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은 두고 나서다
구름 두께가 애매했다. 잿빛이긴 하나, 그 색에 익숙해지니 구름 없는 하늘에는 눈 부실 요즘이다. 그만큼 잿빛 하늘에 익숙해지고, 하늘색은 잿빛이었나 싶다.
걷는 코스를 바꾸기로 했다. 우선 다리는 각오를 해야 했다. 7분이면 오르는 코스지만 경사가 굉장한 곳이다. 느낌으론 경사도가 60도는 되지 않을까 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 25도 안팎이었는데, 체감 경사도는 심각하다. 우선 호흡이 달라지고, 두 번째로는 오르던 걸음을 멈추고 데굴데굴 굴러서 내려오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이런 코스를 추가한 까닭은 어제 산행에서 비롯됐다. 단련할 수 있는 코스가 있어서 다행이라며, 다음엔 함께 산행할 지인들에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
별 수 없이 집으로 향했다. 마음먹은 첫날인데, 비가 오니 씁쓸하다. 하지만 난 내일은 꼭 나만의 단련 코스를 밟으리라. 우산을 들고 나만의 ‘지루한 길’로 변경했다.
운동화 끈을 매지 않아서 크록스를 신고 나섰다. 긴 의자에 앉자 졸음이 눈으로 쏠렸다. 만약 산책을 나오지 않았다면 출근 전까지 잠만 잤을게 뻔하다. 잠이 부족한 게 아닐 텐데 월요일 오전은 게으름에 취해있다.
초록색 가운데에 박혀있는 붉은색이 곱다. 그리고 고추꽃은 요정 같다. 아래를 향해 피어있는 하얀 고추꽃을 눈여겨본 적이 있던가. 발레복을 입은 소녀 같다.
비는 사선으로 쏟아졌다. 내 바지는 앞면과 뒷면 색이 달라졌다. 앞은 짙고 뒤는 연한 색으로.
내일은 잿빛 하늘 정도만 보기를.
구름은 물을 짜내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