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시월이다, 다행히
해를 등져본다. 등은 따갑고, 앞통수는 차갑다. 삼겹살을 구울 때를 보라. 불판에 닿은 쪽은 노릇노릇한데, 닿지 않는 쪽은 선홍색이지 않는가. 오늘 날씨가 그랬다.
순천만은 몇 번째라 헤아리지 않겠다. 하지만 갈대가 푸르른 날은 처음이다. 물기는 본디 없는 게 갈대인 줄 알았다. 초록이란 평생 없는 식물이 갈대인 줄 알았다. 세상에는 아직도 봐야 할 게 많다. 어린 갈대를 보고 또 설레었다. 처음으로 마주하는 초록 갈대, 콧속에 바람 넣는 기분을 알게 해 줬다. 이거였어.
그늘 없는 순천만은 비타민 D를 얻기에 최고였다. 뒷목이 따갑다. 비타민이 따갑게 들어오는구나. 다들 우산을 쓰고 오는 이유를 알겠으나 한낮의 햇볕에도 내 미간은 화나지 않았다. 어디든 시야를 가리지 않아서 속이 후련했다.
나와 그녀는 계속 걸었다. 전망대까지 가기로 했다. ‘산책’이란 취미가 같기도 했고, 8000원이나 지불하고 입장했기에 우리는 ‘뽕’을 뽑아야 했다.
왕복 2.3Km 40분 소요, 제법 오르막이 있었다.
“누가 냉장고 문을 열었어?”
산에게 물었다. 물론 답은 없었지만, 냉장 바람은 쉬지 않았다. 순천만은 순박한 줄 알았다. 기교를 모른 줄 알았는데, 제법 반짝거리는 윤슬, 오호 제법이다. 멀리 보이는 배에서 요란한 소리와 연료 타는 냄새를 못 느끼니, 더 운치가 있다. 오리 같아 보이는 것도 멀리서 본 덕분이다.
내 이목구비가 없는 사진들, 매우 마음에 든다. 카메라만 들이대면 경직되는 나를 잘 아는 그녀가 몰래 찍어줬다.
순천만 습지를 둘러보고, 국가정원도 가려했다. ‘1+1’에 약한 우리들이니까. 하지만 전망대에 흡족한 나머지, 그리고 만보를 찍은 것에 만족한 나머지 순천에서 빠져주기로 했다.
“그래 이쯤이면 됐어.”
“이제 그 어마어마한 카페에 가 볼까?”
구례에 대단한 카페가 있다. 폐업한 휴게소를 카페로 재단장한 곳인데, 주차한 차가 어마어마해서 놀랐다. 카페가 얼마나 크길래, 이 많은 사람들이 들어갔을까.
카페 창 너머엔 섬진강이 흐르고, 지하로 내려가면 강변을 산책할 수 있으며, 야외에서 마실 공간뿐만 아니라, 두 동의 공간이 더 있다. 너른 잔디밭에는 어린아이들이 맘껏 뛰어다니고 부모들은 여유롭게 차를 즐겼다. 대형 카페를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섬진강 강변을 곁에서 즐기는 카페는 지금까지 본 카페 중에 최고였다.
하지만 음료값이 비쌌다. 우리는 다시 ‘뽕’을 뽑아야 했기에 세네 시간을 머물렀다. 꽉 찬 자리가 텅 비어질 때까지 말이다. 숙언니가 퇴원하면 그날에 다시 올 거다. 우리 그날도 뽕 뽑기로 해요.