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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산책가 Sep 12. 2021

백신 2차는 나를 울렸다


금요일에 화이자 2차를 맞았다. 1차와 달리 바늘을 꽂자마자 통증이 느껴져 놀랐다. 이럴 때 ‘서막’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다. ‘장판 엑스레이’의 서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주말 내내 백신은 내게 주인 노릇을 했으니 말이다.


증세는 오한-발열-두통, 이 순서로 두어 번 반복했다. 내가 버티지 않고 바로 약을 먹었다면, 내 눈은 오목 파이지 않았을 텐데. 쓸데없는 고집을 피웠다. 열이 나도록 아파본지 얼마만이던 지. 오랜만에 3일 내리 쉬어서 좋다고 일주일 전부터 설레던 내 심장은 쓸쓸해지고 말았다. 오히려 심장이 더 급하게 뛰는 건 아닌지 다른 부작용은 없는지 스스로 점검해야 했다.


백신을 맞고 난 후, 뉴스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부작용이 있었다.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아프니까 누워서 티브이만 보았는데 웃긴 장면도 슬펐다. 감동적인 장면은 몇 배로 슬퍼서 꺼이꺼이 울 뻔했다. 시청자를 웃기려고 용쓰는 ‘유재석’을 보아도 웃음이 나질 않았다. 몰래카메라에 속고 있는 ‘정준하’를 볼 때는 웃다가 다시 눈물이 났다.


열을 떨어뜨리는   일이 아니었다. 오직 해열제에게 맡기고  이부자리에 누워야 하는 소중한 빨간 , 연휴는 그렇게  가고 말았다. 너무 누워서 눌린 귀가 아플 지경이다. 오늘이 일요일이고, 내일은 끔찍한 월요일이지만 이제  아프다는 사실에 슬슬 기분이 좋아진다. 오목한  눈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다가오는 명절에 즐거운 마음으로 기름진 부침개와 막걸리를 먹는다면 원상 복귀될 것이다.


내 마음이 화초에게 옮아갔다. 내 손이 아니면 누가 물을 주겠어. 얘들아, 이제 나 괜찮아.


책상 위에서 커피 마신 빈 잔이 보였다. 세상에, 내가 씻어둔 양치컵에다 커피를 마신 신랑이라니.


내 존재감에 대해서 아무도 논하지 않는다면 나는 이렇게 자평을 일삼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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