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째 산책하지 않는 나에게 바치는 글

산책 좀 하자!

by 게으른 산책가

내가 산책 좀 한다고 누군가 “사람들은 왜 산책하는 겁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한 번에 간단히 말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가까운 거리도 차를 타고 가며 당신의 다리를 사랑한 나머지 소파에 올려두길 좋아한다면, 간단히 말해봤자 내 말을 흘려들을 것이 뻔하다. 조금이라도 산책에 관심이 있다면 내가 산책에 빠진 이유를 들어주길 바란다.


점심으로 밥을 비벼먹었다. 지인이 텃밭에서 키운 상추를 잔뜩 넣은 비빔밥은 지금이 제일 맛있는 때다. 봄 공기를 거스르지 않은 텃밭 상추는 공산품처럼 자란 하우스 상추와 비교가 안 된다. 하우스 상추는 상품으로써 다듬어져야 하니, 주인의 손길은 어제와 오늘이 같고 내일도 같을 것이다.


온실 속의 화초, 지겨운 화초의 삶이었다. 텃밭의 상추는 갓 시작한 연애처럼 변덕스러운 봄 날씨를 견뎌야 했다. 그래도 버텨낸 상추여, 너는 얇은 잎에 생채기 없이 잘도 견뎌냈구나.


산책을 왜 하는지 말하지 않고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난 산책을 하면서 그것들을 매일같이 지켜봤다. 새순이 나오고, 비를 맞고도 잎을 키우고, 뜨거운 햇살에도 주눅 들지 않았다. 산책이 그렇다. 간신히 잠을 쫓고서 어제의 길을 다시 걷지만, 그 길은 어제의 길과 다르다. 어제 만난 강아지는 내 뒤를 쫓아오며 짖어대더니, 오늘 만난 그 강아지는 멀찍이 떨어져서 소심하게 짖어댄다(강아지의 심경 변화는 내가 짖어대는 게, 더 개 같아서 그런가?). 봉오리만 보여주던 찔레는 기어이 꽃을 피우고 품고 있던 향을 한 움큼 나에게 던진다. 그리고 아카시아 향기와 찔레꽃 향기가 어우러지면, 난 기어이 내 마음대로 상상을 하고 만다. 그 길을 걷는 나는 앤이 된 것이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양치질을 했다. 반듯하게 내려 긋는 칫솔질로 이가 개운했다. 맑은 물로 헹구어내고, 거품이 빠진 칫솔로 다시 칫솔질을 했다.

산책이 그렇다. 당신은 몇 개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는가. 10년 산(사회생활로 얻은) 웃음과 10년 산 맞장구로 그럭저럭 지내는 당신의 사회생활도 하우스 상추와 다를 바 없다. 언젠간 지긋지긋하다고 고개를 내저을 때가 올 것이다.

그렇다고 ‘지긋지긋한’ 10년 산 페르소나를 버릴 것인가?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도구를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 감정 찌꺼기를 씻어내면 된다. 산책은 칫솔이 되어줄 것이다. 이 사이에 낀 음식물처럼 내 마음에 불편을 주는 감정을 쓱쓱 닦아 낸다.


알아들을 수 없는 새소리에 귀를 여는 것, 쌉싸름한 아침 공기가 머릿속 지우개가 된다는 것, 내 몸을 훑어간 바람은 땀구멍 털을 일으켜 세우는 것. 조금 서둘러 나선 산책 길은 자신에게 진심인 하루를 선물할 것이다. 고작 그것, 산책 때문에.


나 내일부터 산책할래!


나 돌아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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