오락성보단 작품성 있는 것으로 골랐다. 영화 밖에서 생각 없이 겉돌 요량이었다. 무덤덤한 표정으로 영화를 보고 있으면, 세상 사람들 모두가 무덤덤하게 살고 있단 착각이 드니까. 가족 드라마 따위는 보지 않았다.
“아빠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차조심하고.”
두 명의 삼촌과 엄마를 앗아간 자동차는 우리 집에서 저승사자로 받아들였다. 도로가에 그어진 실선 안으로 절대 들어가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너도 실선을 넘어오지 마.
눈이 날렸다. 소복소복 쌓일 눈이었다. 우체국 앞을 지날 때, 누군가 화다닥 뛰어온다. 그리고 내가 걸어갈 우체국 앞, 눈을 쓸기 시작했다. 제복을 입은 사람이다. 며칠 전, 사무실에서 인사를 받은 신임 순경이었다.
“안녕하세요. 출근하세요?”
“네에...”
추운 겨울이 마뜩잖은데 그는 겨울을 좋아하는 건지 빗자루를 들고 신나 보였다. 아침부터 힘을 낭비하지 말라고 충고해주고 싶었다.
명절 전에는 금융기관 순찰이 자주 있다. 그는 명절이 끝난 뒤에도 내가 근무하는 금융기관에 순찰을 자주 나왔다. 순찰 업무 치고는 보잘것없는 내 사생활을 캐물었다. 하지만 나는 우리 집 전화번호까지 알려준 적은 없었다.
“여보세요? 전 파출소 근무하는 정순경인데요. 잠시 만날 수 있을까요?”
“예?”
난 목소리가 떨렸다. 설레서 떨린 게 아니라, 이런 상황에 대처할 무언가가 떠오르지 않아서다. 쓸데없이 솔직하게 말했다.
“저희 집은 아홉 시 이후로 집 밖을 나갈 수 없습니다. 그럼 이만.”
그리고 이후로 그는 끊임없는 나를 향한 줄 긋기를 시도했다. 잿빛이 편안해서 그 색에 묻혀 살라했는데 자꾸만 여러 색을 들이댔다. 그는 내게 묻은 재를 자꾸만 불어냈다. 후우, 노란 웃음이 나려 했다가 후우, 초록 수줍음이 나려 했다.
3. 설날 전날이다. 형님들과 나는 전우애로 똘똘 뭉쳤다. 코털까지 기름 냄새로 절어있는 날이니 말해 뭐해. 비누거품으로 기름 코팅막을 벗겨내고 셋이서 팔짱 낀 채 롯데 백화점으로 향했다. 요즘은 최신 영화가 좋았다. 구닥다리 오래된 영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영화관 앞에서 다른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구정에 맞게 구색을 갖춘 백화점의 소소한 이벤트였다. 무료는 아니니, 틈새 공략과 비슷하다. 한 사람당 만원이었다.
“형님, 우리 재미로 사주나 볼까요?”
“그래 시간도 남았고 한번 가보자.”
처음으로 해보는 사주풀이는 호기심뿐만 아니라 설렘 이상에 떨림이 있었다.
“음,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네요?”
“전업주부인데요?”
“운이 좋은 기운으로 갔다면 교사였을 텐데, 그렇지 못했나 보네요. 23살부터 인생이 풀리는데요?”
“아, 그때라면......”
바로 그를 만날 때가 23살이었다. 내 안에 가득한 잿 덩이를 여러 가지 색을 입힐 요량으로 후후 불어주던 그를 만난 그때가 23살이었다.
내 점괘(占卦)는 놀라웠다. 전업주부였으나 몇 년 뒤, 초등학교 돌봄 교사와 학습지 교사가 되어 지겹도록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뿐인가. 오랜만에 만난 내 친구들은 놀랐다.
“너 왜 이렇게 말이 많아졌냐? 되게 시끄러워졌네.”
‘엄마 없음’을 말없이 이겨내고, 미역국에 고추를 넣지도 않으며, 무채색이 화려한 색으로 바뀌는 그 여정에 바로 정순경이 있다. 점괘가 선명해졌다. 도로의 실선을 넘어가도 무섭지 않다.
이제 난 시끄러운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