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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산책가 Sep 26. 2021

작은 나의 집

막내가 태어난 해부터 살던 곳

내가 사는 곳은 시골이다. 시골 중에서도 오지에 포함됐다. 과거형에 머물 수 있는 건, 오지를 쉽게 벗어날 수 있는 신문물 ‘차’ 덕분이다. 신문물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흔해 빠졌지만, 그것이 아니었다면 여기에 사는 게 지긋지긋할 뻔했다. 산은 가까이에서 높게 병풍을 치고 있다. 하늘을 볼 수 있는 시야는 다른 곳에 비하면 좁다.


내가 사는 집은 연립주택이다. 지은 지 26년 되었다. 딱 두 동 뿐이고 평수도 그리 넓지 않다. 방이 하나 더 있다면, 화장실이 하나 더 있다면 좋겠다며 이 집을 벗어나는 상상도 해봤다.


다섯 식구 살기에 좁은 이 집에 다른 생물도 가득하다. 내 키보다 큰 율마와 행운목, 봄에 꽃을 피워내는 재스민과 라일락, 천리향 그 외에도 금전수, 유칼립투스, 몬스테라 등등 20여 개의 식물들이 집을 차지했다. 인간과 식물이 사는 이곳에서 고양이도 키우고 싶어 하는 내 욕망을 눌러주는 사람은 신랑뿐이다. 딸들과 나는 고양이와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한 지 몇 년째인지.


“그 집에 살면 답답하지 않아?”

39평에 사는 큰 형님 질문이다. 형님네도 다섯 식구라 복닥거리는 식구 밀도를 알고 묻는 말이다. 분명 그런 때가 있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집이 좁았다. 장난감이 깔리고 아이들 작품을 전시하던 시절, 그것뿐이던가. 아이들 목소리는 천장까지 집을 채우던 때다. 미니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재우던 시절도 있었다. 모두 이 집에서 겪어낸 추억이다.


“답답한지 모르겠는데요? 벌써 18년째 살아서 그런가?”

여전히 방이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옷장을 하나 더 놓을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 그 욕망을 누르게 하는 평수의 한계. 꺾이는 좌절감이 아니다. 그럭저럭 지낼 만한 걸 알고 있다. 방을 닦고 나서 거실 문을 열어두면 시원한 바람이 드나들며 방바닥 물기를 말려준다. 병풍처럼 에워싼 산에서 부는 특급 바람이 물기를 말려준다. 넓지 않은 방이라 바로 눈 앞에서 몬스테라와 마주하고 있다. 아늑하다. 물론 작은 시골 주택을 갖는 꿈도 있지만, 이곳을 떠난다는 상상은 슬플 것만 같다. 매일 보는 집 앞 산을, 냇가를, 산책로를 두고 떠난다는 상상은 아쉽기만 하다.


내가 사는 이곳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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