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대를 놓지 마세요
장수에서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라디오에서는 가을 노래 일색이다. 퇴근길에 듣는 가을 노래는 억새를 움직이는 조용한 바람 같다. 억새 따라 바람결이 보이듯 나 또한 억새처럼 가을 결을 느꼈다. 아직 출출하지 않은 내 배(점심에 오리고기를 꽉 채워둬서), 다른 날보다 이른 출근, 어제보다 따뜻해진 날씨. 온갖 좋은 생각들이 자석에 철가루 붙듯 모여들었다. 달도 예뻤다.
이제 5분만 가면 우리 집이다. 그래 5분만 가면 나는 편히 집에서 쉴 것이며, 혼자 있는 날이니 조용히 만화책을 보며 쉬어야지. 그리 어려운 일들이 아니다. 따뜻하게 데운 물로 몸에 붙은 피로를 씻어내야지, 빨래는 개야 할 테고…. 가볍게 할 일을 생각했다.
커브길을 가려던 때,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차가 보인다. 커브길인데 차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아니 커브길임을 모르는 듯했다. 가드레일에 부딪쳐 튕겨 나왔으니 말이다. 그 차와 내 차는 중앙선을 사이에 두고 각자의 전진을 하면 되는데 가드레일에 부딪힌 차는 튕겨서 내게 오는 듯했다. 다행히 운전대를 금세 바로 잡았는지 다시 앞을 향해 갔다. 아, 음주 운전 중일까. 여전히 속도는 줄여지지 않은 거 같은데.
신랑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상황 설명을 하다가 깨달았다. 몇 초를 사이에 두고 내 앞날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는 걸. 울컥 눈물이 나려 했다. 심장도 벌렁거렸다. 당연한 7시 45분 우리 집 주차장 도착,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리고 더운물로 씻을 수 있는 작은 행복이 지금은 작지 않다. 하나님, 예수님, 알라신이여, 부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