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과 나는 그것을 했다
일요일, 우리 가족은 (전주) 큰집으로 가기 전에 카페에 들렀다. 우연히 보드게임에 시선이 옮아갔다. 온통 숫자 천지인 보드게임이라 알고 싶지도 않았다. 누군가 ‘나이 들어서 그래.’ 이랬다면 발끈했을 것이다. 내게 강한 부정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루미 큐브], 초등학교에서는 중학년 이상이면 관심을 보이는 제법 난이도 있는 게임이다. 신랑은 딸들이 하자고 하면 거의 ‘예스’를 날리는 예스맨이다. 난 어깨너머로 배우기로 했다. 설명을 듣고 이해하는 건 너무 귀찮은 일이니까.
‘오호, 요거 되게 재밌네?’
“전주에 가면 루미큐브 사야겠다.”
카페에서 무려 3시간 동안 이 게임을 했는데도 물리지 않았다. 이제 시댁에 모이는 아이들 중 격동의 중학생은 단 한 명만 남아서 다른 조카들과 어른들 사이에 장벽은 낮아졌다. 거실에 모여 명절용 영화를 봐도 예능을 봐도 대화는 끊임없으니 말이다.
형님도 숫자가 가득한 이 보드게임을 배우는데 선뜻 나서지 못했다. 나와 흡사한 모습으로 곁눈질로 익히고 있었으니 말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슬쩍 룰을 물어보고는 바로 게임에 합류, 그리고 카페인을 흡입한 사람처럼 잠도 잊은 채 새벽 1시까지 게임에 매진했다.
“형님, 우리 전문 마작단 같아요. 내일 아침 산책해야 하는데.”
다행히 아침산책으로 만보는 걸을 수 있었다. 겨우 나은 구내염이 도질까 겁났지만, 전주에서 아침 산책은 꼭 하고 싶었다. 6시에도 전주천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마스크를 내릴 수가 없었다. 산책 코스는 우리 동네가 좋았다. 열심히 뛰고, 운동기구에서 몸을 단련하는 모습에 자극이 되었지만, 그 ‘자극’되는 것이 부담됐다. 운동에만 국한되는 산책은 금세 질릴 것만 같아서.
산책을 마치고, 형님과 나는 전사가 되었다. 가스레인지 앞에서는 형님이, 전기팬 앞에서는 내가.
청소까지 마치자 세 시가 조금 넘었다. 피곤해서 한 숨 때릴까? 아니다. 우리는 전문 마작단처럼 또 판을 깔았다. 거실에 불도 켜지 않은 채, 우리 둘이서 말이다.
“왜 불도 안 켜고 있어요?”
25살 조카가 거실에 불을 켜주었다. 고맙다는 말보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우리랑 같이 루미큐브 하지 않을래? 둘이 하니까 한판이 너무 길고 원하는 숫자가 쉽게 나오지 않아서 힘들다. 한 판 해주면 안 되냐?”
“전 약속 있습니다.”
딸들에게도 부탁을 했으나, 셋이 외출해 버렸고, 큰 조카는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이니 차마 한 판 뜨자고 할 수 없었다.
저녁을 먹고, 애들이 집으로 기어들어왔다. 형님은 또 판을 깔았다. 그리고 애들을 섭외했다. 그렇게 우리는 또 12시 반까지 게임을 했다.
차례를 마치고 나서는? 어찌 안 할 수 있겠는가. 또 했지. 점심을 먹고 나서는? 헤어지기 전에 또 하는 건 당연한 일.
“형님 우리 스무 판은 한 거 같죠?”
“동서, 너무 재밌다. 이번 추석은 정말 재밌었어.”
돌아오는 길, 정말 피곤하지 않았다. 구내염도 아직 소식이 없다. 다음 설날에도 루미큐브를 데리고 가야겠다. 아니 모시고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