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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산책가 Sep 18. 2021

산속 카페

우리는 ‘등산’이라고 고쳐 불렀다

정오를 살짝 넘긴 시간, 해는 여전히 머리 위에서 이글 거렸다. 흐렸던 며칠을 보내며, 구월 땡볕을 만만하게 봤다. 모자 없이 직사광선을 마주했던 여자 둘은 투덜댔으며, 가자고 부추긴 나는 불평을 늘어놓지 못했다. 속마음은 ‘아, 머리 벗어질 거 같아.’였지만 말이다.


장수군 천천면의 어느 마을, 골목이 있고 실개천이 있는 이 마을은 한 달 전에 방문했었다. 해 질 녘이었던 그날, 우리 가족은 숲을 통과하였으며 ‘긴물찻집’에 도착했다. 산 중턱 이상에 자리 잡은 카페는 이미 영업이 끝났고, 우리는 어슴프레 남아있는 늦여름 노을만 찍고 돌아왔다.


구월이 되면 꼭 걸어서 카페에 가고 싶었다. 그날이 오늘이었다. 하필 해는 머리 위에서 구김살이 없었다.


어렸을 적, 뽀쁘라라고 불렀던 포플러 나무는 계곡 가까운 자리에 군락을 이뤄가고 있었다. 뽀쁘라 군락지를 지나니, 카페 위치를 알려주는 이정표는 ‘2km’가 남았음을 알려주었고 경사도는 최악이었다. 그리고 아직 집이 보이지 않는 그곳엔 6개의 우편함이 있었다. 아, 카페가 있는 마을엔 6가구가 살고 있구나.


난 올해부터 부분적으로 땀구멍이 개방되기 시작했다. 한 뼘 남짓한 땀구멍 개발구역은 ‘이마’다. 경사로를 걸으며 숨은 차오르고 땀구멍 개발구역에서는 지하수가 샘솟듯 땀이 솟아올랐다.

심장, 폐, 허리. 장기와 빈근(부족한 근육) 허리는 어서 멈추길 바라고 있었다. 이마는 축축했고 눈밑에서도 땀이 솟았다.

‘아, 드디어 다 왔구나.’


꽃피자에서는 치즈 냄새가 나지 않았다. 아직 시들지 않은 꽃은 피자로 자리를 옮긴 채, 각자 향을 뿜어냈다. 쑥부쟁이, 달래꽃, 부추꽃….


이곳은 모두 자연스러움 자체였다. 피자를 먹을 도구는 싸리비 같은 꼬챙이였다. 공산품인 일회용을 찾기 힘들었다. 이곳에 사는 동물들도 얼마나 느긋하던지.

3시부터 취침시간인 ‘오렌지’라는 고양이는 내 품으로 들어왔다. 다리는 쥐가 났지만, 꾹 참았다. 잠깐 동안, 난 집사 같았다. 아흐, 이뻐라.


두 강아지는 밤새 산속을 지켰는지 자리를 바꿔가며 잤다. 느긋함 투성이인 이곳, 나랑 잘 맞다. 다음에 또 와야지.


창 밖 풍경이 완연한 가을일 때에는 공책을 하나 들고 오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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