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게으른 산책가 Oct 20. 2021

훈발놈

어쩌다 훈이는 훈발놈이 되었나.

며칠 , 팬시점에 갔다. 짱구 캐릭터가 그려진 문구를 보고는 딸들과 짱구 이야기를 했다.

“엄마, 훈이가 얼마나 나쁜 줄 알아? 짱구를 악당에게 팔아먹지를 않나, 극한 상황에서 자기만 살겠다고  자기 간식을 몰래 먹지를 않나. 완전 나쁜 놈이야.”

난 짱구가 제일 나쁜 놈인 줄 알았는데 짱구를 능가한 녀석이 훈이라고?


‘짱구는 못말려’를 본 지도 오래되었지만, 훈이를 연기한 성우 목소리는 지금도 기억이 난다. 소심하고 어디서 만날 당하고 다니는지 억울에 찌든 목소리, 그런데 그 녀석을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에서는 매우 나쁜 놈으로 표현했단다. 그래서 훈이는 새로운 별명을 갖게 됐다.


훈발놈


훈발놈이란 별명이 너무 웃겨서 다른 아이들도 아는지 만나는 애들마다 물어봤다. (물론 13세 이상에게 물어봤다. 괜히 어린애들에게 물어봤다가 욕 전파자가 될 것이다) 모르는 애들이 없었고 훈이의 악행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들었다(자신이 하고 싶은 욕까지 덧붙여서). 요즘 애들은 제법 사리분별력이 있었다. 훈이의 악행에 대해서 촌철살인 같은 욕을 했으며, 의리를 저버린 행동에 대해 심하게 분개할 줄 알았다.


어렸을 때, 재밌게 봤던 ‘톰과 제리’에서 제리가 톰을 골려주는 장면은 내겐 그다지 통쾌하지 않았다. 약자처럼 보이는 ‘제리’는 약삭빠르다. 누가 봐도 쥐 앞에서는 강자라고 여길 ‘톰’은 우둔하다. 톰이 제리를 향한 썩소를 짓고 나면 톰에게 불길한 일이 언제나 터지고 만다. 몇 중 혹이 생기기도 하고 납작한 종이 고양이가 되기도 했다.


어쩌면 아이들은 제리 같다. 어른인 내가 맞는 소리를  할라치면 곧바로 공격을 가한다. “아닌데요 아닌데요 아닌데요.” 같은 말을 여러 번 하고 씩 웃는 아이의 모습을 보라. 나를 열 받게 하는 그 웃음, 난 톰이 아니다. 정색하고 다시 말한다. 그리고 다시 반복하여 말하는 아이, 씨익 웃었다. 난 제리가 싫다.


돌봄실에서 나는 톰이 되지 않으려고 정신을 바짝 차린다.


둘리는 또 어떠한가. 자기도 얹혀사는 주제에 친구들까지 데리고 들어와서는 우리의 가장 ‘고길동’을 괴롭힌다. 티브이를 보는 사이, 고길동의 뒤통수부터 발끝까지 고속도로 길이 나는 장면, 너무 슬프다.


어쩌다 훈이가 짱구보다 더 나쁜 놈이 되었지만, 내게 악역 캐릭터 삼인방은


신짱구 제리 둘리


 명이다.  오늘도 애들에게 당했다. 제일 싫어하는 동물이 뱀인데 아나콘다 인형을  목에 걸쳐놓은 녀석 때문에 목이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에잇, 신짱구 같은 녀석아!

작가의 이전글 작은 나의 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