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다는 말은 모두 거짓말
후회한다는 말은 말지. 울지도 말았어야지. 아빠는 그제야 진실을 말했다. 죽고 싶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코미디언 이주일의 금연광고는 섬뜩했다. 폐암으로 고인이 되기 전에 찍은 공익광고는 흡연자 350만 명이 금연하게 됐다. 유명한 의사는 흡연에 대한 지식을 나열하지만 경고는 지루하기만 하다. 이주일은 몇 마디 하지 않았다. “담배는 독약이다.” 죽음이 임박하기 전, 그의 말은 섬뜩했다.
동그란 얼굴에 눈, 코, 입이 가까이 모여 있다. 키는 고작 160 센티미터, 활짝 웃는 모습은 장난기가 있어서 귀여운 얼굴이다. 이게 아빠의 인상착의인데, 아빠는 생김새와 달리 사나운 성격이다. 눈치가 빠르며 손익계산서를 산출할 때 그의 얼굴은 달라진다. 눈은 정면을 응시하지 않는다. 상대를 꿰뚫어 보는 느낌으로 눈은 가늘고 옆으로 보는, 일명 ‘째려’ 본다. 입은 그냥 다물면 안 되는지 입 꼬리에 힘을 주어서 무슨 말을 할 모양새다. 난 그때부터 생각했다. 차라리 손해 보는 인생을 살겠다고. 그는 가난을 떨치기 위해서 화난 소가 됐다. 할당량 이상을 해내야 하는 소는 갈수록 사나워졌다. 붉은 수건을 펄럭거릴라 치면 싸움소처럼 바로 달려들었다.
그는 싸움에는 어디에서도 지지 않았는데 싸울수록 술이 늘었다. 그리고 술을 마시면 꼭 토해내는 눈물, 흐느낌, 난 그게 그렇게 지겨웠다. 아빠 편은 아무도 없었다. 아빠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가장으로 살았다. 무거운 아령을 들어 올린 채 꼼짝 못 하는, 계속 그대로 들지 않는다면 그 아령은 피붙이에게 내리칠 거라는 협박이라도 받은 사람 같았다. 그 아령을 나눠 들어도 될 만큼 자식이 컸어도 난 그것을 건네받지 않았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물러 터진 순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걸까.
내 딸이 생기면서 아빠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50대 중반, 그제야 웃음이 늘어갔다. 무거운 아령을 드느라 굽어진 팔을 살필 수 있는 때가 온 것이다. 저릿한 통증이 올 때면 술의 힘을 빌리는 게 흠이었지만, 예전보다 확실히 많이 웃었다. 나이 든 얼굴이지만, 여전히 장난기가 많았다. 손녀들을 예뻐하는 방법도 어찌나 짓궂던가. 막내를 부른다. 그리고 틀니를 빼내니 딸은 기겁을 하고 도망간다. 껄껄껄, 신나게 웃는 60대 초반의 아빠. 막내는 어느덧 아홉 살, 할아버지에게 춤을 알려준다. 한참 유행이던 싸이 춤이다. 할아버지는 열심히 따라 한다. 육십 대 중반이다. 그리고 어느 가을날, 아빠는 간암 말기를 알게 됐다.
“술을 조금만 마실걸 그랬어.”
그런 모습을 내게 보이지 말지 그랬어.
열한 살에 할아버지는 첫 번 째 망자, 스무 살 때 엄마는 두 번째 망자, 할머니는 내 나이가 기억이 안 나지만 세 번째 망자, 그리고 아빠는 내 나이 삼십칠 세 때 네 번째 망자가 되었다. 막내는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게 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