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산책,

게으름을 끊게 하는 경고

by 게으른 산책가

잊고 있었던 요통이 느껴졌다. 물론 내 요통은 치료가 필요 없는 정도다. ‘고작 산책’으로 나았으니 말이다.


내가 산책을 ‘고작 산책’이라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최근에 남편은 볼링을 시작했다. 보기에는 핀만 맞추면 될 거 같지만, 열개의 핀을 모두 넘어뜨리려면 공은 가운데뿐만 아니라, 가장자리에도 보낼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볼링장을 다녀온 날이면 거실에서 ‘생쇼’를 한다. 볼링을 모르는 나에겐 ‘생쇼’ 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산책은 어떠한가. 산책하겠다는 마음만 먹으면 된다. 그래서 ‘고작 산책’이라고 했다.


일출이 늦어질 때쯤, 나는 자연에 순응하는 사람이 되었다. 알람에 연연하지 않았다. 선선한 공기와 어둑한 창 너머에 금세 길들여져서 열흘 가까이 아침산책을 걸렀다. 아마 ‘별 탈’이 없었다면 쭉, 느긋한 아침을 사는 게 내 인생의 낙인 것처럼 보냈겠지.


어제부터 허리가 아팠고, 무릎 통증도 덤으로 얹어졌다. 돌봄실 걸레질은 돌봄 교사 이래로 매일 하는 일이지만, 통증은 매일 있는 일이 아니었다. 모두 내 탓이다. 산책을 열흘 가까이하지 않으면, ‘통증 패키지’가 배달된다. 경고에서 퇴장 명령으로 바뀔까 걱정이 된 모양이다. 오늘 아침잠도 엄청 달달했는데, 일어나게 된 걸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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